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해를 한국에서만 보낸 민족사관고 이상준(18)군이 올해 미국 하버드대학에 합격했다. 이군은 1600점 만점인 SAT(미국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 1520점을 획득했다. 미국으로 유학가기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이군은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에서 향후 4년간 학비와 생활비 전액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는 이건희 재단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집안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해질 수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군은 제2국립묘지인 대전 현충원내 공무원 관사에서 태어나 대전 덕송초등학교를 나왔다. 덕송초등학교는 이군이 졸업 당시 학생이 고작 15명일만큼 작은 학교. 그러나 그는 “졸업 당시 20여명도 채 안 되었던 초등학교 친구들과 6년이란 세월을 함께 보낸 것도 내겐 큰 자산이었다”고 했다. 이군은 어렸을 때부터 현충원 내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거나 저녁 어스름에는 부모님과 산책하면서 “자연과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군은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혼자서 영어동화책을 사다 읽고 영어방송을 듣는데 재미를 붙였다. 이후 대전에 위치한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의 목적 자체에 대해서도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좀더 깨닫는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이때부터 다방면의 책을 탐독했다”고 했다. 이군은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돌아가는 고교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이군은 결국 대전의 한 고교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민족사관고 유학반에 편입했다. 그는 이건희 재단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다.
“부모님은 제가 민족사관고 편입 시험을 보겠다고 한 때부터 막대한 미국 대학 유학 경비 등 여러 문제로 고민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제게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아들의 소망에 대한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못해주시는 것을 굉장히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중략) 하지만 도전하지도 않은 채 기회를 버린다는 것은 훗날 큰 후회가 남으리라는 생각과 도전해서 깨지더라도 그 자체가 경험이 되리라는 판단으로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이군은 2001년 8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로 향했다. 그는 “가끔 뻑뻑한 어깨를 토닥거리며 운전하시는 아버지와, 옆에서 각종 생활용품을 확인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말 못할 숙연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민족사관고에 들어간 뒤 이군은 사물놀이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아리랑 TV의 ‘퀴즈 챔피언’이라는 고교생 영어 프로그램에 친구들과 함께 출전, 5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군은 경제·역사 등 10과목의 AP수업을 수강해 10 과목에서 모두 5점 만점을 받았다. AP(Advanced Placement)란 미국 대학교 교양과목 수준의 수업을 고등학생들이 듣고 대학에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 민족사관고는 다른 고교와는 달리 유학생을 위한 AP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군은 또 전세계 80개국에서 100여명의 청소년이 참가한 ‘세계 청소년 경제대회’에서 사업계획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군은 ‘청소년 경제대회’에서 ‘납골당’을 아이템으로 정하고 ▲테마파크로 조성한 납골당 ▲역사 박물관으로 만든 납골당 등의 사업계획을 써냈다. 그는 “유학 경비도 없는 상태에서 유학을 준비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전하는 자신이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도 했다”며 “학부 시절 사회과학 분야의 기초를 다지고 경제학·역사 등을 공부해 경제연구소나 기업,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군은 “어느 기자가 발명왕 에디슨에게 소감을 묻자 그는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수천번의 실험을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며 “에디슨은 수천번의 ‘실패’, 아니 ‘실험’을 한 뒤에도 절망하지 않았는데 아직 젊은 저는 절망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해질 수는 없다. 초가집에서도 알프스 산맥을 넘는 비전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박민선기자 sunris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