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유 선비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는데,
자신의 아랫도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유 선비는 겨우 몸을 추슬러 쓰레기더미
옆의 거처로 향했다.
아랫도리가 얼마나 아픈지 낑낑거리며 겨우
한 발씩 떼어 놓으며 걷는데 거의 한나절이나
걸리는 듯했다.
그날 밤 유 선비는 다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날이면 날마다 저자 바닥의 수캐들에게 창녀처럼
이렇게 당하고 살 바엔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다고. 그러나 저번의 말일 때와 마찬가지로
누가 죽여주지 않으면 함부로 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지난번과 같이 굶어 죽는 방법이 제일 손쉬웠지만, 이번에 또 그랬다가는 저승의 염라대왕 영감이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몰랐다. 그래서 유 선비는 그날 밤이 다 새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가 날이 거의 다 새어 갈 무렵 유 선비는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도 죽어 버릴 수 있는 묘안을.
다음 날부터 유 선비는 피가 엉겨 붙은 자신의 아랫도리를 혀로 핥아내며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렸다. 그 후 열흘쯤 지나자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유 선비는 다시 저자 바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주워 먹었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도 틈틈이 네 다리를 쫙 뻗대고 서서 근육을 단련시키고, 아랫니와 윗니를 서로 딱딱 맞부딪쳐가며 아귀의 힘을 키웠다. 계획한 것을 실행에 옮기려면 무엇보다 단단한 몸과 아귀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유 선비는 쓰레기더미에서 찾아낸 돼지 뼈다귀 하나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미리 눈여겨 보아둔 만두집 앞에서 표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만두집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남자들뿐 유 선비가 기다리는 표적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한 계집아이가 만두 봉지를 들고 남자의 손목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유 선비는 그 아이를 보자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단념하고 말았다. 불현듯 저번에 말로 태어났을 때 내장을 터뜨려 죽인 아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마침맞은 표적이 한 쌍 나타났다. 스무 살 안팎의 여자가 서방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함께 만두집을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유 선비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슬렁거리며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앙!' 하고 들려들어 그 여자의 다리를 덥석 물어 버렸다.
"어마, 이 개가 왜 이래!"
그 순간 유 선비는 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 들며 소리쳤다.
"개가 사람을 문다, 미친개다!"
유 선비는 여자의 다리를 꽉 물고 놓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함께 있던 남자가 유 선비에게 발길질을 해대며 소리쳤다.
"이놈의 미친 개, 이거 놔!"
그러자 유 선비는 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와 함께 사내의 발길질은 더 심해졌고 몸은 부서져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유 선비는 계속해서 아귀에 힘을 주며 속으로 소리쳤다.
"얌마, 좀 더 세게 걷어차 봐봐!"
그때 사내의 발길이 유 선비의 주둥이를 향했다. 그 순간 유 선비는 그만 입에 문 다리를 놓쳐 버렸고, 여자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본 남자는 당황하여 여자를 데리고 급히 이웃의 가게로 뛰어 들었다. 그 순간 유 선비는 그만 허망해져 버렸다. 시나리오대로라면 화가 난 여자의 사내가 자기를 걷어차 죽여주어야 했는데, 여자와 함께 그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만두집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사나이가 커다란 몽둥이 하나를 손에 들고 나오는 게 보였다. 유 선비는 반가워서 그쪽으로 머리를 틀었다. 그때 유 선비는 사나이가 몽둥이를 자신의 머리 높이까지 쳐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소리쳤다.
"성공이다!"
그 다음 순간 유 선비는 자신의 머리에서 "뻑!" 하고 골이 빠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 그 단 한 방만으로 유 선비는 한 많은 암캐의 생활에서 해방된 것이었다.
"개로서의 너의 수명은 원래 짧게는 십이 년 길게는 십육 년이었다. 그런데 왜 벌써 돌아 왔느냐?"
염라대왕이 묻자 유 선비는 슬픈 표정을 짓고 대답했다.
"예, 대왕마마. 저자 거리의 어떤 사람이 저를 그만 몽둥이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자 대왕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옆에 놓인 장부를 뒤적였다. 그 순간 유 선비는 다시 간이 콩알 만해졌다. 그러나 유 선비는 속으로 설마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저 놈을 당장 묶어라!"
사자들이 달려들어 유 선비를 묶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대왕이 얼굴마저 시뻘겋게 되어 유 선비에게 소리쳤다.
"너는 개라는 신분을 잊고 종족의 대를 잊기 위하여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수컷들의 위대한 행위를 참지 못했다! 그것만 해도 네놈은 자연을 거스르는 큰 죄를 지었다! 거기에다 결국은 엉뚱한 한 인간으로 하여금 살생까지 저지르도록 만들었구나!"
그 순간 유 선비는 그만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그리고 울며 말했다.
"아이고, 대왕마마! 하지만 덩치 큰 개가 달려드는 데는 저도 그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닥쳐라, 이놈! 원래 인간과는 달리 종족 보호를 위해서라면 어미아비를 가리지 않고 그짓을 하는 게 개다! 그런데 그걸 못 참고서 잔머리를 굴려 남에게 살생의 죄를 저지르도록 만들다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보다 더 큰 죄는 남으로 하여금 살생을 저지르도록 꼬드기는 일이다, 이놈!"
마침내 유 선비에게 다시 벌이 내려졌다. 대왕은 사자들에게 명령했다.
"저놈이 남을 꼬드겨 죄를 범하게 만든 것을 보면 꼭 뱀처럼 간교하다! 그러니 저놈을 데려 가서 사지를 자르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뱀으로 만들어 버려라!"
유 선비는 사자들에게 끌려가서 양 팔과 다리를 잘렸다. 다리가 없는 뱀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이라고는 했지만,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갈 때의 고통이란 덩치 큰 개에게 당하는 강간의 고통쯤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갈 때 그만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유 선비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러나 사방이 워낙 칠흑처럼 어두워 어디가 어딘지 구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하여 한참 웅크리고 있던 유 선비의 눈에 한 가닥 빛이 보였다. 빛은 위쪽에서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그 빛이 비치는 곳으로 올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웬 일인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는 기어서 빛이 비치는 곳까지 올라가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땅 위 그러니까 풀밭에 엎드리고 있는 자신의 몸은 그 사이에 그만 뱀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유 선비는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며칠간 엎드리고 울었다. 그러다가 그는 우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가 또 굶어 죽어 버리면, 스스로 또 목숨을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눈앞에 보이는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혀를 날름 내밀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만 아차, 하며 얼른 혀를 입 속에 도로 감추어 버렸다.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바로 살생을 저지르는 일이었다.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이 뱀으로 다시 태어난 것도 전생에 남을 꼬드겨 살생을 저질렀기 때문인데, 다시 살생을 저질러 앞일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유 선비는 그 순간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산 것은 절대로 잡아먹지 않겠다고. 그래서 유 선비는 주로 나무 열매만 따먹고 살았다.
그러나 육식 동물인 뱀이 나무 열매만 따먹고 살아가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들판에서 들쥐를 만나면 본능적으로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그만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래서 들쥐들은 유 선비를 만나면 도망치는 법도 없었다. 도망치기는커녕 들쥐들은 유 선비가 자신들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공연히 등에 올라타는가 하면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장난을 치기까지 했다. 뱀으로서는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그러다가 너무 귀찮게 군다 싶으면 아가리를 한번 딱 벌려 쫓아 버렸다.
그리고 유 선비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 또 한 가지 있었다. 그 것은 동료 뱀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일이었다. 동료 뱀들은 유 선비가 산 것은 잡아먹지 않고 주로 나무 열매만 따먹고 산다는 소문이 돌자 말했다.
"뭐, 열매만 따먹고 산다고? 정말 웃기는 놈이군. 제가 무슨 발 달린 다람쥐쯤이나 된다고!"
"그러게 말이야, 하여튼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세상의 뱀 쪽은 혼자 다 팔고 다녀요! 에이, 재수 없어!"
그 후 뱀 동료들은 유 선비를 자신들의 곁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왕따를 시켜 버렸다. 잠도 저희들끼리만 어울려 자고 짝짓기도 저희들끼리만 했다. 그래서 유 선비는 항상 혼자 들판을 기어 다니며 나무 열매를 따먹고 잠도 혼자서 잤다. 어쩌다가 시원한 나무 그늘 같은 데서 엿가락처럼 서로 묘하게 얽혀서 짝짓기를 하고 있는 뱀들을 만나면 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번 시작하면 하루 종일 한다는 뱀의 짝짓기를 유 선비도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 선비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도대체 상대를 해주는 뱀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 선비는 겉모양만 뱀이었지, 육식을 하지 않고 암컷과 짝짓기를 하지 않으니 사람으로 치면 도를 닦는 수도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유 선비는 열매만 따먹고 살았어도 이삼 년 후에는 여느 뱀 못지않게 자랐다. 길이가 두 자나 되고 몸뚱이는 아이의 팔뚝 만해졌다. 그러나 유 선비는 여전히 고독한 뱀이었다.
어느 날 유 선비는 나무 열매를 찾아 길가까지 나갔다가, 길 건너편에 있는 나무 가지에 아주 맛있어 보이는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았다. 유 선비는 그 열매를 따먹기 위해 길 위로 기어 나갔다. 평소에 유 선비는 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갔다가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봐 두렵기도 했지만, 그랬다가 혹시 못된 사람들의 눈에 띄어 맞아 죽을까봐 겁이 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 선비로서는 아주 오랜 만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위로 나간 셈이었다.
유 선비가 길을 거의 다 건넜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멀리서 마차 한 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란 유 선비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기었다. 그러나 그 순간 마차는 그만 유 선비를 덮치고 쏜살처럼 지나가 버렸다. 유 선비의 몸은 마차의 수레바퀴에 치어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한순간에 몸뚱이의 절반을 잃어버린 유 선비는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염라대왕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놈아. 뱀이 어떻게 나무 열매만 먹고 살았단 말이냐? 네가 수레바퀴에 치여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만, 그 동안 나무 열매만 따먹고 살았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대왕의 목소리는 저번 같지 않게 아주 인자하고 부드러웠다. 유 선비는 그제야 짐승으로 살았던 지난 세 번의 생애를 생각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다시 대왕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울지 마라. 뱀으로 산 삼 년 동안 너의 죄는 다 소멸되었다. 그게 다 너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졌느니라. 그러니 이제는 다시 사람으로 세상에 나가거라. 나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아무리 하찮은 짐승이라도 함부로 해하지 마라."
이렇게 하여 유 선비는 다시 사람의 자궁을 빌려서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유 선비가 태어나던 날 밤에는 마을의 개들이 짖어서 반겼고, 마구간의 말이 앞발을 들고 울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 선비의 집 안뜰에 뱀 몇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았다가, 유 선비의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숲속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갔다.
그 후 유 선비는 자라면서도 말을 좋아하였고 개와 어울려 놀기를 즐겼다. 또 뱀을 보면 무서워하지 않고 손으로 집어서 목에 걸고 다니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 선비는 항상 하인들에게 타일렀다.
"말을 탈 때는 항상 안장을 얹어서 타고 양 발로 말의 배를 조이거나 차지 마라. 그리고 절대로 무리하게 고삐를 잡아당기거나 채찍질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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