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체험이 없다고 불평불만을 하고 있는가?

왜 체험이 없다고 불평불만을 하고 있는가?
왜 지금쯤이면 와야 하는 빛이 보이지 않고
천상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인가? 하고 자신을
닦달하고 자기 에고의 마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에 이르길 응무소주 이생기심,
즉 마땅이 마음이 전혀 머무르는 곳이 없이
본 마음을 내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이 아무 곳에도 머무르지 않고 본심을
내기만 하면 즉시 깨닫는 말이니, 말의 뜻은
참으로 이해하기 쉽고 참 간단명료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단체염불법회에 참가할 때 자기
주변 사람에 낮은 사람 때문에 자기 염불이
그 사람 영향으로 잘 안됨을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에고의 마음인
것이니, 자기 탓인 것이니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도를 향한 신실함과 진실하게 갈망하는 것과
빨리 깨닫고자 하는 속효심과 이러석게 구하는
치구심과는 아주 많이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진리의 세계, 곧 우주의식은 불평하는 사람을
당연히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대부분 감정과 에고는 무조건적으로
다 나쁜 것이고 없애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감정은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이어서 염불 하는 부처님께 깊이깊이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오히려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감정인 것이며 두뇌속을 최적화
상태로 만들게 되어 큰 진보의 조건을 제공한다.
또한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보는 비젼만이
체험인 것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사실은 그렇게 일상 생활 중에 만나보는 체험이
훨씬 더 바람직한 것이고 좋은 체험인 것이다.
그래서 도를 묻는 조주 선사의 간절한 질문에
'평상심이 곧 도다'라고 남전 선사가 말하였다.
행좌주와 어묵동정이 다 선이고 명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염불 명상은 가만히 움직이고
않고 앉아서 강제로 마음을 쉬고 잠재우려는
자기 조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 깨닫고자 하는 속효심과 어리석게
깨달음을 구하는 치구심을 내려 놓고 깨달은
부처님께서 직접 눈앞에 있음을 완전히 이완된
상태로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염불인 것이다.
부처님을 직접 만나뵙고 그분의 불광을 흡수
하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어떠한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완전하게 집중하는 상태인 것,
부처님을 부를 때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하던
그립고 그리운 엄마를 보듯 갈망하는 진실한
마음이라야 큰 가피력을 그대로 흘러내리듯
전해받게 되어 불력을 얻어 크게 진보하게 된다.
절대로 의미인 것처럼 직장에서 시간을 때우는
근무를 하는 것처럼 염불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옷가게 점원이 손님이 많으나
적으나 같은 월급을 받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스승의 강연을 듣고 보는 것은 스승의 높은 자장에
보는 사람의 자장이 높이 고양되고 스승의 불광이
그대로 흡수되기에 그 빛의 영향으로 인해 업장이
씻겨나가게 되어 큰 가피력을 받아 진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