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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우리가 즐겨 듣고 부르는 "동심초"라는 노래의 가사는
시인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이,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가
지은 "춘망사(春望詞)"라는 한시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설도 [ 薛濤 ]
성도에 가면 당나라의 유명한 여류 시인의 낭만과
만날 수 있는데, 이 시인의 이름은 설도(薛濤)이다.
원래 장안 사람이었으나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촉나라
땅으로 들어왔으며, 아버지는 하층 관리였는데,
촉 땅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청상과부에다 집안마저 가난한 탓에
설도는 악적(樂籍)에 들어 악기(樂妓)가 되었다.
그러나 설도는 선천적으로 음률에 능통하여 시가를
잘 지었고, 당시 유명한 사대부들과 즐겨 교류하였다.
바로 위고(韋皐)·원진(元稹)·백거이(白居易)·두목(杜牧)
등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과 창화(唱和)를 나누었다.
그녀는 성도의 백화담에 살면서 직접 송화지와
짙은 소채지를 만들어 당시의 유명 인사들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설도전(薛濤箋)'이라고 불렀다.
위고는 천서절도사(川西節度使)를 맡은 뒤에,
그녀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그는 황제에게 주청하여 그녀를 교서랑(校書郞)에
제수하려고 하였다.
비록 호군(護軍)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그 뒤로 사람들은 그를 '설교서(薛校書)' 혹은 '여교서
(女校書)'라고 불렀다.
그녀는 완화계(浣花溪)에 거처를 두고 살면서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년에 두보(杜甫)의 초당으로서 유명한 성도의 서교에 있는
완화계(일명 백화담) 근처 만리교 근방으로 은거하였다.
이 근처는 양질의 종이가 생산되는 곳이어서,
설도는 특히 소형인 심홍색 종이를 만들게 하여
그것을 이용하여 촉의 명사들과 시를 주고 받았다.
이것이 당시의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좋아, 이런 식의 색갈있는 종이를 ‘설도전’아라하여
크게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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