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깨달음이라는 것은 고도의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단순하고 통상적인
사람의 언어로 옮기기란 쉽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이것이 원래부터 사람의 내면에 깊이 자리하고
있고, 사람이 그것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이해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지극히 편안하고 고양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지적인 깨달음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선불교에서는 이것을 돈오(頓悟)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스승의 한마디가 사람을 어느 정도 해방시켜 주거나,
상당히 혹은 완전히 해탈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깨달은 다음에나 스승 혹은 선생이 말하려고
했던 것을 이해하고 나서 왜 또 명상을 많이 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에게 습관과 지식이 너무 많고, 한 번으로는
깨달았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충분치 않기 때문인 것이다.
칭하이 무상사/ 1993. 4. 24.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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