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소재지 재래시장 부근이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곧 그곳에서 90리 떨어진 대화면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어려서 아직 여물지 않은 마음의 습관이 고정되어지는 성격이 형성되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마음 속 행복호르몬이 흠뻑 분비되었던 일로는 대화 시외버스터미널인 차부에서 할머니들이 집에서 고아 만든 엿을 팔고 있었는데 서울서 강릉을 가는 버스에 타고 계셨던 어느 선그라스낀 40대의 중년아줌마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너무 귀엽게 생겼구나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검붉은 사과를 하나 주셨다. 그 당시에는 가난한 시절인지라 사과를 한번 먹어보는 것도 매우 어려웠던 시절인데 너무나 탐스러운 사과를 하나 주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니 틀림없이 엔돌핀이 펑펑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두 번째 좋았던 기억은 아버지의 의동생을 맺은 김씨아저씨가 그 분의 동네 입구에서 나를 보자, 그때 당시 어려웠던 살림에 컴을 3 통, 빵을 4 개 사주셔서 한 보따리는 되는 듯싶었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좋았다. 얼마 전 그것이 고마워 그분의 식구들 손자들까지 모두 한 15명을 초청하여 그분의 호의에 보답하고자 좋은 식당에서 대접을 하기도 하였다.
세 번째 좋았던 추억은 happy700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차항리 나의 외가 할머니는 해발 700미터가 넘는 대관령 부근 골짜기에 살고 계셨다. 지금도 그 산들과 솔바람 소리와 외양간과 집들이 눈에 선하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막내 이모가 한글을 가르쳐주고, 김종진이란 ㄴ만화작가가 지은 ‘철인’이라는 만화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재미있게 읽던 생각이 난다. 문창호지가 없어서인지 이승만 대통령 달력으로 도배를 했던 외갓집, 밤에는 전기가 없어 고콜이라는 벽난로에다 관솔불을 밝히고 방바닥에는 왕골 돗자리를 갈고 살았다. 돌배나무에서 떨어진 돌배를 주어 먹었던 기억과 그 돌배가 엄청나게 시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외할머니는 강릉에서 가져오신 꽂감과 감껍질을 간식으로 주셨는데 배고플 때 맛있게 먹던 생각도 난다. 도랑에서 가재 잡고 도랑 주위를 떠돌아다니는 왕잠자리를 풀숲에 숨어 있다가 쑥묶음으로 후려쳐 잡았던 생각이 난다. 그 동네에 있던 농장에서 당시 비료가 없어 풀을 썩혀 퇴비를 만들었는데 동네 사람들에게서 베어온 풀을 샀다. 이모와 나는 풀을 베어가지고 가 팔아서 생전 처음으로 돈을 벌었던 생각도 난다. 지금도 일생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 외가 가까이 가서 외양간의 오지랍물을 건너뛰면서 ‘외할머니’하고 부르면 할머니와 온 집안 식구들이 ‘우리 외손자 왔구나’하고는 맨발로 뛰어나와 얼싸안으시면서 나를 반기던 기억이 난다. 일생에서도 그때가 가장 기분 좋은 시절이었으리라. 대관령 차항리에 있던 외갓집에서의 좋은 기억이다.
보다 높은 감동에 조용한 가운데 감동의 눈물이 나온다.
그보다 더 깊은 진한 감동을 느꼈던 일은 필자가 참선을 통하여 도를 깨우친 고승들의 말씀을 엮은 고승법어집을 보았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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