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상의욕자극

동산 양개 스님 이야기

by 법천선생 2017. 7. 4.


동산 양개스님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묵조선을 개창한 분입니다.


당시 문하에 1000여 명이 수행했을 정도로

스님의 수행과 교화력에 대한 명성이 자자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양개스님은 21세 때인 827년 숭산(崇山)에서

영묵 선사를 은사로 구족계를 받게 됩니다.


양개 스님이 부모님께 편지를 보낸 것도 이 무렵입니다.

스님은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님에게

출가의 뜻을 밝히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 내용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일자출가 구족생천(一子出家 九族生天)'

 

이 뜻은 한 아들이 출가함에

구족이 천상에 태어난다 하였으니

‘양개는 금생의 목숨이 다하더라도 깨닫지 못하면

맹세코 집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반야를 밝히려 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부모님께서는 아들에 대한 애착을 버리시어

연연해 하지 마시고,

정반왕을 배우고 마야부인을 본받으시라’는

편지를 어머니에게 띄웠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을 어찌 자식이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백 천 마디의 말로도 표현 못할 애틋한 그리움이

가슴에 옹이처럼 박혔을 어머니가

마침내 스님에게 답신의 편지를 보냅니다.


온갖 고생을 하며 키운 아들이 집을 떠나간 후

늘 문밖을 지켜보며 산다는 어머니는

이제 누구를 의지하며 사느냐고 통곡을 합니다.

 

"자식은 어미를 버릴 뜻이 있으나

어미는 자식을 버릴 마음이 없는지라.


네가 떠난 후 아침저녁으로 항상 슬피 눈물을

뿌렸으니 서글프고 괴롭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간곡한 사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면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구했듯이 큰 깨달음을 얻어

자신을 제도해 줄 것을 당부하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큰 허물을 짓는 것일 뿐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출가의 뜻을 밝힌 후 양개스님은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고는

고향의 어머님을 뵈러가고자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으시는 동안

어머님은 떠나간 아들이 언제나 돌아올까 하고

언제나 동구 밖에 나와서

아들인 양개스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답니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구 밖에 나가 있었는데

혹시라도 내가 눈을 깜박이면

지나치는 것을 못 볼까봐서 눈 조차도 깜박이지 않고

동구 밖을 바라보는 바람에

그만 눈이 적셔 지지를 않아서 앞이 보이지를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동구 밖에서 기다릴 수 없었기에

어머니는 살고 있던 집을 절로 개조하여

지나가는 스님들이 쉬고 가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스님들이 하룻밤을 묵으려고 오시면

손수 발을 씻어주곤 하였습니다.


그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눈이 보이질 않으니 아들인 양개스님이 와도

알 수가 없고 볼 수 없겠기에

절박한 마음으로 스님들의 발을 씻어드리는 일을 하며

오직 양개스님을 한번 만나 보려는 것이었지요.


그 이유는 아들 양개스님의 왼쪽 복숭아 뼈 옆에

작은 사마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개스님께서 그동안의 일들을

소상하게 듣고는 절로 바꾼 집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목에는 묵언이라는 팻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스님을 보고도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스님들에게 하는 것처럼 양개스님에게도 발을

씻겨드리려고 발 씻을 물을 떠가지고 앞에 내려놓고는

 

"스님 발을 담그시지요." 하고 말을 건넸으나

스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이 가만히 오른발을 물에 담갔습니다.


이상하게 여기고는

"스님!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옆에 있던 스님이

"예, 이 스님은 지금 묵언 수행중이라서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대신 해 주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스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어서 빨리 반야지혜를 드러내어

이 늙은 중생도 구제해 주세요" 하고 말씀하였습니다.

 

양개스님은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지요.

어머니가 "자! 이 발은 다 닦았습니다.


다른 발을 들여 놓으시지요." 라고 말하자,

동산스님은 씻은 발을 다시 물에 담가드렸습니다.


왼발에는 사마귀가 있었기에 담그게 되면

바로 알아차리기 때문에 오른 발을 담갔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제 곧바로 복숭아 뼈 뒤를 만지며

사마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산양개스님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으면

저토록 애절하게 당신의 자식을 찾으시는가?'

하면서 눈물만을 흘렸을 뿐이었습니다.


발을 씻은 후 하룻밤을 주무시고는 아침 일찍

공양을 하고 절을 나섰습니다.

 

그때 동네에 살고 있는 노인이 양개스님을 보았습니다.

"아니 저기 양개가 아닌가? "하고는 절로 뛰어가서는

그 어머니에게 "얼마나 반가웠습니까?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을 만났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어머니는 놀라면서 "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양개가 돌아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라고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여기서 나와서 저쪽 나루터 쪽으로 가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못 만났다니 그 게 무슨 말입니까?" 하니,

어머니는 "그게 정말이요? 내 아들 양개가 왔었다구!?"

하며 놀라 뛰면서

"양개야! 양개야!" 큰소리로 부르며 뛰어갔습니다.

 

앞이 보이질 않으니 넘어지고 넘어지며 그렇게 뛰어갔는데

나루터로 가는 길이 구부러져 있다는 것을 잊은 채 그저

뛰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강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때 양개스님은 벌써 강(江)의 중간을 지나고 있었고

같이 가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저걸 어쩌나 하며 애타게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어머니는 허우적대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양개스님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건너편 나루에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선정에 든 스님은 현상계에서의 어머니와의 인연과

다겁생래 어머니의 업(業)을 관(觀)해 보았습니다.


어떤 논리나 사유 이전의 오묘한 세계를 보면서

고요히 이 생에서 맺어진 그 고마운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동산양개 스님은 조용히 삼매에 드셔서 어머니를 천도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나은 세계 부처님 되는 세계로 어머니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어머님께서 물에 빠지셨는데 왜 구하려고도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동산양개스님의 어머니에게는 전생에 지은 바

업의 원인에 의해서 장님으로 살아야 될 업이 있었고,

물에 빠져 죽어야 할 업이 있었습니다.


양개스님은 그 업을 모두 아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집에서 ‘어머님 제가 바로 양개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다면 어머니가 지었던 업들은 다음 생으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어머니를 그런 고통에서

건지기 위하여 말없이 왔다가 나갔던 것입니다.


양개스님 어머니는 한 생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게 되어 있었고,

다음 생에는 장님으로서 한 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었으며,


그 다음 생에서는 물에 빠져 죽을 행을 지었으나

자식을 스님으로 인연지어준 그 공덕(功德)으로

삼세에 걸쳐서 받을 업(業)을

단 한 생에 전부다 마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igong2500/A1lt/1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