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분 중에 지금은 어디로 가셨는지
확실치 않은데 신행 스님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70년대 한 중반쯤 스님이 되신 분인데,
전라남도 장성에 가면 백양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서옹 큰스님이 계셨는데 그 스님의 상좌입니다.
이분이 66년도에 서울에서 동국대학교에 다녔는데
학생회에서 해인사로 관광을 간 적 있다는 겁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고속버스가 다니지 않을 때라
국도로 서울에서 9시간이 걸려 간다고 했을 정도로
장시간 걸리는 그런 여행이었답니다.
그분 성격이 상당히 활달하고 어디 가서 노는 걸
보면 아주 재미있게 잘 노는 분이래요.
노는 데는 꼭 중심 역할을 하는 그런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날은 친구들끼리 해인사로 가니까
그 뭐, 술도 먹었을 테고, 차 안에서 노래도 부르고
아주 신나게 놀았는가 봐요.
그런데도 그분은 전혀 놀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
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놀든 말든, 그 분이 16살 때부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했는데, 열심히 그 다라니를
외웠다는 겁니다.
다라니가 그렇게 잘 되더라는 거래요.
김천을 조금 지나서 계속 앉아오니까 다리가
뻐근하고 안좋더랍니다.
그때만 해도 버스에 안내양이 있을 땐데,
그 안내양한테 '내가 좀 설테니까 이 자리에 좀
앉으라'하고 안내양을 바로 자기 자리에 앉히고는
안내양 서는 그 출입구에 서서 갔답니다.
가다가 불과 한 20분쯤 지났는데 차가 그냥
구르더라는 겁니다.
한 50미터 가량 되는 언덕에 차가 굴러버렸다
는 것이지요.
몇 바퀴 굴러 가지고 그냥 떨어졌는데
완전히 차가 납창갱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때 45명이 타고 갔는데 44명이 죽었다는 거예요.
저도 훗날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 신문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 버스 사고로는 가장 큰
교통 사고였답니다.
1명 남고 다 죽어버렸는 거래요.
그 한 명이 누구냐, 바로 신행이라는 그 스님입니다.
그 스님은 상처도 거의 안 났더라는 겁니다.
머리에 상처가 조금 나고 팔다리가 좀 뻑적지근한
그런 정도지 거의 상처가 안 난거라.
그래 그때 인터뷰를 했는데 그 어떤 기자가 매일신문인가
어디에 "이건 기적이다. 이렇게 거의 상처가 안 날
정도로 한 사람이 살았다.
이건 기적이 아니면 있을 수가 없다."
그런 내용의 인터뷰 기사가 있습디다.
어쨌든 그렇게 살아났던 것입니다.
신행이라는 그 스님은 훗날 월남전에 참전을 했는데,
월남에 가서도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겼다는 겁니다.
한번은 전 중대원이 세 명을 남기고 다 몰살을 했는거라,
청룡부대로 갔는데요.
그런데 그 세 명 중에 그 신행스님이 끼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훗날 하는 얘기가 자기는 불사신이라는 겁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게 여러 번 사선을 넘어도 안 죽고 이렇게 멀쩡하니
이것은 자기 명(命)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거야 말로 참으로 염불 공덕이다. 주력 공덕이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주력을 해서 좋은 공덕을 얻었는데
그냥 있을 수 있느냐. 스님이 되자" 해서 출가한 그런
스님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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