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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깐학습법/맘샘교육칼럼

조선의 모범적 어머니 선생님

by 법천선생 2018. 7. 19.


조선 순조 임금 때 호조 판서 김좌명 대감의

신변 심부름을 하는 몸종으로 최수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평소 착실하고 면학열이 높아 글을 익히고 글씨도 곧잘 썼기로

육의전에서 큰 상점을 하는 부잣집으로 장가를 들었습니다.

 

처가 덕으로 살림이 넉넉해지자 차츰 해이해지더니

뱅어국도 입맛이 없어 밥을 못먹겠다고 물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뱅어국은 당시 상류 사회에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장가도 가고 하자 상전의 호의로 호조의 서리로 임용되었습니다.

 

호조는 지금의 재정 경제부와 비슷한 부서입니다.

대단한 신분 상승이요, 벼슬이 아닐 수 없으며

가문에 일대 경사가 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최수의 과부 어머니는

상전인 판서 대감을 찾아 갔습니다.

 

자식의 발탁을 감사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대감의 보살핌으로 일자리를 얻은 것만으로도 과분한데

그 덕으로 부잣집 사위까지 되어 신간이 편해져

지금은 뱅어국 좌반도 맛없다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온데 나라의 큰 재물을 다루는

호조의 서리 자리에 오르면 거만함이 더하여

행여 옥에 갇히는 일이 없다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로지 그 혈육 하나에 의지해 사는 천한 과부를 보살피는 뜻에서

그저 조석으로 죽이나 끓여 먹을 수 있는 자리에서

본분을 지키게 해 주옵소서” 하고 아뢰었습니다.


  한 낱 상민이오 과부 어머니의 상식을 초월한 자식 사랑에

감탄한 대감은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를 적어

딸이나 며느리를 가르치는 규방 교과로 삼게 했다고 합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해 묘지 동네에서

저자 거리로 다시 서당 이웃으로 이사를 했다는

맹모 삼천을 웃도는 최수의 어머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