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욕자극

내가 직접 겪은 중국기공 수련 체험담

법천선생 2026. 1. 10. 09:34

누군가는 마치 자신이 진리를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확신에 찬 말을 한다.

 

그러나 참된 선지식들은 진리가 언어로

규정될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오히려

말하기를 조심해 왔다.

 

말이 많아질수록 진리에서 멀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전의 문장을 빌려 마치 모든

것을 체험한 듯 단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은,

수련의 깊이와는 무관한 또 다른 위험이라

할 수 있다.

 

체험 이전의 확신은 자만이 되고, 체험

이후의 확신은 집착이 되기 쉽다.

 

나는 중국 기공인 익지공을 수련하던 시절,

수많은 영적 체험을 겪었다.

 

내 몸 안에서 운행되는 기의 흐름이 또렷이

느껴졌고, 사람과 사물에 깃든 기 또한 분별

없이 감지되었다.

 

이때부터 수련은 더 깊어졌지만, 동시에

위험도 함께 커져 갔다.

 

명당이라 불리는 곳의 기운을 손바닥으로

느끼고 탐지하는 일은 처음에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감각이 예민해질수록 외부의 자극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일이 잦아졌고, 그것이

곧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체감 능력이었다. 아픈 사람을

만나면 그 통증이 그대로 내 몸에 옮겨왔고,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되었다.

 

스스로를 기공으로 치유하면 상대도 나아지는

경험을 하긴 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타인의 병을 짊어진다는 것은 수행자의 공력을

시험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과 몸을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차크라를 강하게 자극하는 수련을 거듭하자,

눈을 감기만 해도 히말라야의 설산이나 화려한

궁전 같은 환영이 나타났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이러한 현상은 신비롭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마음이 외경(外境)에 끌려다니고 있다

는 증거이기도 하다.

 

더 큰 위험은 타심통이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읽히는 경험은 결코 축복이 아니었다.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학생들이 겉으로는 훈계를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고, 그 순간 알 수 없는

분노와 혐오가 일어났다.

 

이는 신통이 마음을 맑게 하기보다 오히려 번뇌를

증폭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

 

그때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신통은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 수행을 방해하는 그림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을 붙잡는 순간, 수행은 이미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로 나는 어떠한 신통에도 의미를 두지 않고,

오로지 기를 모으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불철주야 수련하며 중병에 걸린 부친을 치료했는데,

남을 치료하면 자신의 공력이 높아진다는 말처럼

공력은 깊어졌을지 모르나, 동시에 더욱 조심해야

함도 함께 배웠다.

 

수련은 능력을 얻기 위한 길이 아니다. 수련은 자신을

비우고 낮추기 위한 길이다.

 

그 경계를 잃는 순간, 수련은 해탈의 길이 아니라

또 다른 집착과 위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나중에 아주 큰 빛을 세 번이나 보았는데, 그때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확실하게 깨달은 스승에게서

정법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