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는 것일까?
그에 따른 결과는 무엇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왜 더욱더 고통에 시달리며,
그 고통의 양은 매일매일 늘어만 가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요즘 인간들이 고기를 너무 많이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옛날에는 -
제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기를 즐겨 먹지 않았다.
동양 사람들은 1년 가야 한두 번 명절 같은 날이나 겨우 고기 구경을 했지만,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고기를 먹을 때가 있다.
이에 비하면 서양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고기를 많이 먹는 것과 인간의 고통이 늘어나는 것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옛날에는 고기가 먹고 싶어지면,
숲에서 사냥한 동물을 집으로 가져와 가족들과 함께 먹곤 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는 의식(에너지)이
있기 때문에 동물과 고기를 먹는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때 형성된 관계, 즉 그 당시 그들의 업(karma)은 간단했다.
활이나 창에 찔려 죽게 된 동물들은 죽으면서
자신들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 나쁜 사람이 지금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구나.
아마도 다음 생에서는 내가 그를 잡아먹으리라."
당시에는 오직 한 사람과 한 동물 사이의 관계로 끝나게 되므로
비교적 단순한 인과의 고리만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 21세기에 들어와서는 -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인간의 기술은 급격히 발전했다.
동물들을 한꺼번에 대량 급속히 사육하는 기술이 발전되었다.
또한 동물들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특별한 도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만 동물들이 단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세계에서 매일 도살되고 있다.
공장에서 단추 하나만 누르면
멀리 떨어져 있는 동물들을 한꺼번에 죽일 수도 있다.
- 동물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출현 -
느닷없이 살해된 동물들의 의식(consciousness)역시 육체에서 분리된 채
세상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시 태어날 새로운 몸을 찾게 된다.
어디로 갈지는 그들 자신도 모른다.
그들 중 몇몇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인간으로 환생한 동물이 0.00001%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한편 요즘 사람들 중에는 겉은 인간의 형상이면서도
의식은 동물의 그것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즘 인간들을 자세히 보면 비록 얼굴과 몸은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을지라도 의식은 온전한 인간의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개, 고양이의 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토끼, 소, 돼지, 닭, 사자, 호랑이,
뱀의 의식들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사랑과 자비라는 본래 인간의 본성 대신에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동물적 의식만 있는 것이다.
물론 동물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은 서로 많은 차이를 갖고 있으므로
섞여 있으면 좋지 않다.
동물들은 오직 자기들의 종족 번식만을 위해서만 살지,
다른 종과는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개는 개만을 좋아하지, 고양이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뱀, 사자, 토끼도 서로 어울리지 않으며, 새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자기 종들끼리만 몰려다니고,
다른 종이 공격해오면 떼거지로 반격한다.
바로 그것이 동물의 세계인 것이다.
인간 세계도 점점 이와 비슷해지고 있다.
- 오늘 날 정치 상황 -
오늘날 정치 상황도 이와 똑같다.
이 세계에는 정치적, 종교적 신념에 따라
쪼개진 수많은 나라들이 있다.
그들은 각자 군대를 갖고 있고 서로 싸운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점점 총과 폭력에 익숙해진다.
10년이나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사랑, 협력, 남을 돕는 마음 같은 인간 본래의 마음 대신에,
기회만 나면 서로 싸우지 못해 안달이다.
또 인간이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는 서툰 대신 고양이나,
개하고는 아주 쉽게 동화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그의 의식의 일부는 이미 동물이 돼 있는 것이다.
하긴 요즘에는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동물들은 아주 단순하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하지만 인간은 만족을 모른다.
배가 아무리 불러도 또 다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닌다.
옛날 사람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을 잡아 먹었다.
- 동물들의 큰 고통 -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재미를 위해
혹은 몸에 걸치고 다닐 장신구를 만들기 위해 동물을 죽인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보라.
물고기가 걸려 올라오면 좋다고 박수를 치고
서로 칭찬을 해주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물고기의 얼굴을 한번 자세히 보라.
살려고 파닥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물고기들은 웃어대는 인간들 옆에서
"물이 어디 있어, 물이 어디 있어."라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들이 겪는 처절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하물며 이런 사람들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한줌 연민의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겠는가.
알다시피 요즘 이 세계에는 눈만 뜨면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기상이변, 환경오염, 식량부족 문제...... 따지고 보면
모두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개, 고양이, 사자, 뱀, 그 어떤 동물들도
인간만큼 많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 인간이 가장 나쁜 동물인가? -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사고를 오직
고통을 만들어내는 데 쓰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나쁜 '동물'인지도 모른다.
일부 종교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종말'이라고 부르고 있다.
불교에서는 '종말'이라기보다 '모든 것이 완전히 무르익었다'고 본다.
마치 과일처럼 말이다.
무슨 과일이든 꽃에서 열매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썩기 시작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이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역사는 한쪽만
햇빛을 받은 과일과 같은 형상이었다.
햇빛을 받은 쪽이 자본주의이고 나머지 부분이 공산주의이다.
과일은 이제 한 가지 색깔로 변했다.
공산주의라는 빛깔은 없어지고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맛과 색깔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의 색깔과 맛은 온통 '돈'이다.
이념이나 믿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다.
전세계는 오로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으며,
인간의 에너지도 모조리 이곳으로만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성숙의 단계를 지난 과일이 썩으면서 반점이 생기듯
자본주의 세상 곳곳에 반점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중동, 르완다. 유고. 북한,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 등
전세계 곳곳에서 국가간, 민족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념 대립이 끝났는데도 군대는 오히려 늘어났고
대량 살상을 위해 생산된 무기들이 매일매일 거래되고 있다.
과일이 익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일단 익기 시작한 과일은 빨리 썩는다.
자본주의라는 과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미래는 없는가? 썩으면 그만인가?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말세'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썩어가는 과일 안에 있는 '씨'이다.
씨는 이미 과일 안에 들어 있다.
그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원천이다.
- 대자대비의 삶 -
'씨'란 달리 말하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루빨리 무지에서 잠을 깨어
우리 본래의 '씨'인 우리의 본성품을 발견해야 한다.
이 '씨'야말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원천이다.
부처님은 본성을 찾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최초의 인물이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 어디서 왔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많은 사람들은 '당신이 누구인가?' 하고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의사다, 학생이다, 누구의 아내다....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리 바깥의 모습일 뿐이다.
이제 우리 내면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참 삶을 살아야 한다.
진정한 삶이란 바로 대자대비의 삶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들까지도 고통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부터 먼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본성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책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깊이하게 되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생각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하여 '오직 모를 뿐'을 깨달아 우리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 모습이란 바로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라야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고
다른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눈뜸'이다.
'사랑실천채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식을 합시다, 그것이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길입니다. (0) | 2010.10.28 |
---|---|
채식 전문 쇼핑몰을 소개합니다. 채식첫걸음 (0) | 2010.10.23 |
불경속의 채식 (0) | 2010.09.25 |
[스크랩] 불교 경전속의 채식 (0) | 2010.08.29 |
연지대사(蓮池大師)의 일곱 가지 불살생에 대한 교훈 (0) | 2010.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