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한
그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진다.
대학교에서의 나: 운동선수로서 삶의 딜레마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문제없이 달려왔다.
그렇게 내 인생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나는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다.
막상 내가 운동선수 생활을 마치고 뭘 해야 할지,
그리고 운동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국가대표가 되어서 올림픽메달을 따게 되면
나의 진로는 문제없이 해결되겠지만,
나는 그 정도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실업팀을 가도 평생 운동선수생활을 할 수 없었고,
코치로 전향한다 해도 그것 역시 처우가 보장되는
직업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변명에 그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고민들로 인해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운동에 매진할 수 없었고,
운동에 점점 소홀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운동을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고,
내가 운동을 한 것에 대해 원망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운동을 시작할 때 더 과감하게 나를 말리지 않으셨던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섭섭한 마음까지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원인은 바로 내가
역할모델로 삼을 수 있었던 선배들도 없었고,
나의 진로에 대해 충고를 해주는 지도자들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초, 일찌감치 대학을 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나는 여러 대학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었고,
그러한 손길에 현혹되어 나는 운동선수로의 대학진학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당장 명문대학의 입학을 위해 대학졸업이후의 상황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대학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나에게 어떠한 충고를 해줬던
사람도 없었다.
내가 모델로 삼을 수 있었던 선배들도 없었다.
나와 같이 여느 다른 선배들도 메달을 따고는 자신을
스카우트 하는 대학 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대학을 선택하기에 바빴고, 나도 그러한 선배들의 모
습만을 봐왔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들을 그대로 답습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고,
운동을 그만둔 일부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운동은 그만뒀지만 사범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하게 되면
체육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대학에서
운동선수가 아니라 일반학생으로 미래를 위해 정진하는 친구들,
거기다 덤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는 것을
나에게 자랑하는 친구들까지, 나는 오히려 운동을 그만둔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운동으로 인해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상황과
운동을 한다 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았던 그때의 삶이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운동을 했다는 것에 원망하고 방황을 거듭하던 그때,
더 큰 짐 하나가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것으로 인해
나는 한가롭게 방황에 빠져있을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 운동부들의 경기성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체육특기자의 인원을 감축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내가 있던 운동부도 1년 안에 의무적으로
운동부원 중 한명을 일반학생으로 전환시켜야 했고 동시에,
체육특기자로서의 장학금 혜택을 박탈해야 했다.
당시에 누가 나가게 될지는 결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딱히 내놓을만한 경기실적이 없던 나도 유력한 후보 중의 한명이었다.
운동선수로서 삶을 시작한 것이 후회되고, 앞으로의 나
의 삶에 대해 갈등도 많이 느끼던 상황이었지만,
나는 가만히 신세한탄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체육특기자 자격이 박탈되는 불명예는
갖고 싶지 않았고, 그로인한 경제적 부담도 안기 싫었다.
그리고 당시 2학년이라 앞으로의 2년이 더 남았었기에 더욱 절실했다.
그런 절실함으로 인해 나는 가까스로 전국대학연맹전에서
3등을 할 수 있었고, 체육특기자로서 2년이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러한 결심에 대해 감독선생님과 코치님에게 말씀드렸고,
나는 운동보다는 공부에 더욱 치중할 수 있었다.
단, 체육특기자로서 일부 운동과 시합에는 의무적으로 참가해야만 했다.
하지만 4학년이 되던 해에 어느 주말, 나의 생각은 다시 한 번 운동으로 기울었다.
부모님께서 함께 등산을 가자고 하셨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운동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겉으로 아쉬움을
표현하시지는 않았지만, 내심 아쉬워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도 그동안 운동했던 것이 아쉬웠고, 포기하기 아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아쉬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감독님을 찾아가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게 됐다.
대부분의 실업팀들이 거의 스카우트가 끝난 상황이었지만 감독님과
코치님의 도움으로 나는 어렵사리 실업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 이 글은 <김동현(2012). 나에게 운동은 무엇이었나?:
운동선수로서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체육과학연구, 23(2), 343-359.>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칭기스깐학습법 > 미래직업연구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이 없는 시대 (0) | 2013.10.09 |
---|---|
트랜스휴머니즘-네오 휴머니즘 사이에서 (0) | 2013.10.09 |
인공지능 활용의 문제점 (0) | 2013.08.13 |
미래지교육 스케치 (0) | 2013.07.29 |
미래에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0) | 2013.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