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수행자의 성도
신라 진덕여왕 때 부설거사가 있었습니다. 어려서 불국사의 원정선사에게 득도하였습니다. 그는 어느날 도반인 영조, 영희스님과 함께 오대산으로 수행길을 떠낫습니다. 고향인 만경(萬頃) 못미쳐 두능이라는 데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구씨라는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씨 집에는 묘화라는 벙어리 딸이 있었습니다. 묘화가 하룻밤 묵어 가는 세 수도승 가운데 부설을 보고 반하여 결혼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큰 뜻을 품고 수도의 길을 떠나는 부설이 들어 줄리가 없었습니다. 묘화가 간청하길 '그대가 불도를 닦아서 많은 중생을 구제하려고 하면서 소녀의 작은 소망도 들어주지 못하니, 내가 만일 죽게 된다면 장차 어찌 큰 뜻을 편다 하겠습니까?'고 하였습니다.
부설은 '이것도 숙세의 인연이로구나!' 생각하며 묘화와 결혼을 하게됩니다. 그가 사는 마을 하늘엔 언제나 하얀 눈이 떠돌아 다녔다 하여 사람들은 두능리 마을을 부설촌(浮雪村)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부설거사의 법호도 여기에서 따왔다고 전합니다.
묘화와 결혼한 부설거사는 등운과 월명이라는 아들과 딸을 낳았습니다. 후에 부설거사의 아들은 등운암을 딸은 월명암을 짓고 수행을 하였다고 전합니다.
부설거사는 결혼생활을 하는 중에도 멈추지 않고 수행정진에 열심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대산으로 떠났던 영조와 영희 두 스님이 부설거사를 찾아왔습니다.
두 스님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대산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네만, 자네가 여자에게 빠져서 이리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네."
이 말을 들은 부설거사는 두 스님을 뒷 뜰로 모시고 나가서 줄에 물병 3개를 매달고 말합니다. "스님들의 수행 성과를 보여주시요. 지팡이로 물병을 쳐 보시오."
두 스님이 물병을 치자 물병이 깨지면서 물이 바닥으로 쏟아졌습니다. 이 때 부설거사가 지팡이로 물병을 치니 병은 깨졌지만 물은 병모양으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부설거사가 말했습니다. "생사윤회하는 범부는 병이 깨어지면 쏟아지는 물과 같이 흩어지지만, 진리의 성품을 제대로 아는 이는 병이 깨어져도 물은 쏟아지지 않듯이 세속에서도 수행의 진면목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두 스님은 자신들의 수행력이 부족함을 부끄러워 하며 부설거사에게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거사는 팔죽시(八竹詩)를 지어 수행의 살림살이 면목을 보여줍니다.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바람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대로 보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물건 사고 파는 것은 세월대로,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낸다."
부설거사는 진리의 세계와 세속의 일이 둘이 아닌 진속불이(眞俗不二)의 경지를 보여주니, 참으로 진흙탕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줍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