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랜만에 만나고 싶어 하던 그리운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 분이 보내주신 반가운 사랑을 느껴보았는가? 어제 유도와 양궁부가 전국에 이름을 크게 떨치고 있는 여자중학교에 훈련점검을 갔다. 체육교사와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모님이 기독교병원 간호부장을 거쳐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시다가 이제는 정년퇴직을 하셨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심하다가 무의탁 노인들의 소용시설로 봉사활동을 가셨다고 하였다. 모든 준비물을 본인의 비용으로 준비한 다음 매주 수요일날 그곳에 가면 벌써 두 번째인데도 지난번 본인이 가지고 가셨던 사이다을 마시지도 않으신 채 가지고 계시다가 만나자마자 뚜껑을 다서 반갑다면서 따라주면서 너무나 반가워하는 그들에게서 어디에서도 비할 수 없을 것 같은 큰 사랑의 마음을 느꼈다고 하였다. 이 말에서 나는 북치는 소년이 생각났다. 동방박사들이 빛을 보고 메시아가 온 것을 경배하러 동방에서 어렵고도 머나먼 여행을 했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경축하기 위하여 꽃이며, 귀금속이며, 향수며 모든 좋은 물건을 들고 나와 경배하였는데 집안 너무나 가난한 소년은 그 어떤 물건도 내놓을 것이 없자 유일한 그의 집안 물건이 북을 정성껏 치면서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했다고 한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뿐이었지만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계셨다면 부자가 큰 보물을 내놓은 것보다 더 높은 점수를 주셨을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dfl주일내내 단른사람이라고는 보지도 못했던 그네들에게 따듯한 물로 2시간에 걸쳐 정성껏 목욕을 시켜주고 귀도 후벼주고 손톱손질도 해주면서 김밥을 준비하여 함깨 점심식사도 하면서 하루를 지내다 돌아올때면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주 수요일날 꼭 다시오라고 했을 때 세상의 그 어떤 약속도 버리고 다시오게 되더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어쩔 수 없었다. 신이 우리를 창조했을 때, 남을 나처럼 생각하고 봉사하면 너에게 훨씬 더 큰 영광을 주리라고 하신 말씀이 사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록펠러 :
19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강철 왕 A. 카네기, 자동차 왕 H. 포드와 함께 석유사업의 왕으로서 미국자본주의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찍이 농산물 도매 업을 시작하여 1870년 엔 오하이오에 스탠다드 석유회사를 세웠고, 1882년엔 스탠다드 석유 트라스트를 만들어 전 산업을 석권하는 기업합동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구요. 그는 석유사업에서 번 돈을 자본으로 하여 광산, 산림, 철도, 은행등에 투자하여 거대 재벌을 형성하였습니다.
한때 그는 지독한 악덕 자본가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거액의 기부금을 출연하여 1892년에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 중의 하나인 시카고대학을 세웠고, 1913년엔 저 유명한 록펠러 재단을 세워 병원, 교회, 학교등 많은 문화사업과 자선사업을 시작하였답니다.
이러한 록펠러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
일화1
록펠러가 한번은 허름한 이발관에가서 이발을 했답니다.
이발사는 당연히 대부호가 이발을 하러왔으니 엄청난 팁을 바라고 정성스럽게 이발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록펠러는 단돈 1달러를 팁으로주었답니다
이발사가말했죠. "회장님, 회장님의 아드님께서도 이것보다는 더주실거 같은데요..."
그러자 록펠러가 "그는 부자인 아버지가 있지만 난 부자인 아버지가 없소"
이 일화는 물질만능주의 풍토의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있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일화 2
록펠러는 33살 때 이미 최초의 백만 달러를 저축하고 있었습니다. 43세 때에는 세계 최대의 독점 사업 스탠다아드 석유 회사를 설립지만 53세 고민과 극도의 긴장된 생활로 그는 산송장 그대로였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 제일의 부호였으나, 그의 1주일 동안의 식비는 2달러도 들지 않았습니다. 소량의 산화 밀크와 2-3개의 크래커가 의사가 허락한 음식물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59세로 죽지 않고 98세까지 장수를 누렸던 것은 가장 비싼 의사의 치료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이전의 그는 좋은 돈벌이가 있다는 뉴스를 들을 때 이외에는 결코 웃는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손해를 입었다고 하면 곧 앓아 누웠습니다. 그는 1년에 5십만 달러 이상의 큰 거래를 하고 있었으면서도 불과 150달러의 보험금을 손해 봤다고 생병이 나서 침상에 눕기까지 했습니다.
그에게는 운동이나 오락에 허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만 돈벌이와 주일 학교에서 봉사하는 시간을 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밤마다 침상에 누워서 내 성공이 다만 일시적인 것이 아닌가 불안해했으며 고용인이나 동료들이 외부 사람들에게 사업상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을까 불안해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전혀 신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의사들은 돈이냐, 생명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고 그는 은퇴하였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꽃을 가꾸고 이웃 사람들과 잡담을 하며 카드놀이도 하고 노래도 하였습니다. 그가 한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다른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애 처음으로 얼마만큼 돈을 벌 수 있는가의 생각을 그치고 돈이 인간의 행복에 얼마만큼 소요되는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록펠러는 그 막대한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교회에 자신이 기부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면 전국에서는 부정한 돈에 손대지 말라는 부르짖음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하여 주었습니다.
록펠러는 세계 방방곡곡에 이상으로 불타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가지가지의 운동이 자금 결핍으로 인하여 중단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사업을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 개척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의 재산의 원호에 의하여 발견된 페니실린을 비롯하여 많은 기적적 발견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척수염이니, 말라리아니, 결핵, 유행성 감기, 디프테리아 등 많은 질병 치료법의 진보에 대하여 그에게 힘입은 바는 실로 큰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록펠러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아주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
일화 3
석유왕 록펠러에게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기를 당해 원금을 모두 날렸다죠.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 밀린 임금을 요구했구요. 빚 독촉에 시달리던 록펠러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떠올렸고,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신앙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를 했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 있었는데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사람들은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수군거렸구요. 그때 갑자기 황금 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고, 그것이 바로 석유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살 직전의 록펠러는 유전을 발견해 일약 거부가 된 것이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내용출처 : 본인작성
'명상개념 > 염불현실감통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은 인사작업 중 (0) | 2008.02.16 |
---|---|
감로수 (0) | 2008.01.12 |
명상은 기적을 낳는다(어떤이의 체험담) (0) | 2008.01.03 |
어던 사람의 명상체험담 (0) | 2007.12.16 |
쉿! 비밀 (0) | 2007.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