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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의 삶에 대한 증거들
자크 모노의 과학적인 이론에도 불구하고 사후의 삶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죽음 너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게되는 것일까? 확실히 육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영혼? 그렇다면 그 본질은 무엇일까? 기억인가? 어떻게 기억이 물질화될 수 있을까?
서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이 주제에 대한 최근의 탐구는 의학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이루어져있다. 이 연구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쿠블러 로스 박사의 연구에서 주요한 자극을 받았다. 쿠블러 로스 박사에 따르면 되살아난 수백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는 의심의 그늘을 벗어나 사후의 삶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5년 인디애나주(州) 리치몬드시(市)의 강연에서 쿠블러 로스박사는 임사체험(臨死體驗)의 세가지 공통점을 지적했다. 영혼이 육체밖으로 떠오르는 기분, 평화스러움과 안도감,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모두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강의중에 한 말이다. 쿠블러 로스 박사의 연구는 아칸소스 주지사인 데이빗 프라이어의 부인 바바라 프라이어와의 신문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프라이어 여사는 1971년 추수감사절에 워싱턴 병원에서 자궁절제수술 도중 폐색전(폐의 핏덩어리)이 생겼다. 담당의사는 도날드 페인 박사였다. 의식을 잃기전에 그녀는 의사의 얼굴에 떠오른 공포를 보았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내 영혼은 허공으로 떠올랐습니다. 아주 평화로왔어요. 침대위에 있는 나의 육체를 볼수 있었고, 한 때 그것이 나에게 속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육체에 집착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어요. 정말 그 육체에 무슨 일이 생기든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페인박사는 간호원에게 소리쳤다.
"청색 코드, 청색 코드!"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 경우의 응급 코드 였다. 후에 페인박사는 당시 자신이 프라이어여사의 가슴을 두들기고 심장 맛사지를 행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프라이어여사는 그녀의 영혼이 그 방을 떠나올때 갑자기 간호원과 의사들로 꽉찬 그 방에서 필사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당신들은 뭘 그리 열심히 하고있죠. 난 너무나 행복한데.'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이 내 육체로 다가가서 심장에 주사를 놓더군요. 그러자 간호원들이 달려왔고 서두르다가 정맥주사 받침대를 건드렸어요. 나는 받침대가 침대로 넘어지고 링게르병이 육체의 얼굴을 치는 것을 보았습읍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내 아래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몇 년전에 백혈병으로 죽은 남동생을 곧 만날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죠. 막 동생을 만나려는데 아래에서 내 가슴을 맛사지하는 페인박사가 보였어요. 그는 애원하듯이 소리치고 있었죠 '살아나요, 바바라. 제발 죽지말아요!' 하지만 난 이렇게 말했어요 '아녜요, 당신은 날 숨쉬게 할 수 없어요. 당신들은 날 이 천국에서 끌어낼 수 없을 거예요.' 막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본능적으로 내가 육체로 되돌려졌다는걸 알았죠. 덫에 갇힌 느낌이었고, 억지로 되돌려졌다는데 화가 났어요. 그 의사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거예요. 여러가지 장치가 내 주위에 잔뜩 널려있었고 내 눈 주변에는 검푸른 멍이 들어있었죠. 간호사는 내가 이미 알고있는 사실을 털어놨어요. 어떤 간호사가 실수로 주사병을 건드려서 내 얼굴로 떨어졌노라고. 몸을 떠난 것은 굉장한 체험이었어요. 나는 그곳에 이 세상에서는 알수 없는 어떤 것, 평화와 고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 이야기의 얼마만큼이 마취상태에서 무의식이 만들어낸 것이고, 얼마만큼이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을 가릴 방법은 없다. 카톨릭 상담가이며 작가인 유진 케네디 박사는 죽음 후의 삶은 '익숙해질 수 없는 신비'로 남을 것이라고 믿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을 언급하면서 케네디 박사는 이러한 경험들은 "심리적인 것이며, 사후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샬롯스빌의 심리치료사 죠지 리치 박사는 1943년 의학적으로 죽었다고 판명난 후에 다시 살아났다. 그는 9분동안 '삶 이후의 삶'을 경험했다. (1977년 7월 3일 <워싱턴 포스트지> 윌리엄 길데아의 '9분동안의 죽음')
리치의 죽음은 확실히 증명됐다. 의료진의 증언이 있으며, 그 중의 한 의사는 리치의 경우 "사실상의 죽음을 겪고 건강하게 돌아온 것은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그 사건은 이렇게 벌어졌다.
1943년 겨울, 리치는 미육군의 사병으로 폐렴때문에 입원생활을 하고있었다. 날마다 그의 상태는 악화되어갔으며, 일주일후 그는 화씨 106.5도까지 오르며 의식을 잃었다. 24시간 후 아무런 생명의 징후를 보이지 않아 사망으로 확인됐다.
9분정도 지난 후, 리치가 죽은 것을 발견했던 간호사가 그 젊은 사병이 움직인것 같다고 했다. 의사가 다시 검진을 하고는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고 확인했지만 간호원을 안심시키기 위해 리치에게 아드레날린을 주사했다. 그러자 생명의 징후가 돌아왔다.
그 9분 동안 리치에게 일어난 일은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평화로운 느낌을 가졌고, 소음을 들었으며, 육체를 떠나 빛의 존재를 만나고, 자기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되돌아 보았으며, 경계선 혹은 한계에 다가갔다. 병을 앓기 전에 그는 리치몬드의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죽어서도 그의 본능은 리치몬드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작고 외진 방의 침대 구석에 앉아 있었다. 내 유니폼을 찾으려고 하다가 나는 내 육체가 거기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한가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기차를 놓친 것이다. 리치몬드로 돌아가야 하는데... 리치몬드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오다가 쟁반을 들고 오는 간호보조사를 만났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보려고 돌아서는데, 그는 나를 뚫고 지나갔으며 나도 그를 뚫고 지나갔다. 여기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하질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아주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있다. 밖으로 나와서 휘익하면서......맙소사, 소리만큼이나 빨리 나무 위로 백이나 5백피트 정도 높이에서 날아갔다. 순식간에 아주 큰 강을 거너고 작은 마을에 다다랐다. 어떤 청년이 혼자 거리를 내려오고 있었고 길 모퉁이에는 심야카페가 있었다. 나는 그 청년 곁으로 다가가 여기가 어디인지를 물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도 못하고 나를 보지도 못했다. 그의 뺨을 툭쳐서 날 보게 하려고 하는데 내 손은 그의 몸을 뚫고 통과하고 말았다. ( 일년후 나는 이 마을을 지나갔는데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차를 운전하는 친구에게 '이 거리로 한 구역만 더 가면 심야 카페가 나올거야'하고 말했다. 거기엔 실제로 카페가 있었다. 그 마을은 미시시피의 빅스벅이라는 곳이다.) 갑자기 내가 침대에 육체를 놔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갈 이유가 없었다. 돌아오기로 맘을 먹자마자 나는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육체로 다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아주 거대한 빛과 마주친다. 그것은 마치 '백만개의 용접 불빛'을 켜놓은것 같았다. 그 빛속에서 '순수한 빛의 모습'이 걸어나왔다. 그리고 병원의 벽이 사라지면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인생에 일어난 모든 일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모든 일이 상세하게 나타났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한 모든 일들 , 개인적으로 한 일들, 빛 속에서 또는 어둠 속에서 했던 일들"이. 하지만 리치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처럼 전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 속에 있어본 일이 없었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위대한 존재는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얼마전만해도 절망스럽고 고독하고 두렵고 우울했었는데, 이 존재 안에 있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존재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리치에 따르면 그 모습 자체는 "쉽게 알아볼수 있는 모습이지만 인간의 형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은 온통 빛이었다. 그 모습은 리치를 '생명의 다른 영역'으로 인도해 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병실로, 그리고 육체속으로...
이 주제에 관한 책으로, 스테디 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레이몬드 무디 박사의 <삶 이후의 삶>이 있다. 프라이어 여사와 같은 경우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글이다. 무디 박사는 그가 연구한 경험들을 세가지 범주로 나눈다.
1, 의사에 의해 의학적으로 사망하였다고 진단이 내려진 후에 되살아난 사람의 경험.
2, 사고나 심각한 상해 혹은 질병에 의해 육체적인 죽음에 매우 가까이 간 사람의 경혐.
3, 죽어가는 사람이 그 경험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준 경우.
무디 박사는 모두 합쳐 150가지의 사례들을 검토했다. 그에 따르면, 죽음을 초래한 상황과 그 일을 당한 사람의 유형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경험 자체는 놀랄만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 유사성이 하도 커서 누구라도 그가 수집한 자료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열 다섯개 정도의 공통된 요소를 쉽게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임사체험은 대개 이 과정을 따른다. 엄청난 육체적 고통과 함께 의사가 사망을 진단하는 소리를 듣는다. 커다란 종소리나 와글대는 소리가 들린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르게 빠져나온다. 이제 자신의 육체 바깥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여전히 육체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다. 이것이 괴상한 느낌을 준다. 이제 그는 오래 전에 죽은 친구나 친척들이 그를 만나러 오고 있다는걸 느낀다. 그리고 빛의 모습을 한 사랑스럽고 따뜻한 영혼 안에 있음을 알게된다. 그는 자기 인생을 평가받고 싶어 한다. 삶의 주요사건들이 즉각 재연된다. 그러나 곧 그는 어떤 장애물 같은 것을 만나게 된다. 그의 내면에 갈등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 새로운 환경에 몹시 행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에서 당기는 힘이 아주 강해지고, 그는 떠난지 얼마 안되는 몸 속에 다시 합쳐진다.
여기서 우리는 무디의 증인들이 임사체험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다고 가정하기로 하자. 무디 박사 자신도 심리학적, 생리학적, 약리학적, 신경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가를 검토했다. 아마 우리가 그런 것처럼 그도 그들의 진술이나 자신의 결론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임사체험이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설명과 해석이 필요한 특이한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남겨 놓기로 하자."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과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자. 사후 체험 연구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주제를 과학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실험그룹을 만들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암연구회 회원인 찰스 가필드 박사는 쿠블러 로스 박사가 죽음 뒤에는 반드시 다른 삶이 있다고 단언한다면 자기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또한 죽음에 대한 그런 모든 이야기는 착란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환상일 뿐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과학적 유물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이며, 이 애매 모호한 상태를 그냥 견뎌볼 볼 작정이다."
뉴욕시의 '심령연구를 위한 미국인 모임'의 심리학자인 카를리스 오시스는 환자 임종시의 체험을 보고한 877명의 의사와 면담하고 컴퓨터를 잉요해 그 내용을 도표로 만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죽어가는 환자가 친절한 영이 자기 영혼을 맞이하러 다가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뉴스위크에 보도된 대로, 오시스 박사는 고열이나 질병으로 뇌가 손상된 환자는 그런 체험을 하는 일이 오히려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시스 박사는 모르핀이나 디메롤같은 강한 약품은 사실상 그런 체험의 일관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병든 뇌'라는 개념으로는 그 체험을 설명하지 못한다. 더우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은 일관된 유형을 보여 준다." 오시스 박사의 설명이다. 증거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은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있고 죽음 후에도 남는다고 보는 시각이 가능하다."
오시스 박사의 보고에 포함된 주요한 발견은 죽어가는 환자를 데리러 온 것처럼 보이는 '영(靈)'이다. 이 '영'은 많은 사례들에서 반복된다. 오시스 박사에 따르면, 이 영은 환자의 종교나 문화적 배경과도 무관하다.
"영이 데리러 오는 상황은 미국이건 인도건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성경이나 <기타>에서 심어주는 이미지와 상관이 없다."
오시스 박사는 만약 임종의 체험이 정말로 '종교적 체험'이라면, 평화로움이나 고요함을 기대할 수 있고 사실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환자들이 그들의 친척들이 울고 있을 때조차 정신적으로 고양된다. 육체의 죽음 후에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인도의 요기 스와미 라마는 그의 책 <이 삶과 그 후의 삶>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영혼인 지바(jiva)가 떠나면 삶의 에너지인 프라나(prana)도 떠나가고, 프라나가 떠나면 다른 모든 기관도 뒤따른다.
"특정한 의식(意識)과 함께 영혼은 유체 속으로 들어간다. 그 의식에 가장 어울리는 몸으로"
이는 지식과 행동, 과거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자크 모노의 과학적인 이론에도 불구하고 사후의 삶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죽음 너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게되는 것일까? 확실히 육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영혼? 그렇다면 그 본질은 무엇일까? 기억인가? 어떻게 기억이 물질화될 수 있을까?
서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이 주제에 대한 최근의 탐구는 의학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이루어져있다. 이 연구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쿠블러 로스 박사의 연구에서 주요한 자극을 받았다. 쿠블러 로스 박사에 따르면 되살아난 수백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는 의심의 그늘을 벗어나 사후의 삶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5년 인디애나주(州) 리치몬드시(市)의 강연에서 쿠블러 로스박사는 임사체험(臨死體驗)의 세가지 공통점을 지적했다. 영혼이 육체밖으로 떠오르는 기분, 평화스러움과 안도감,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모두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강의중에 한 말이다. 쿠블러 로스 박사의 연구는 아칸소스 주지사인 데이빗 프라이어의 부인 바바라 프라이어와의 신문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프라이어 여사는 1971년 추수감사절에 워싱턴 병원에서 자궁절제수술 도중 폐색전(폐의 핏덩어리)이 생겼다. 담당의사는 도날드 페인 박사였다. 의식을 잃기전에 그녀는 의사의 얼굴에 떠오른 공포를 보았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내 영혼은 허공으로 떠올랐습니다. 아주 평화로왔어요. 침대위에 있는 나의 육체를 볼수 있었고, 한 때 그것이 나에게 속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육체에 집착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어요. 정말 그 육체에 무슨 일이 생기든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페인박사는 간호원에게 소리쳤다.
"청색 코드, 청색 코드!"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 경우의 응급 코드 였다. 후에 페인박사는 당시 자신이 프라이어여사의 가슴을 두들기고 심장 맛사지를 행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프라이어여사는 그녀의 영혼이 그 방을 떠나올때 갑자기 간호원과 의사들로 꽉찬 그 방에서 필사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당신들은 뭘 그리 열심히 하고있죠. 난 너무나 행복한데.'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이 내 육체로 다가가서 심장에 주사를 놓더군요. 그러자 간호원들이 달려왔고 서두르다가 정맥주사 받침대를 건드렸어요. 나는 받침대가 침대로 넘어지고 링게르병이 육체의 얼굴을 치는 것을 보았습읍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내 아래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몇 년전에 백혈병으로 죽은 남동생을 곧 만날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죠. 막 동생을 만나려는데 아래에서 내 가슴을 맛사지하는 페인박사가 보였어요. 그는 애원하듯이 소리치고 있었죠 '살아나요, 바바라. 제발 죽지말아요!' 하지만 난 이렇게 말했어요 '아녜요, 당신은 날 숨쉬게 할 수 없어요. 당신들은 날 이 천국에서 끌어낼 수 없을 거예요.' 막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본능적으로 내가 육체로 되돌려졌다는걸 알았죠. 덫에 갇힌 느낌이었고, 억지로 되돌려졌다는데 화가 났어요. 그 의사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거예요. 여러가지 장치가 내 주위에 잔뜩 널려있었고 내 눈 주변에는 검푸른 멍이 들어있었죠. 간호사는 내가 이미 알고있는 사실을 털어놨어요. 어떤 간호사가 실수로 주사병을 건드려서 내 얼굴로 떨어졌노라고. 몸을 떠난 것은 굉장한 체험이었어요. 나는 그곳에 이 세상에서는 알수 없는 어떤 것, 평화와 고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 이야기의 얼마만큼이 마취상태에서 무의식이 만들어낸 것이고, 얼마만큼이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을 가릴 방법은 없다. 카톨릭 상담가이며 작가인 유진 케네디 박사는 죽음 후의 삶은 '익숙해질 수 없는 신비'로 남을 것이라고 믿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을 언급하면서 케네디 박사는 이러한 경험들은 "심리적인 것이며, 사후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샬롯스빌의 심리치료사 죠지 리치 박사는 1943년 의학적으로 죽었다고 판명난 후에 다시 살아났다. 그는 9분동안 '삶 이후의 삶'을 경험했다. (1977년 7월 3일 <워싱턴 포스트지> 윌리엄 길데아의 '9분동안의 죽음')
리치의 죽음은 확실히 증명됐다. 의료진의 증언이 있으며, 그 중의 한 의사는 리치의 경우 "사실상의 죽음을 겪고 건강하게 돌아온 것은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그 사건은 이렇게 벌어졌다.
1943년 겨울, 리치는 미육군의 사병으로 폐렴때문에 입원생활을 하고있었다. 날마다 그의 상태는 악화되어갔으며, 일주일후 그는 화씨 106.5도까지 오르며 의식을 잃었다. 24시간 후 아무런 생명의 징후를 보이지 않아 사망으로 확인됐다.
9분정도 지난 후, 리치가 죽은 것을 발견했던 간호사가 그 젊은 사병이 움직인것 같다고 했다. 의사가 다시 검진을 하고는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고 확인했지만 간호원을 안심시키기 위해 리치에게 아드레날린을 주사했다. 그러자 생명의 징후가 돌아왔다.
그 9분 동안 리치에게 일어난 일은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평화로운 느낌을 가졌고, 소음을 들었으며, 육체를 떠나 빛의 존재를 만나고, 자기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되돌아 보았으며, 경계선 혹은 한계에 다가갔다. 병을 앓기 전에 그는 리치몬드의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죽어서도 그의 본능은 리치몬드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작고 외진 방의 침대 구석에 앉아 있었다. 내 유니폼을 찾으려고 하다가 나는 내 육체가 거기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한가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기차를 놓친 것이다. 리치몬드로 돌아가야 하는데... 리치몬드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오다가 쟁반을 들고 오는 간호보조사를 만났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보려고 돌아서는데, 그는 나를 뚫고 지나갔으며 나도 그를 뚫고 지나갔다. 여기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하질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아주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있다. 밖으로 나와서 휘익하면서......맙소사, 소리만큼이나 빨리 나무 위로 백이나 5백피트 정도 높이에서 날아갔다. 순식간에 아주 큰 강을 거너고 작은 마을에 다다랐다. 어떤 청년이 혼자 거리를 내려오고 있었고 길 모퉁이에는 심야카페가 있었다. 나는 그 청년 곁으로 다가가 여기가 어디인지를 물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도 못하고 나를 보지도 못했다. 그의 뺨을 툭쳐서 날 보게 하려고 하는데 내 손은 그의 몸을 뚫고 통과하고 말았다. ( 일년후 나는 이 마을을 지나갔는데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차를 운전하는 친구에게 '이 거리로 한 구역만 더 가면 심야 카페가 나올거야'하고 말했다. 거기엔 실제로 카페가 있었다. 그 마을은 미시시피의 빅스벅이라는 곳이다.) 갑자기 내가 침대에 육체를 놔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갈 이유가 없었다. 돌아오기로 맘을 먹자마자 나는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육체로 다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아주 거대한 빛과 마주친다. 그것은 마치 '백만개의 용접 불빛'을 켜놓은것 같았다. 그 빛속에서 '순수한 빛의 모습'이 걸어나왔다. 그리고 병원의 벽이 사라지면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인생에 일어난 모든 일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모든 일이 상세하게 나타났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한 모든 일들 , 개인적으로 한 일들, 빛 속에서 또는 어둠 속에서 했던 일들"이. 하지만 리치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처럼 전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 속에 있어본 일이 없었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위대한 존재는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얼마전만해도 절망스럽고 고독하고 두렵고 우울했었는데, 이 존재 안에 있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존재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리치에 따르면 그 모습 자체는 "쉽게 알아볼수 있는 모습이지만 인간의 형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은 온통 빛이었다. 그 모습은 리치를 '생명의 다른 영역'으로 인도해 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병실로, 그리고 육체속으로...
이 주제에 관한 책으로, 스테디 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레이몬드 무디 박사의 <삶 이후의 삶>이 있다. 프라이어 여사와 같은 경우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글이다. 무디 박사는 그가 연구한 경험들을 세가지 범주로 나눈다.
1, 의사에 의해 의학적으로 사망하였다고 진단이 내려진 후에 되살아난 사람의 경험.
2, 사고나 심각한 상해 혹은 질병에 의해 육체적인 죽음에 매우 가까이 간 사람의 경혐.
3, 죽어가는 사람이 그 경험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준 경우.
무디 박사는 모두 합쳐 150가지의 사례들을 검토했다. 그에 따르면, 죽음을 초래한 상황과 그 일을 당한 사람의 유형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경험 자체는 놀랄만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 유사성이 하도 커서 누구라도 그가 수집한 자료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열 다섯개 정도의 공통된 요소를 쉽게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임사체험은 대개 이 과정을 따른다. 엄청난 육체적 고통과 함께 의사가 사망을 진단하는 소리를 듣는다. 커다란 종소리나 와글대는 소리가 들린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르게 빠져나온다. 이제 자신의 육체 바깥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여전히 육체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다. 이것이 괴상한 느낌을 준다. 이제 그는 오래 전에 죽은 친구나 친척들이 그를 만나러 오고 있다는걸 느낀다. 그리고 빛의 모습을 한 사랑스럽고 따뜻한 영혼 안에 있음을 알게된다. 그는 자기 인생을 평가받고 싶어 한다. 삶의 주요사건들이 즉각 재연된다. 그러나 곧 그는 어떤 장애물 같은 것을 만나게 된다. 그의 내면에 갈등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 새로운 환경에 몹시 행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에서 당기는 힘이 아주 강해지고, 그는 떠난지 얼마 안되는 몸 속에 다시 합쳐진다.
여기서 우리는 무디의 증인들이 임사체험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다고 가정하기로 하자. 무디 박사 자신도 심리학적, 생리학적, 약리학적, 신경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가를 검토했다. 아마 우리가 그런 것처럼 그도 그들의 진술이나 자신의 결론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임사체험이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설명과 해석이 필요한 특이한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남겨 놓기로 하자."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과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자. 사후 체험 연구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주제를 과학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실험그룹을 만들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암연구회 회원인 찰스 가필드 박사는 쿠블러 로스 박사가 죽음 뒤에는 반드시 다른 삶이 있다고 단언한다면 자기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또한 죽음에 대한 그런 모든 이야기는 착란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환상일 뿐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과학적 유물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이며, 이 애매 모호한 상태를 그냥 견뎌볼 볼 작정이다."
뉴욕시의 '심령연구를 위한 미국인 모임'의 심리학자인 카를리스 오시스는 환자 임종시의 체험을 보고한 877명의 의사와 면담하고 컴퓨터를 잉요해 그 내용을 도표로 만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죽어가는 환자가 친절한 영이 자기 영혼을 맞이하러 다가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뉴스위크에 보도된 대로, 오시스 박사는 고열이나 질병으로 뇌가 손상된 환자는 그런 체험을 하는 일이 오히려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시스 박사는 모르핀이나 디메롤같은 강한 약품은 사실상 그런 체험의 일관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병든 뇌'라는 개념으로는 그 체험을 설명하지 못한다. 더우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은 일관된 유형을 보여 준다." 오시스 박사의 설명이다. 증거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은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있고 죽음 후에도 남는다고 보는 시각이 가능하다."
오시스 박사의 보고에 포함된 주요한 발견은 죽어가는 환자를 데리러 온 것처럼 보이는 '영(靈)'이다. 이 '영'은 많은 사례들에서 반복된다. 오시스 박사에 따르면, 이 영은 환자의 종교나 문화적 배경과도 무관하다.
"영이 데리러 오는 상황은 미국이건 인도건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성경이나 <기타>에서 심어주는 이미지와 상관이 없다."
오시스 박사는 만약 임종의 체험이 정말로 '종교적 체험'이라면, 평화로움이나 고요함을 기대할 수 있고 사실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환자들이 그들의 친척들이 울고 있을 때조차 정신적으로 고양된다. 육체의 죽음 후에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인도의 요기 스와미 라마는 그의 책 <이 삶과 그 후의 삶>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영혼인 지바(jiva)가 떠나면 삶의 에너지인 프라나(prana)도 떠나가고, 프라나가 떠나면 다른 모든 기관도 뒤따른다.
"특정한 의식(意識)과 함께 영혼은 유체 속으로 들어간다. 그 의식에 가장 어울리는 몸으로"
이는 지식과 행동, 과거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