인과 보다 더 높은 것
아무리 많은 명상을 하고 참선을 하고
기도를 많이한다하더라도 이것을 끊고
인과의 법을 넘어시지 않으면 진보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스스로를 점검하고 인과율에
어긋난 것이 있는가 하고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 또한 명상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잘못으로 실패(?)한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나이다.
나는 태화당 한약방하시는 동수분이랑, 함께
가정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모든 것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하고 명상만하고 그것만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 왔다.
그러나 서로 가정에 명상에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라는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는 업만을
남기게 되었을 뿐 진보가 없었다.
오히려 필자가 기공수련을 할 때에는 거의
교주급에 가까운 공력을 자랑하던 사람이었건만,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에 전념하게 되니까,
오히려 진보가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털이 신세의
처량한 것이었다.
지금와서 반성을 해보면, 그것은 주제파악을
하지 못한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었으며,
지당한 결과이었던 것이었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도 사실, 그런 것에 있다.
나보다 늦게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나처럼
시행착오를 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과법은 이 세상의 법이요.
인과를 벗어난 세계가 진정으로 진실한 세계라고
한다.
이 세상의 인과법은 모든 것이 거꾸로인 법칙이
적용된다.
남을 미워하면 오히려 남을 미워한만큼
나에게 창칼이 가슴에 꽂히고, 남을 사랑하고,
감사하게 되면 오히려 내 것이 없이 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진보하고 발전하고 풍성해지고
행복해 진다는 놀라운 진실이다.
어떤 사정이 있건간에 남을 미워하게 되면 무조건
나에게 아주 엄청나게 깊은 상처가 남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을 부처님은 자비를 모두 같은
사랑에 대한 법칙을 이야기 하지 읺았는가 말이다.
독을 독으로 갚고 원수를 원수를 갚는다면
영원히 인과의 고리는 끊어 지지 않는다.
단한가지 해결책은 바로 무조건 용서하는 것뿐이다.
그것을 과감한 선택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진정으로 마음공부가 되지 않으면,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