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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성공

우룡스님의 관음신앙 체험담

by 법천선생 2018. 12. 31.


8.15 해방 후,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관리자로 출가한 나는 고봉(高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강원(講院)에 들어가 경전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관리자의 어른스님들은 불교의 여러가지

공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화두공부는 어떻게 하는건지, 주력공부는 어떤건지,

염불정진은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 것인지를 제시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옛날 스님들은 이렇게 공부하셨다, 저렇게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을 뿐입니다.

나는 스스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願)을 세웠습니다. '중노릇 잘 하게 해주십시오.

지혜 총명을 주시어 장애없이 경전공부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때 나는 치문을 배우고 있었는데, 책 읽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관세음보살 염불에 몰두하였습니다.

밥 먹을 때도 '관세음보살', 화장실에서도 '관세음보살',

걸어다닐 때도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당시의 강원에서 공부를 배우는 학인은 여러가지 사중(寺中)

업무를 한가지씩 맡아 돕는 급사노릇도 하였는데, 나는

관리자 산중 암자들을 돌며 공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공문서를 가지고 한 암자의 원주

스님께 전하면 읽은 다음 사인을 해주었으며, 다시 다른

암자로 가서 원주스님의 사인을 맡았습니다.


2~3일에 한번씩 공문서를 들고 산내암자를 다닐 때에도

나는 오로지 관세음보살을 외웠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관세음보살을 찾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관세음보살이 끊어지지 않는 차원에 이르렀습니다.


대화는 대화대로 잘되고, 내 가슴 속에 분명히 관세음보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염불을 시작한 지 1년 가량 지났을 무렵, 한밤중에

관리자 밑쪽에서 산불이 일어나 모든 대중이 진화작업에 나섰습니다.


특별한 소방장비가 없었으므로, 제1진이 불난 곳 가까이의

아직 불 붙지않은 풀을 낫으로 베면 제 2진이 벤 풀을 갈퀴로

끌어내고, 제3진이 괭이로 땅을 파면 제4진이 맞불을 지펴 불이

스스로 꺼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산불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나는 진화작업에 참여하였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쪽에서만 불이 못 올라오도록 맞불을 놓을 것이 아니라 불이

올라오는 뒤쪽으로 가서 진화작업을 하게되면 훨씬 빨리 끌 수 있겠다.'


그 생각과 함께 나는 큰 바위를 타고 불길 저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바위 밑쪽에서 불이 치솟아 올랐고,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엉겁결에 바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린 나는 불 속을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썩은 나무에 불이 붙은 그곳은 완전히 벌겋게 탄 숯구덩이였습니다.

산불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나마저 불 속에 굴러 떨어졌으니...

대중들은 크게 술렁거렸습니다.

어른 스님들의 다급한 음성도 들려 왔습니다. "저 아이가 죽다니!

불보다도 아이의 시신부터 건져야 한다." 하지만 불구덩이 속을 구르다가

일어선 나는 소리쳤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불 끄세요. 저는 여기서

불을 끌게요.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대중스님들은 그 불 속에 굴러 떨어졌으니 죽었거나 큰

화상을 입었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사실 나는 다친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팔의 살결이 가벼운 화상을 입었을 뿐이었습니다.

대중들은 하나같이 말했습니다. "기적이다. 불보살님의 가피야." 그 때 나는

확신을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어떤 액난도 고난도 사라지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할 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더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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