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는 웃는 엄마
초등학생 딸을 두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 보이는 진진연 씨는 말괄량이 삐삐와 꼭 닮아 이름보다 ‘삐삐’라는 별명이 더 익숙하다. 항상 목소리도 밝고 옷도 삐삐처럼 발랄하게 입고 다닐 뿐 아니라 성격 또한 밝고 긍정적이어서 모두들 어릴 적에 삐삐를 좋아했듯이 그녀를 좋아한다.
대구에 살면서도 웃음세미나가 열리는 날에는 만사 제쳐두고 서울로 올라오는 진연 씨의 열정이 나는 늘 고마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열심히 웃음을 배우는 이유가 늘 궁금했는데, 어느 날 진연 씨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가 생겼다.
“삐삐,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항상 올라올 수 있는 비결은 뭐죠?”
“네, 많이 웃어야 힘이 나거든요.”
“삐삐는 안 그래도 많이 웃는데 웃음이 더 필요하세요?”
“소장님, 저 이렇게 웃게 된 지 얼마 안 돼요. 예전에는 일주일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누워만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늘 웃음을 달고 다니는 지금의 그녀의 모습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어두운 모습을 진연 씨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진연 씨는 나지막이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였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축복받으면서 태어나지는 않아요. 저처럼 아버지가 독자인 집안에 넷째 딸로 태어난 경우는 특히 그렇죠. 저까지 딸로 태어나자 아버지는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어머니를 두고 새 아내를 맞으셨어요. 그 러고 아들을 낳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새어머니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어머니만 찾자 새어머니 친정 식구들이 찾아와 어머니를 때리는 일도 많았 어요."
진연 씨는 어릴 때부터 ‘나만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엄마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겠지? 나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는 자책감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녀의 죄책감에 부채질을 한 사람은 할머니와 언니였다. “너만 아들로 태어났어도 엄마가 저렇게 맞고 살 일은 없었을 거다”며 어린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간직한 진연 씨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연극 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그녀를 친구들이 화장실 뒤로 부르더니 6명이 순식간에 그녀를 에워쌌다.
“야, 너 공부 좀 하면 다야?”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공부 좀 한다고 선생님한테 알랑거려서 연극 주인공 맡은 거잖아?”
“아냐, 난 그저 선생님이 하라고 하셔서 ‥‥‥‥.”
순간 진연 씨의 눈에 불이 번쩍 튀었다. 아찔했다.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 그중 한 명이 진연 씨에게 주연을 빼앗기자 앙심을 품었던 것이다. 구타는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되었고 진연 씨는 반에서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왕따가 되었다.
진연 씨는 날마다 혼자 밥을 먹었고 어디든 혼자 다녔다. 친구들이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했기 때문에 진연 씨는 단 한 명의 친구라도 간절히 원했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 마음에 들까 하여 그녀는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 그랬더니 줏대 없다며 따돌렸다. 상위권이었던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하루하루를 멍하게 지냈다.
대입시험을 보던 날, 진연 씨는 첫 번째 자살을 기도했다. 쥐약을 먹었다. 병원으로 옮겨져 위세척을 하고 간신히 살아났다. 어머니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녀가 자살을 기도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진연 씨의 두 번째 자살은 언니의 폭력에 폭발한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유리로 팔과 다리를 찍었다. 이번에도 미수로 그쳤다. 진연 씨는 언니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극단에 입단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또 다시 좌절감에 빠졌다.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제를 5알씩 사서 70알을 모으던 날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하루 24시간을 꼬박 자고 일어나보니 그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로 또 한 번 쥐약을 먹었으나 그녀는 꿋꿋하게 다시 살아났다. 그때까지 진연 씨의 삶이란 자살을 시도하고 살아나고, 또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진연 씨의 인생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 남자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듬직하고 의지가 되는 남자였지만 그녀는 프러포즈를 받고도 기쁘지 않았다. 집을 떠나고 싶고 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결혼을 선택했다.
딸이 태어났다. 아무리 미운 오리새끼일지라도 예뻐 보이는 것이 내 자식인데 진연 씨 눈에는 예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징징 우는 아이가 미웠다. 사랑을 주지 않았다. 그저 시간 되면 우유병을 쥐어주고 기저귀 갈아주는 게 전부였다. 기계가 하는 것처럼 했다. 하루에 세 번씩 아이 몸을 박박 씻겼다. 그때부터 진연 씨에게 결벽증이 생겼다.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는 마냥 따뜻한 사랑이 필요한 나이인데도 무조건 한글을 가르쳤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감이 진연 씨의 온몸을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이렇게 자란 아이라 엄마가 이름만 불러도 잘못했다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내 삶을 내 딸에게는 물려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진연 씨는 점점 더 포악한 엄마가 되었다. 뒤돌아서면 울었지만 아이 앞에서는 절제가 되지 않았다. 진연 씨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예스’나 ‘노’를 할 줄 몰랐다.
마음의 병이 슬슬 진연 씨의 몸에도 나타났다. 머리에 부스럼이 생겼고 고름이 온 머리를 덮쳤다. 코에는 피고름이, 얼굴에는 대상포진이 그녀의 시신경과 뇌를 건드리며 밤낮으로 괴롭혔다. 손이 떨리고 증세가 심각해지자 진연 씨는 술로 위안을 삼았다. 처음에는 밤에만 마셨는데 점차 낮에도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신경은 갈수록 예민해졌고 변덕은 죽을 쑤듯 들끓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화장도 하고 집안도 깨끗하게 치워놓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자기 먹어봐’하며 애교를 부렸지만,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는 날에는 마구잡이로 화를 냈다.
우울증이 심했던 어느 날, 진연 씨는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손목을 그은 것이다. 온침대가 피로 물드는 것을 보면서 진연 씨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아이 앞에서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진연 씨는 딸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시작하게 된 것이 동화구연이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동화를 들려주고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보살폈다. 아직은 혼란스러웠지만 진연 씨의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이 서렸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도 생겼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런데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했다. 2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무시무시한 사건이 있던 날, 그녀는 사고 전철 바로 앞차를 탔다. 그것도 전철 문이 닫히려는 순간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피해간 것이다.
한없이 감사해야 할 일이건만 그녀는 혼자만 살았다는 자책감에 빠져들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연 씨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때 갑자기 창밖으로 지나가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웃음소리에 이끌려 신발도 신지 않고 뛰쳐나갔어요. 아이와 엄마가 까르르 웃으면 서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있더군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쳐다보았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따라 나온 남편을 붙잡고 말했어요. ‘나도 어릴 땐 저렇게 잘 웃었는데. 나도 저 아이처럼 단 한 번만이라도 웃어봤으면 좋겠어. 여보, 제발’ 하고 말이죠.”
그러기를 꼬박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진연 씨는 신문에서 웃음으로 병을 고친 치유 사례를 접하게 되었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던 모 대학교수를 단지 5시간의 웃음치료로 고친 나의 이야기를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웃음이 자신에게도 용기를 줄 것 같다는 생각이 진연 씨에게도 어렴풋하게 들었다. 이것이 마지막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연 씨는 웃음치료 전문가 과정에 등록했다.
진연 씨 마음 깊숙이에는 ‘나 같은 건 죽어야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웃음세미나에서 강의를 하는 나조차 쳐다볼 수도 없었고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다가가고 싶어도, 말을 걸고 싶어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한마디 나누는 것이 어려웠던 그녀였다.
그러나 웃음동영상을 통해 다리도 없고 손가락도 2개밖에 없는 희야를 보면서 진연 씨는 새로운 감사를 느끼기 시작했다. 많은 동영상들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조금씩 알아갔다. 웃음을 밖으로 소리 내어 웃으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진연 씨는 단 한 번도 음식에 대해 감사해본 적이 없었다.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면 더러워 보였고, 자신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으니까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웃음치료 전문가 과정을 통해서 처음으로 방울토마토를 보는 순간 ‘감사’라는 단어가 치밀어 올라왔다.
진연 씨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태어날 때부터 버려진 거절감을 마음에서 몰아내기 위해 그녀는 속으로 끊임없이 외쳤다.
‘나는 내가 좋다. 아무 조건 없이 내가 참 좋다.’
진연 씨는 매일 아침 『하루 5분 웃음운동법』 CD를 틀어놓고 딸아이와 함께 웃었다. 그리고 함께 외쳤다.
“오늘도 최고의 날이다!”
잠자리에 들 때도 아이와 함께 외쳤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참 좋다.!”
진연 씨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던 것처럼, 아이도 싫으면 싫다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완벽을 추구하는 엄마 밑에서 체벌과 질책으로 아이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딸아이는 단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웃음을 배우고 난 후 엄마가 바뀌자 아이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행복하니 아이도 행복해했다. 엄마가 잘 웃으니 아이도 잘 웃었다. 딸아이는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놀 줄도 알게 되었다. 성적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한번은 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딸아이의 대화를 진연 씨가 우연히 듣게 되었다. 딸아이가 친구에게 “나는 그건 싫어”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관심을 사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미움 받지 않기 위해 진연 씨가 감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소리인 ‘싫다’는 의사표현을 딸아이는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연 씨는 마음이 뭉클하면서 너무나 기뻤다. 남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던 아이가 엄마랑 웃다 보니 어느새 담대해지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졌다.
이제 자신감이 넘쳐서 세상이 다 내 집인 줄 아는 아이를 볼 때마다 진연 씨는 엄마로서 자신이 웃음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낀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웃음을 선택했지만 웃음으로 인해 진연 씨는 다른 엄마가 되었고 딸아이도 달라지게 되었으니, 웃음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다시 한 번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웃음을 배우고 나서 갑자기 모든 것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증 때문에 진연 씨는 몇 번을 다시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모든 전화를 피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웃음세미나를 들었다. 그렇게 웃고 가면 다시 힘을 얻어 즐거운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진연 씨가 대구에서 서울까지 그렇게나 자주 올라왔던 것은 그녀의 피나는 노력이었음을 나는 진연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웃음은 그녀에게 피나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매일매일 웃음을 선택하기 위해 싸워야 했으니까 말이다.
지금 진연 씨는 누구보다 웃음을 생활 속에서 잘 실천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진연 씨는 딸과 눈을 맞추며 함께 웃는다.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다. 하하하!”
웃음으로 아내가 바뀌자 남편은 그녀가 서울에 간다고 하면 항상 기쁜 얼굴로 대환영 이라고 한다.
요즘 진연 씨는 웃음치료 강의를 하러 다니느라 행복하고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그녀처럼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나 힘든 고통을 함께 나누고 웃음의 기적을 가르치는 안내자가 된 것이다. 진연 씨는 <영남일보>에도 몇 차례 웃음치료 강사로 소개되었으며, 요즘에는 부모 상담심리에 흠뻑 빠져 지낸다. 누구보다 많은 아픔을 겪은 진연 씨가 진솔하게 자기 아픔을 털어놓고, 웃음을 통해 그것을 극복한 사연을 나누면 많은 부모들이 공감을 한다고 한다.
그녀가 웃음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딸아이가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
“강사님, 오셨어요? 가방 이리 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옷도 주시고요.” 자신의 가방을 들어주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딸아이를 보면 고맙기 그지없다. 언제나 굳어서 주눅 들어 있던 딸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꽃은 진연 씨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소장님, 전 항상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만이라도 행복해졌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런데 웃음 덕분에 제 소망이 이루어졌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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