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을 지도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 미용학원의
원장이자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육성회장이셨다.
반갑게 날 맞이하는 자리에서 차마 그냥 돌아가겠다는
말이 선 듯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곳에 함께 앉아 기공 수련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체험한 것은 기에 대한 감각이었다.
사람의 손은 너무나도 민감한 곳이기에 손에서 기감을
느끼기 가장 쉽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날 즉시 기감이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기 수련에 있어 기감을 느끼는 사람 유형을 40%는 민감형,
40%는 일반형, 나머지 10%는 지둔형이라고 하여 전혀
기감을 못 느끼는 유형이며, 나머지 10%는 당장 그 자리에서
기를 느끼는 극민감형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설프게는 기감을 느꼈지만, 분명한 기감이 더디 느껴져
일주일 정도 수련을 하고서야 온전히 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부친의 질병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했다.
나는 부친의 질병 치유를 위해 이 한 몸 던지기로 작정하고 기공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열정적으로 매시간 수련에 임했다.
얼마나 집중을 했으면, 밤에 잠을 청해도 자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가수면 상태가 되어 일주일씩 수련 상태에
빠져 있기도 했다.
나이가 든 요즘에는 가끔 그때의 집중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에게 발현한 그 집중력은 아마도 열정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부친의 치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니 함께 동문수학 한
기공 동지들을 만나면 나에게서 강한 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기독교인이었기에 나는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 일부러 환경
부전공 연수를 선택해 교육을 받기 위해 춘천 강원대학교로 교육을
받으러 나서게 되었다.
이때가 나에게 있어 기공 수련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당시 고속도로 공사를 하던 대룡산 자락에 올라
좁은 자동차 안에서 잠을 청하며 테니스공 깡통에다 물을 붓고 불린
콩을 먹으며 히므들게 자면서 밤새도록 기공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가끔은 강촌 인근 절터에 가기도 하고, 소양댐 밑 콧구멍 다리 밑에서
수련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물론 수행의 결과이기는 하겠지만, 춘천에도 중국 기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과도 적지 않은 왕래가 있었는데, 내가 그들 앞에 나타나면 강력한
기감이 나에게서 발산돼 그들 중 선생 노릇하던 사람이 나를 거의 중국의
사부 수준으로 추앙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뜨거워지는 유쾌한 추억이다.
춘천 기공인들은 수련이 시작되기 전 찜질방을 얻어 놓고 나를 초청해
지도받기도 했다.
나 또한 수련자였지만, 남을 지도하면서 나의 기공도 수련됨을 경험했다.
때문에 수련인은 모든 인간 앞에 겸허히 겸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런가?
가끔 나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기도 했으며, 수련인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덕망이 쌓여 거의 교주급 수련가로 추앙받는 그러한 기분도 경험했다.
춘천 강원대학교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원주로 내려오려 하니, 춘천에 있던
그 수련인들이 유명한 춘천옥으로 호랑이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그 가격은 아마도 몇백만 원은 족히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위기감이 엄습해 온을 느껴 그들 앞에 펄쩍 뛰며 만류했다.
다시는 나 또한 이러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추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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