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독서편지 – 2,256
지금, 말하세요!
말에도 시간의 흐름이 있다. 여럿이 이야기할 때도 주욱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쉴 새 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언제 말해야 할지 잘 들었다가 바로 말해야 하지만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고 쉼 없이 줄이 이어져 시간을 놓칠 때가 많다. 이름을 불러 줄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생각했던 말들이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기도 한다.
‘어휴 이 말은 꼭 했어야 하는데.’ 돌아서서 아쉬워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나는 대체로 듣는 편이다. 이웃들은 너무 생각이 많아서라고도 하고, 느긋해서라고도 하고, 타인을 배려해서라고 한다. 그래도 시간의 흐름이 늦다.
곰 씨는 어떨까? 멋진 의자에서 시집도 읽고 차도 마시고 음악도 듣던 그의 자유가 어느 날 엉망이 되었다. 불어나는 토끼 가족으로 인해 멋진 의자에서 시집을 읽는 것도 차를 마시는 자유도 모두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곰 씨는 불편한 상항을 표현하지 못한다.
책을 읽는 내내 ‘얼른 말해요’ 나는 계속 응원을 보냈다. 왜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그랬을 것이다. 곰 씨는 착한 병에 걸려 자기 방식대로 새로운 묘안을 구상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토끼 가족들은 소란스럽게 웅성거리며 곰 씨 주위에 몰려든다. 결국 착한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쓰려진다. 곰 씨의 한계다.
토끼 가족이 곰 씨를 간호하고 위로하자 곰 씨는 그때서야 용기를 내어 마음에 담았던 얘기를 꺼낸다. ‘
나는 혼자도 있고 싶고, 꽃도 좀 심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여러분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타인으로 인하여 나의 마음이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야기해야 한다. 배려해서 말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곰 씨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토끼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옆 지기를 먼저 보낸 지인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여행을 할때 마다 그때 바로 말하지 못한 것이 제일 후회가 되고 생각난다고 한다. ‘고맙다고 ~~할걸.’ ‘맛있다고 할걸.’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도 말하지 않으면 속 내를 모를 때가 많다. 서로 말해주기를 기다리다 보면 굴곡이 깊이 파여 상처의 계곡이 생길 수도 있다.
‘곰 씨, 용기를 내어 내가 먼저 말해보자. 너무 늦지 않도록...’
- 『곰씨의 의자』 노인경. 문학동네. 2016.
2021년 2월 25일(목)
독서로! 세계로! 미래로!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연구원 전경애
문해교사, 수필가, jka19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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