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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마음의 벌레'가 수행을 방해한다?

by 법천선생 2013. 7. 17.

 

왜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했는데

그 결과가 그리 신통하지 않은가?

 

 

예로부터 전해오는 북창선생님의 용호비결에

옛 사람이 말하기를 순리(順理)대로 하면 사람이 되고,

 

역리(逆理)로 하면 신선이 된다고 하니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모여 넷이 되며

넷이 여덟을 낳고 그렇게 육십사에까지 이르러

온갖 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은

인도이며<순리로 하는 공부이다>,

 

다리를 포개어 단정히 앉아서 눈썹을 드리우고

입을 다물고 만 가지의 어지러운 번거로움을 수습하여

아무 것도 없는 태극의 경지로 돌아가는 것은 선도이다

<역리로 하는 공부>.

 

수행에서의 1차적 성공은 '현빈일규'를 격파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도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고,

하늘문을 열어 천국과 연결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그 황홀함은 인간세상의 어느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경지인 것이다.

 

그 동안 살면서 느꼈던 모든 의심이 한꺼번에

다 풀리는 지혜의 경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백회가 열리면 피부가 탄력을 얻고 아기처럼

투명해지며, 주름살마저도 쫙 펴지게 된다.

 

모든 괴로움이 일시에 다 없어지며 마치

허물을 한꺼풀 벗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불가에서 말하는 초견성의 경지인 것이다.

 

왜 수행의 진보가 없는가?

용호비결에 이르길 그것은 바로 마음의

벌레인 삼시구충때문인 것이다.

 

선계를 자유롭게 왕래하지 못하고, 차크라가

완성되지 못하고 아무리 만트라를 외워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에 있으며,

수행에서 사실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마음을 조심하여 삼시구충을 볼 수 있으면,

그 마음의 벌레가 견디지 못하고 몸밖으로

도망을 나가게 된다. 흡사 도둑이 주인에게

발견되면 밖으로 도망가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우리 몸속의 삼시구충은 세마리가 들어 있는데,

'상충'과 '중충', '하충'이 바로 그것이다.

 

도가의 서적인 『太上三尸中經(태상삼시중경)』

을 보면 三尸(삼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上尸'(상시)는 이름이 彭倨(팽거)인데 사람의 머릿속에 있고,

'中尸'는 이름이 彭質(팽질)인데 사람의 뱃속에 있고,

'下尸'는 이름이 彭矯(팽교)인데 발 안에 있다’라고 하였다.

 

삼시충 중에, '상시'는 머릿속에 있어서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고 머리카락을 빠지게 하며

얼굴에 주름이 생기게 하고 이를 빠지게 한다.

 

또한 '중시'는 뱃속에 있어서 오장을 해치고

기운을 빠지게 하고 무엇을 잊어버리게 하고

나쁜 짓을 하게도 한다.

 

'하시'는 다리 부분에 있어서 情을 어지럽게 하고

음욕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하충'은 희거나 검은 색의 누에와 같은

모양으로 생겼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머리 부분에 사는 상충인데,

그것은 노란색 새와 같아 황조라고도 한다.

 

그러나 가장 내보네기 어려운 것이 중충인데

이 놈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으며 대칭으로

한마리는 위쪽으로 다른 한마리는 아랫쪽을

향하여 존재한다고하며 두마리나 들어 있다.

 

이것들이 몸밖으로 나가야만 우리가 원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내용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