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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집중력향상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유래

by 법천선생 2016. 11. 4.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 전쟁을 할 때 칼레 시만은

유일하게 영국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지원군이

오지 않자 결국 1347년 항복을 하고 맙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누군가는 그 저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6명의 칼레 시민이 목에 밧줄을

매고 영국군 진영으로 걸어와 처형당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칼레 시에서 가장 부유했던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가

선뜻 나서게 됩니다.


그러자 시장과 부자 상인, 그리고 그 아들들이 나섰고

이에 감동한 시민 3명을 포함해 지원자는 총 7명이 되었습니다.


이에 외스타슈드는 제비뽑기보다는 처형장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6명이 처형장에 모였을 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시민들의 그의 집에 달려갔을 때

외스타슈드는 이미 자살한 직후였습니다.


지원자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 순교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이에 영국 왕비가 크게 감동해 에두워드 3세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애원하게 되고, 마침내 왕은

처형을 취소하게 됩니다.


이후 칼레 시는 노블레스(귀족) 오블리주(의무),

즉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라는 단어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사회에서 귀족으로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레스)'만큼이나 '의무(오블리주)'

를 다해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귀족들은 위협을 무릅쓰고

싸움터 선두에 서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배부른 게 먼저이자 최고라 여기는 우리나라

일부 지도층 인사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