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임금 때 호조 판서 김좌명 대감의
신변 심부름을 하는 몸종으로 얼굴도 잘생기고
심부름도 잘하며 똑똑한 '최수'라는 아이가 있었다.
평소 착실하면서도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도
넘쳐나 글을 익히고 글씨도 곧잘 썼기로 육의전에서
큰 상점을 하는 부잣집으로 장가를 들게 되었다.
처가 덕으로 살림이 넉넉해지자 차츰 해이해지더니
그렇게 값비싼 뱅어국도 입맛이 없어 밥을 못먹겠다
고 편식 타령까지 하게 되었을 정도로 거만해졌다.
뱅어국은 당시 상류 사회에서나 간간이 먹을 수 있는
최고급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곳으로 장가도 가고 하자, 그가 모시던
상전의 즉 대감의 호의로 호조의 서리로 임용되었다.
호조는 지금의 재정 경제부와 비슷한 부서인 것이다.
일개 종에서 대단한 신분 상승이요, 벼슬이 아닐 수
없으며, 가문에 일대 경사가 났다고 떠들썩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아들 최수의 과부 어머니는
상전인 김좌명 호조 판서 대감을 찾아 갔던 것이다.
자식의 관리 발탁을 깊이 감사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대감의 보살핌으로 장가도 잘가고 일자리를 얻은
것만으로도 과분한데 그 덕으로 부잣집 사위까지
되어 신간이 편해져 지금은 뱅어국 좌반도 맛없다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온데 나라의 큰 재물을 다루는 호조의
서리 자리에 오르면 거만함이 더하여 행여 옥에
갇히는 일이 반드시 없다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로지 그 혈육 하나에 의지해 사는 천한 과부를
보살피는 뜻에서 그저 제 자식을 조석으로 죽이나
끓여 먹을 수 있는 자리에서 본분을 지키게 해 주옵소서”
하고 아뢰었습니다.
한 낱 상민이오 과부 어머니의 상식을 초월한 자식
사랑에 감탄한 대감은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적어 딸이나 며느리를
가르치는 규방 교과로 삼게 하여 교육했다는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해 묘지가
많은 동네에서, 저자 거리로 다시 서당 이웃으로
이사를 했다는 맹모 삼천보다 더 나은 최수의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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