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숙제나 의무가 아닌, 놀이요 즐거움이다.
삶 속에 내포된 고통과 슬픔마저도 고통의 놀이요,
슬픔의 놀이이다.
삶이 오로지 고통 자체라면 그 삶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까?
그런데 아무리 지독한 고통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도 익숙해지고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그 고통을 즐기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
동서양 고금을 통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뜻
남녀 간의 지극한 성희(性戱)를 그 첫 번째에 둘 것 같다.
남녀 간의 몸과 마음의 교합은 한 순간이지만
쾌락의 절정임을 누구든 인정하리라.
그래서 힌두이즘에서도 명상의 기쁨을
성의 기쁨에 자주 비유한다.
그런데 명상의 세계를 맛 본 사람은 성희가
그리 깊은 즐거움이 아닌 지극히 거칠고
순간적이고 얄팍한 쾌락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성희 다음에는 극심한 육신과 정신의
에너지 소진, 그리고 그 다음 급격한 좌절감과
상실감이 따르리라.
영혼의 충족감을 맛보지 못했기에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갈증에 시달린다.
성희는 젊은 날 한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어서
나이 들어서도 이 쾌락에 계속 집착하면
그 삶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왜소화되어 생명의
진화에 치명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육신에 갇힌 감각적 삶이란 세계의 영적 스승들이
그토록 한결 같이 경계하는 쾌락적 삶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 한 미숙한 삶이다.
반면 명상은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몸과 정신에
에너지가 충전되고 그 즐거움도 갈수록 더 깊어지고 더 커진다.
또한 명상의 기쁨은 육신이 노쇠하여도 더욱 더
투명해지고 무르익어 가는 영혼의 심오한 환희이다.
성희가 온갖 불순물이 내재된 단물이라면,
명상은 옹달샘에서 막 퍼올린 샘물 같이 맑고
담백한 정화된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도의 영적 지도자 크리슈나는
“명상의 기쁨은 성의 즐거움보다
수 만 배 더 깊고 크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코리안아쉬람카페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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