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naver.com/farseeing/2767
전집 후기들 보면 그림이 맘에 든다 잘 산 거 같다는 말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나는 이 말을 단 1프로도 믿지 않는다.
그림 보는 게 워낙 취향에 민감해서 사람마다 보는 게 딴판이기도 하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사람들이 좋다는 그림에 실망한 적이 많고,
반대로 좋은 그림책이 사람들 취향을 이기지 못하고 평가에 밀려나는 경우를 많이 봐서다.
일단 나를 비롯해서 보통 사람들은 그림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림책 그림을 일러스트레이션이라 하는데, 그건 회화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그림이 회화라고 하면, 그게 무엇을 그린 것인지보다
형태나 선이나 색, 질감, 빛의 처리, 구도 등등등이 중요해진다.
만약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하면 무엇을 그렸는지,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가 먼저다.
그런데 일러스트레이션이 쓰는 도구는 회화와 똑같아서
회화가 발달시킨 모든 것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회화와 가까울수록 일러스트레이션의 표현력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그림책 그림에 대해 말할 때 어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럼, 뛰어난 그림으로 인정받은 것이 된다.
그림으로서의 가치를 판단하려면 회화의 역사도 알아야 하는 거 같고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은 아니니까 여기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런데 종이 한 장의 차이, 그건 엄청난 거다.
우스개로 말하기를, 미술관에서 이게 뭐 그린 거야, 이럼 비웃음을 사지만
그림책 그림을 보고 뭘 그린 줄 알 수 없다면, 얼마든지 비웃어 주어도 된다.
회화에서 인정받은 이가 그림책 작업을 할 때, 어이 없는 수준이 되는 때도 얼마든지 있는 거다.
그러니 그림책 평가에서 그림이 중요하지만, 그 그림은 그림만 봐서는 평가할 수 없다.
그림책 그림은 대부분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다. 문학과 같이 있는, 문학의 성질을 가진 그림이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경험하는 자리에서 그림을 볼 때 그 가치를 드러내는 그림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로, 그림을 보면서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다.
그림책 이론서 가운데에는 그림을 전공한 사람이 쓴 것도 있고 비전공자가 쓴 것도 있는데
그림 전공자가 그림책 그림 평가를 더 잘한다고 말할 수 없다.
글을 보는 눈, 이야기를 느끼는 감수성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아이가 보는 그림책 그림이 예술적으로 뛰어났으면 싶다.
그전에 드로잉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눈이 아니라 손으로 보고 그리라는 말이 있었다.
눈의 감각이 아니라 촉각의 인상에 충실한 그림, 촉각만 아니라 사람이 감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갖가지를
통과하고 나온 그림여야 한다는 그런 소리였다. 말로는 옳다 싶었다. 그건 더 진실한 그림일 것 같았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림에서 그걸 알아볼 눈은 없다. 그림의 질을 판별하려면 수많은 그림을 보고 배운 경험이
있어야 할 거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닌 매력과 진실을 느끼는 일은 독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내가 그림책 그림을 보는 통로는 거기에 있다. 이야기를 더 찐하게 느끼게 해주는지,
주인공을 진짜처럼 느끼게 해주는지, 글의 특성에 잘 반응하면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지...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의 조화를 말하는데, 아이들이 그걸 잘 아는 건 어른들보다 이야기에 깊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변수가 나타난다. 아이들의 감수성이라는..
어른과 아이의 그림 평가에서 가장 쉽게 드러나는 차이는 어른은 취향에 사로잡히고 아이는 그런 면이 적다는 것이다.
이건 경험의 차이다. 여지껏 눈에 들어왔던 것들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반응해온 경험들이 우리의 취향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경험이 훨씬 적다. 어른은 자기 취향을 굳히면서 그림책에 반응하는 경향이 크지만
아이는 그림책에 반응하면서 그림에 대한 취향을 만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다.
어른과 아이로 나누었지만 개개인이 그렇게 다르다. 티비로 토마스를 많이 본 아이한테는 토마스 그림이 친숙하고,
다른 사람보다 토마스 그림의 특징을 더 낱낱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아이는 특별한 취향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그림 표현에 열려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에 공감하면 할수록 그림에서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고
좋은 이야기에 뛰어난 그림이 있다면, 아이의 예술 경험으로 좋을 것이다.
어른과 아이의 취향 차이라 할 만한 것도 없지 않다.
문학을 읽을 때 어른들은 대부분 단순한 것보다 복잡한 것, 입체적인 묘사를 좋아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복잡하고 입체적이지 않은 매우 단순한 것에서도 매력을 느낀다.
또 어른과 아이는 원하는 질서도 다른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너무 산만하다고 느끼는 어른들이 많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나하나 형태가 분명하다면 아주 많은 것들이 여기저기 뒤죽박죽 있어도 더욱 좋아한다.
어른들이 묘사가 풍부하다고 느끼는데 아이들이 매력을 못 느낀다면, 초점이 불분명한 그림일 때도 있다.
많은 아이들이 매우 단순하고 뚜렷한 형태만 아니라 자유분방한 선을 좋아하는데
어른들은 더 절제되고 정돈된 선을 좋아하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이 평면적인 그림에 매력을 느끼는 데 비해, 어른들은 깊이가 있는 그림을 좋아하기도 한다.
내가 어른들 취향이 싫다고 강하게 느끼는 때는, 아이들한테는 주는 그림이라고 아주 경직되게 구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밝고 화사한 그림, 정성이 들어 있는 그림, 아이들용 물건들에 많이 박혀 있는 것 같은 예쁜 그림...
수많은 전집의 생활동화들이 그렇다. 생활-도덕, 이런 거 자체가 아동용이라는 통념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오죽 하랴.
아마도 어른들이 책을 읽지 않고 책을 판단할 때 여기서 크게 갈릴 수 있다.
이런 그림이야말로 아이들한테 주는 그림이라고 보는 사람과, 그 통속성 때문에 고개를 돌리는 사람.
또 자기 취향의 주관성을 모르고 그것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런 이들은 대개 수준 높은 감상자들인 수가 많다. 유행을 잘 알고 취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
어른으로서는 좋으나, 아이들 책 평가에서는 매우 주관적으로 빠지기 쉽다.
그림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고, 그래도 안전한 길은 이야기의 질을 보는 것이다.
이야기가 훌륭하면 안심이다. 이야기가 좋으면 아이들은 그림도 샅샅이 보지만 그림이 보여주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림책 그림이 나빠지는 한 가지 이유가, 내가 모든 걸 보여주마, 하는 거다.
이야기는 독자가 완성하는 거고, 글도 그림도, 독자가 완성할 여백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이야기가 좋으면 반드시 독자는 글과 그림이 보여주는 것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칭기스깐학습법 > 취학전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수원산부인과/수여성병원] 아이 평생 독서습관 좌우하는 책 읽어주기 (0) | 2011.05.26 |
---|---|
[스크랩] 독서영재로 키운 엄마의 교육비법/ 아이 독서습관 망치는 부모의 악습관 (0) | 2011.05.26 |
[스크랩] 아이들 델고 책의 제국에 들어가기 전에 알아둘 일 (0) | 2011.05.26 |
[스크랩] 아이의 독서습관을 문제삼지 마세요 (0) | 2011.05.26 |
[스크랩] ?내 아이를 위한 올바른 훈육과 궁금증 풀기 (0) | 2011.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