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욕자극

황벽 선사의 수행 이야기

법천선생 2024. 9. 8. 19:57

벽희운 선사가 일찍이 대중들을 흩어 보내고

홍주 개원사에 살았는데 배휴 상국이 하루는 절에

들어와서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 원주에게 물었다. 
 
"벽에 그려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 
 원주가 말하였다. 
 
"고승입니다." 
 "형상은 볼 수 있으나 고승은 어디를 갔는가?" 
 
원주가 아무 말을 못하였다. 
 배휴가 말하였다. 
 
"여기에 선사는 없는가?" 
 "희운 상좌라는 이가 있는데 아마도 선사 같습니다." 
 
배휴가 드디어 황벽 선사를 불러서 앞에서 원주와

같이 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황벽 선사가 말하였다. 
 "다만 묻기만 하라." 
 
배휴가 말하였다. 
 "형상은 볼 수 있는데 고승은 어디에 갔습니까?" 
 
황벽 선사가 "배상공!" 하고 부르니

배상공이 얼떨결에 "예!" 라고 대답하였다. 
 
황벽 선사가 말하기를, "어디에 있는고?" 
배상공이 그 말에 크게 깨달았다. 
 
?
이 본원이며 청정한 마음이 항상 스스로 원만하고

밝게 두루 비추건만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하는 것만을 오인하여

마음으로 삼아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하는 것의

덥힌 바가 되었다. 
 
그러므로 뛰어나게 밝은 본체를 보지 못한다. 
 
다만 당장에 무심하면 본체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마치 큰 태양이 허공에 떠올라서 시방을 두루 비추어서

다시는 장애가 없는 것과 같다.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인은 마음을 취한다. 
마음과 경계를 둘 다 잊어야 참다운 법이다. 
 
경계를 잊는 것은 오히려 쉬우나 마음을 잊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실로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마음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천만겁을 수행한다 해도 마침내 그것을 얻을 날이 없다. 
 
당장에 무심함이 곧 본래의 법인 것만 같지 못하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만약 성불하고자 한다면 일체 불법을

모두 다 배우지 말고 오직 구함이 없고 집착이 없음을 배우라. 
 
선과 악을 모두 생각하지 말라. 그 자리가 곧 삼계를 벗어난 곳이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신 것은 삼계를 깨트리기 위함이다. 
 
만약 일체의 마음이 없다면 삼계도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대가 대장부라면 응당 공안(公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물음에 조주선사는

무(無)라고 대답했다. 
 그대는 자나깨나 끊임없이 이 무(無)라는 말에 대해

참구해야 한다. 
 
걸어갈 때나 쉴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또는 옷 입을 때나

밥 먹을 때나, 의자에 앉아서나 심지어 똥 오줌을 누면서조차도

항상 이 말을 머리 속에 박고 있어야 한다. 
 
그대 온 정신을 이 말에 집중시키고 어떠한 경우라도 정신을

가다듬어 이 무(無)자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날이 가고 달이 거듭한 어느날 홀연히 온 마음이 한덩어리가 되면

갑자기 마음의 꽃이 활짝 피어나고, 부처와 조사들이 처음으로

깨친 바를 비로소 뼈속 깊이 이해할 것이다. 
 
이 깨달음은 더없이 단단하여 그대는 세상 그 어떤 노승들의

입에 발린 말에도 속지 않을 것이며, 활짝 열린 그대의 입에서

위대한 진리가 저절로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또한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올 때 바람도 없는 데 물결이 일어남과

같음을 이해할 것이고, 석가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인 것이

대 실패작 이었음을 알 것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모든 성인들도

그대를 어쩌지 못한다. 
 
이런 불가사의한 기적이 있으리라고 누가 믿겠는가? 
 
그러나 마음과 정신을 여기에 집중한 사람에겐 불가능이 없다. 
 
逈脫塵勞事非常(형탈진로사비상)
緊把繩頭做一場(긴파승두주일장)
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 예사 일이 아니니, 마음고삐

단단히 잡고 한바탕 힘써 공부할지어다. 
 
한차례 매서운 추위가 뼛속을 사무치지 않으면,

매화가 어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