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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안수정등 이야기(岸樹井藤)

by 법천선생 2025. 4. 7.

한 나그네가 광야를 거닐다가 미친 코끼리를

만나 도망치고 있었다.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눈빛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마을은 아득하고 나무 위건 돌 틈이건 안전한

곳은 없다.

 

숨을 곳을 찾아 사방으로 내달리다 겨우 발견한

곳이 바닥이 말라버린 우물이다.
 
저곳이면 그래도 괜찮겠지, 우물 곁 등나무 뿌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다가 그는 다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컴컴한 바닥에 시커먼 독룡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서야 먹잇감을 노리며 사방에서 혀를

널름거리는 네 마리의 독사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할까, 그는 하얗게 질려버렸다. 

쫓아온 코끼리가 코를 높이 치켜들고 포효하고

있었다. 올라오기만 하면 밟아버릴 태세다.
 
믿을 것이라고는 가느다란 등나무 뿌리 한 줄기뿐이다. 

그러나 그 뿌리마저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번갈아가며 갉아먹고 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얼굴 위로 무언가 떨어져 입으로 흘러들었다. 

꿀이었다. 

 

등나무 덩굴 위에 벌집이 있었던 것이다. 

똑, 똑, 똑, 똑, 똑, 다섯 방울의 달콤함과 감미로움에

취해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벌들이 쏟아져 나와

온몸을 쏘아대고, 두 마리 쥐가 쉬지 않고 뿌리를

갉아먹고, 사방에서 독사들이 쉭쉭거리고, 사나운

들불이 일어나 광야를 태우는 데도 그는 눈을 꼭

감고 바람이 다시 불기만 기다렸다. 

 

다섯 방울의 꿀맛만 기억하고, 그 맛을 다시 볼 순간만

기약한 채 그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잊고 있었다. 

나의 삶도 이 나그네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岸樹井藤, 불설비유경, 부처님 생애, 조계종 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