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보와 성공

관세음보살 염불가피 이야기

by 법천선생 2018. 12. 31.


몇 년전 90세 가까운 나이로 돌아가신 덕운성

보살은 50대 중반에 자궁암에 걸렸습니다.


부잣집 외동 아들인 남편이 평생을 돈 쓰는

 재미로 살면서 남편이 물려받은 재산은 물론

처갓집 재산까지 모두 탕진하고 죽었으므로,


덕운성 보살은 날품팔이를 하며 혼자 1남 2녀를

키웠습니다.


 "말기 자궁암입니다. 앞으로 3개월정도는

살 수 있으니 주변을 정리하시지요." 대구 동산병원의

의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것은 그녀의 두 딸은

결혼을 하고 아들은 중앙대학교 전자공학과 2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자궁암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30여년 전에는 말기 자궁암이 반드시 죽는 병에

속하였기에, 덕운성 보살에게는 의사의 말이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서울로 시집을 간 큰 딸에게 울면서 사실을 알리자,

큰 딸은 포기할 수 없다며 세브란스 병원으로 모셔가

다시 진찰을 하게 했습니다.


"3달은 너무 성급한 진단입니다. 그러나 6개월 이상은

보장하기 힘듭니다.""

그녀는 의사를 붙들고 울면서 사정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를 2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제 아들이

대학 2학년이니,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단칸 셋방이 있는 김천으로 내려

왔을 때 그녀는 매달릴 데가 없었습니다.

오직 한 분, 관세음보살님 뿐이었습니다. 기도비가

없었던 그녀는 집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은 물론이요 틈만 나면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백일기도 마지막 날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는 김천 청암사 극락암에 모셔진 42수관세음보살상

(지금은 도난 당하였음)앞에서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백발의 노스님 한 분이 불단 앞에 나타나 약 세 봉지를

주셨습니다.
엉겁결에 무릎으로 기어가 약봉지를 받았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먹어라."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노스님은 부처님 앞에 놓인 다기물을 손바닥에

부어주셨고, 그 물로 한 봉지를 먹고 나자 또 물을 부어주며

말했습니다. "또 먹어라." "마저 먹어라." 세 봉지째 약을

먹었을 때 어떻게나 거슬리든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을 깨고나서도 그 약 냄새는 그녀의 몸과 집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은 그녀는 말기 자궁암이 완전히

나아 아들의 대학 졸업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30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