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로서 8세기
신라 경덕왕 때 진주에서의 일이다.
선사 수십 인이 모여 극락정토의 대발심을
모으니 혜숙 법사가 고을 경내에다
미타사를 세우고 1만일을 기약하고
법회를 열었다.
그때 벼슬아치 귀진의 집에 한 여자
종이 있어 이름을 '욱면'이라 하였다.
그녀는 그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불당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절 뜰에 서서 중이
하는 대로 염불을 따라 했다.
욱면의 주인 귀진은 그녀가 여자 종의
신분으로 자기 직분에 충실치 않고
불사를 돈독하게 드리는 것이 못마땅하여
매일 벼 두섬을 주면서 하루 저녁에
다 찧게 했다.
그러노라면 욱면은 초저녁에 방아 찧는
일을 마치고는 절에 와서 염불을 들이는데
밤낮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절 뜰의 좌우에다 긴 말뚝을
세우고 자기의 두 손바닥을 줄로 꿰어서는,
그 줄을 양쪽의 말뚝에 메어, 합장한 채로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스스로를 격려 정진했다.
이렇게 하기를 9년이 되는 날, 을미년 정월
스무 하루 하늘에서 한 외침이 있어 공중을 울렸다.
"욱면랑은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을 드릴지어다"
이 소리를 들은 뭇사람들은 미천한 신분으로
9년 동안 불당에 한번도 들어가지 못하고
눈 비바람 이슬을 맞으며 지성껏 염불을 드리던
욱면을 권하여 불당에 들어가 염불을 드리도록 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하늘의 음악소리가
서쪽으로부터 울려 왔고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욱면은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불당의 천장을
뚫고 서쪽 하늘로 날아갔다.
욱면은 서쪽으로 가서 자신의 몸을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형하여 연대에 앉더니
금빛 찬란한 대광명을 내리비치면서 천천히
서쪽 하늘로 사라졌는데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천악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욱면이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뚫어진 구멍은
열 아름쯤 되었으나 폭우나 함박눈이 쏟아져도
그 구멍에는 새어 들지 않았다.
어떤이가 나중에 금탑1좌를 그 구멍에다
대고 만들어 그 이적을 기록해 두었다.
욱면이 간 뒤 그녀의 상전이었던 귀진 역시
그의 집을 이인이 몸을 붙여 태어난 곳이라
하여 절로 희사하니 법왕사라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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