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극근 스님의 깨달음

중국 송나라 때의 고승 원오극근(1063-1135)선사는,

널리 알고 있는 [서장]의 저자 대혜스님의 스승으로,

하루에 천 개의 단어를 외울 만큼 머리가 비상한 분이었다.

어느 날 묘적사에 놀러갔다가, 불경을 읽은 다음
발심하여 자성스님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였다.

그 뒤 스스로 참선정진을 하여 부처와 중생이
둘이 없고 맑음과 더러움이 둘이 없는 듯한 공(空)의
이치를 체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도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극근스님은 이때부터 천하의 선지식을 찾아
선문답(禪問答)을 펼쳤고, 그 어떤 선사도 스님의
마음에 드는 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름 듣기보다는 아무것도 아니군."
"천하의 선지식이 모두 내 손 안에 있다."
극근스님은 대선지식들을 거침없이 비방하였고,
스스로의 교만을 더욱 키워갔다.

하루는 당대 최고의 선사로 추앙받았던 오조법연
(五祖法演) 선사를 찾아가 선문답을 하였다.

하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자 '도인이 아니다'
생각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바로 그때 법연서사가 한 말씀 일러 주었다.

"자네의 지견(知見)으로는 천하의 선지식이 모두
자네 주먹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네. 그리고 지금은 내 말을 믿지 않겠지.
하지만 열반당(涅槃堂:병든 승려가 거처하는 곳)에
들어가 눈앞의 등불이 가물가물하게 보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너의 공부를 다시 점검하여 보아라."

그렇지만 그 말씀조차 무심결에 흘려버리고, 극근
스님은 스스로가 이룬 조그마한 깨달음에 취한 채
천하의 선지식을 비웃고 다녔다.
그 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극근스님은 큰 병을
앓게 되어 열반당에 들어갔다.

얼마나 심하게 아팠던지, 어두운 방에 켜 놓은 등불이
개똥벌레 불처럼 작아보였고, 그 빛도 그저 가물가물
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법연선사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 극근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에 '알았다'하고 '이루었다'고 했던 것이

10만 8천리 밖으로 달아났는지 자취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직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만이 가득하였을 뿐...

극근스님은 과거의 잘못을 마음으로 깊이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며 법연선사의 자비에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병이 낫자 법연선사를 찾아가 참회를 올리고
스스로 시자(侍者)가 되기를 자청하여 십 년 동안
법연선사의 밑에서 수행하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밤낮없이 화두(話頭)를 참구하고 스승을 시봉
하며 지내던 어느 날, 한 객스님이 법연선사와 문답을
하는 것을 들었다.

"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이 대화를 듣는 순간 극근스님은 활연히 도를 깨쳤다.
자기의 본래면복(本來面目)을 되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