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서클이라네요
‘도(道)는 닦는 것이 아니라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다.‘
라며 조사(祖師)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식이 아닌 지혜를 득해야 만이
진정한 불성의 발현이요 깨달음이라 했다.
그럼 지혜란 무엇인가?
지식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삶의 방법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견해요,
선입관이며 한발 나아가서는 에고가 된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아상, 인상, 중생상, 숫자상‘
을 버려야 만이 지혜를 얻어 깨달음에 이른다고 전한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 말을 바꾸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인위(人爲)가 개입되지 않은
그냥 그대로의 자연을 의미한다.
대주천 수련의 완성은 곧 상단전의
개혈과 같은 시점에서 시작된다.
백회와 회음혈로 연결되는 기경팔맥의 충맥은
배꼽아래 하단전의 위치에서
온 몸이 단전화되는 경지에 들게 된다.
수행의 비법은 특별한 비기(秘記)가 전해 오는 것이
어떠한 인위도 개입되지 않은 무심의 정신통일뿐이다.
이것은 마치 동토의 겨울이 가면
생동하는 봄이 오듯이 자연의 흐름과 같다.
집중의 정신통일은 심신(心身)의 맑음을
선사하면서 자연의 파장인 기(氣)를
감지하고 증폭시킬 수 있다.
나아가 맑음의 고밀도는 기운의 상승세에 힘입어
온몸이 단전이 되는 대주천 수행자로 거듭난다.
깊은 침묵의 삼매는 그 다음 단계인 상단전의
혈들을 저절로 발달하게 한다.
수행자 본인의 의식과 관계없이 혹은
누구의 도움이나 인도 없이 마치
회귀본능의 연어처럼 저절로 상단전의
혈들을 두드린다.
초발심의 집중은 단전 부위의 기해혈이나
석문혈들을 개혈시키면서 점차 인체의
전, 후면부에 소속된 모든 경혈들을 개혈시킨다.
그러나 상단전의 백회혈이나 인당혈은
수련이 일정이상 도달하지 않으면 전혀 움직임이 없다.
다시 말하면 상단전을 구성하는 혈들은
건물의 지붕과 같아서 모든 기초가
다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활동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제3의 눈은 통찰력과 지혜의 보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계를 마치
맑은 시냇물의 바닥에 있는 자갈과 모래를
보듯이 훤히 볼 수 있는 맑음의
상징이다. 인당혈의 개혈은 대주천이
완성되는 어느 날 서서히 자연스럽게
맑음과 함께 나타난다.
동시에 신체는 애벌레가 탈바꿈하듯
천인합일의 환골탈태가 이루어진다.
수행자는 무심을 목표로 힘써 꾸준히
나아가기만 할 뿐이다.
그렇지 않고 의념이나 자기최면으로
경혈을 개혈하듯 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에는 어떤 느낌으로 수련의 진척이
있다고 생각되겠지만 사실은 진척이 아닌
퇴보로 자칫 잘못하면 마구니의 농간에
놀아 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하지 말며 의지하지 말며 상을 짓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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