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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감사훈련

웃는 부처, 웃음에는 에고가 없다

by 법천선생 2019. 3. 14.


당나라 때, 행복한 중국인 또는 웃는

부처라고 불리는 건장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포대布袋였다.

 

그는 자신을 선사禪師라고 여기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선사라고 부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당연히 그는 주위에 제자들을 거느리는

것도 싫어했다.


대신에 그는 사탕과 과일, 과자가 든 자루를

등에 메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곤 주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곤 했다.

 

선의 수행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는 손을

내밀고 한 푼 줍쇼.’라고 말하곤 했다.


누가 그의 사찰에 와서 설법을 부탁해도

그는 한 푼 줍쇼.’라고 말했다.

 

어느 날, 그가 자루를 메고 여느 때처럼 거리를

순례하는데 어떤 선사가 우연히 그를 발견하곤 물었다.

 

선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오?”

 

그러자 포대는 무언의 대답으로 메고 있던

자루를 땅에 내려놓았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선이 이루는 바가 무엇이오?”

 

말이 끝나자마자, 즉시 포대는 다시 자루를

어깨에 메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포대布袋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포대 같은 사람이 지상에 나타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포대 같은 사람이 더 많이 나타나야 한다.

더 많은 사원이 웃음과 춤과 노래로 넘쳐야 한다.

 

심각함이 없어진다 해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

심각함이 없어지면 그대는 더 건강하고 전체적이 된다.


그러나 웃음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웃음이 사라지면 그대는 자신의 존재를 축하할 수 없다.


그대는 아름다운 색깔을 잃고 우중충한 무채색이 된다.

그대는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그대의 에너지는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웃음은 꽃이다. 붓다가 씨앗이라면

포대는 그 나무에 만개한 꽃이다.


붓다가 뿌리라면 포대는 그 나무의 꽃이다.

붓다를 이해하고 싶다면 포대를 이해하도록 하라.


사람들이 포대를 웃는 붓다라고 부른 것은 옳다.

붓다는 포대에 이르러 꽃이 되었다.

붓다는 포대 안에서 웃는다.

포대 안에서 깨달음은 그 절정에 이르렀다.

 

오쇼라즈니쉬의 <자비의 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