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성불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영원한 삶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원한 삶을 살길 바란다.
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겠는가?
현재의 이 허망한 상대성 속의 삶은 괴롭고
어려우며 허망하여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것은 그대의
진정한 참된 성품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는 알고보면 진실로 순수한 영혼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하나의 육체와 동일시
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한 투사물 - 객관화된
생각 - 이며, 마음 또한 그 순수한 영에서 나온 것이다.
단순히 죽어서 몸만을 바꾸는 것인 윤회하는
것은 전혀 아무런 영혼에 대한 이익이 없다.
왜냐하면 단지 에고를 그대로 가지고 새로운
몸으로 이사기듯 옮겨 갈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이 삶인가? 그것은 의식으로서의
존재이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그대 자신이다.
그것이 참된 삶이며, 그것은 시간을 넘어서 영원하다.
육체 안에서의 삶은 에고로 조건지워진 삶이다.
그러나 그대는 원래 조건지워지지 않은 삶이다.
만약 "나는 육체다"하는 생각이 죽고 만다고 하면,
그대는 조건지워지지 않은 삶으로서의 그대의
참된 성품을 완벽하게 스스로 다 회복할 것이다.
- 스리 라마나 마하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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