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체험하게 된 너무나 슬픈 사연

필자가 극도의 슬픔에 빠지게 된 사연은
이 블로그를 즐겨 찾은 분은 너무나 잘 알것이다.
내 사랑하는 둘째딸이 그야말로 백만분의 일도
안되는 확률로 주인도 없는 자동차가 밀려 와
치이게 되어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런 후 그 동안 명상가로 자처하며 자신에 차 있던
나의 모든 것들이 모두 다 허망한 겉치레에
불과 했다는 것을 처절하다시피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슬픔이 처절한지 앉아서 명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명상의 그 어느 것에도 결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슬픔은 물밀듯 밀려와 가슴에 가득 차고 잠에서
깨어나면, 이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줄곧 오랫동안 들곤 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별아별 위안을 말을 많이
들었지만, 결코 위안이 되지 못했으며, 그래도
가장 위안이 되었던 것은 나처럼 이별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쓴 글에서나마 많은 위안을 받게
된다는 것만 느끼게 되었다.
그때 나는 오직 주로 이별에 관한 에세이집 등
독서만이 가장 큰 마음의 위안이 되고 영혼의
안식을 주는 고마운 도구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수없이 많은 깨달은 스승들에게서
얻어 들은 이론적인 법어들이 실질적인 깨달음이
없다면, 아무짝에도 전혀 소용없는 이론적 허망한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나이가 어느 정도는 들었고, 세상에서 산
경험도 많아 세상의 거의 모든 상식적인 것들을
다 안다.
또한 입문하기 전, 내가 중국기공으로 정진할 때,
진보를 위하여 그동안 원주도서관의 꽤나 많은
명상서가의 책들을 2년간에 걸쳐 모두 다 설렵하여
지식을 쌓았으며,
회자정리 즉 '세상은 허망하고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는 것'
이 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그러나 실제로
나에게 그러한 참담한 이별이 찾아오게 되니,
말처럼, 이론처럼, 성인들의 말씀처럼, 그리 마음의
평정이 되지 않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허망한 진실에서 벗어나 죽음이 늘 내 주변에서
서성거린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아울러 시간의 소중함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는 결코 안다는 지식적인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오직 내가 그나마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명상을
할 수 있게 된데에는 큰슬픔을 억누르고 되살아
나게 하는 데에는 세상의 아주 작은 일에서라도
아주 깊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여 무조건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반복적인 훈련이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주었다.
세상의 모든 경전들을 아주 자세하게 이러한
입장에서 분석해보게 되면, 결국은 '세상 일에서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일수록, 오히려 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라는 핵심을 내
입장에서 나름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고마운 마음이 별로 없어도 나름대로
많은 연구와 숙고 끝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여
무조건 감사하게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또 하고 하였다.
그것이 나에게는 슬픈 마음을 달래고 고치는
가장 좋은 치료약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진하기로 한 것은 감정은 연기와 같아
종적도 없는 놈에게 휘둘려 결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항상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 상태라야만 삼매에 들고 진정한 경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푸시나마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지난 일로 신이 나에게 보내준 체험에 대하여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또한 진심으로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