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은 본래 구애가 없습니다.
아무데도 거리낄 것이 없는
진공과 같은 ‘마음’,
불법을 닦아야 할 필요도 없고,
망상이 없으니 망상을 떼어내
버릴 일도 없고,
아무데도 걸릴 데가 없습니다.
지구만한 보석이 있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데도 내 ‘마음’ 걸리고
거북한데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이끌어
얽매는 것이 재물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큰돈을 벌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이 이런 줄
아는 사람은 세계를 다 준다고 해도
귀를 씻게 됩니다.
세계를 다 차지해서 그 번뇌덩어리를
맡아 잠 못 자고 ‘마음’만 흔들리는데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이는 그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
라는 뜻입니다.
세계에 미인을 몽땅 데려다 준다 해도
그것이 다 귀찮고,
미인이면 미인이지 육체가 아닌
‘나’에게 무슨 상관이냐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언제나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계행을 지키고 정진(精進)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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