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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깐학습법

나에게 공부 잘하게 하는 노하우를 묻는다면

by 법천선생 2011. 5. 27.

-잘 못쓴 글이지만 이 이야기를 박주현양 어머니께 바칩니다.-

 

칭기스깐학습법을 저술한 필자에게 공부 잘하게 하는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즉시 말해줄 수 있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 가르친 사람이 아닌 체육교사 출신이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는 꽤나 크게 논사람(?)이었다.

 

테니스를 지도하여 세계 1위의 선수를 가르치려는 시도를

확실하게 해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만한 실적도

확실하게 가지고 있고, 현재는 장학사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는 고등학교 다닐 때, 기계체조 선수출신으로서

오전 수업만하고 운동을 했지만 당시에 반편성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특수반에, 못하는 아이들은

돌반에 편성되었었다.

 

당시 비록 돌반이었지만 나는 늘 벼락공부라도 하여

반에서는 1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는 대학에 가려면 예비고사라는 시험을 치르었는데도

나는 우리 돌반에서 단두명이 합격한 예비고사에도

합격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공부 잘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자랑할만한 이야기 거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을 했기에 체육이

내 적성에 맞다고 생각되어 체육대학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가 체육과를 가는 것이

영 못마땅하신 눈치였지만 나는 내가 좋아서 체육과에 들어갔다.

 

그 이후 계속되는 학교 근무와 아이들 교육,

특히 테니스 선수 지도에 정말 많은 땀을 흘렸다.

 

나와 함께 테니스를 지도했던 6명의 코치들은

모두 훌륭한 지도자들이어서 나에게 많은 지도 노하우를 가르쳐주었다.

 

많은 테니스 지도 기술을 그들로부터 배웠고 수많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도자들에게 솔직하게 나는 테니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니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며 가르침을 청하기를 수도 없이 하였다.

 

그리고 만난 세계적 으로 가장 유명한 미국 MBA교장이신

닉 볼리테리씨를 만나 창충테니스코트에서 실시된 그의 강습을

일주일 동안 듣는 동안, 그도 원래 테니스선수출신이 아니라는 점과

법학과를 졸업하고도 세계적 코치가 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왔다.

그의 소리를 크게 지르며 열렬하게 지도하는 살아있는 훈련,

열정을 다한 자세의 생생한 훈련법에 완전히 매료되어

나는 당시 65세나 된 그의 열정의 포로가 된 기분이었다.

 

가요쇼를 할때에도 가장 인기 좋고 노래를 잘부르는 사람이

가장 늦게 출연하고 가장 많은 정성과 열정을 들여 공연을 하는 것처럼,

 

그는 선수들을 가르칠 때 몸을 던져 열정적으로 하지 않으면

전혀 교육의 효과 없다는 것을 나에게 직접 몸으로 뛰면서

확실하게 보여준 세계적 테니스의 대부이자 스승이었다.

 

그로부터 전수받은 열정에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얻은

다른 사람들의 노하우에다. 세계적 코치들의 강연내용을 녹음하여

 2년 동안이나 들은 테니스의 전체적인 개념 파악과 같은 것들이 확고해졌다.

 

내 나름대로의 확고한 테니스 노하우가 완성된 다음에야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조기교육자들을 스카웃하여

현재의 이형택과 같은 선수를 키워낸 것이다.

 

사실, 형택이는 내 수제자라고 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것은 맞지만,

그가 중학생이였던 시절에는 그보다 더 잘생기고 키도 더 큰

멋있는 선수가 전국 랭킹 1위였던 내 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토록 장래가 촉망되던 선수가 영영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부모들이 자식의 장래를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지도자의 말을 등한시 한 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운동은 아무래도 1등만 기억되는 것이었기에 그로서는

당시 열정만으로만 가득하였던 욕심많은 선생님인 나에게

약간의 안좋은 추억(?)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렇게 학교에서 테니스에 미쳐 세계적인 선수를

키워보겠다고 노력할 때 내 친구들은 승진을 하여 교감으로

내 곁에 나타나게 되었다.

 

당시 난 큰 실망감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는 내 삶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승진은 커녕, 전근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라고 생각하여

벽지 학교로 전근하여 벽지 점수를 얻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아 무려 10년을 기다려야

벽지점수가 다 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불이나게 준비한 것이 장학사 시험 준비였다.

"그래, 지금부터는 내가 선수가 되는 거야, 그 동안 아이들에게만

열심히하라고 시켰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직접 선수가 되어

열심히 한번해보는거야"하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바로 옆에 앉았던 첫발령받고 온 여선생님에게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가를 묻게 되었다. 

 

그래서 알게 된 노량진교육학 학원들을 실태를 파악하고

 45세가 되어서야 방학과 동시에 고시원에 들어가

난생처음 공부다운 공부를 하게 되었다.

 

45세가 된 사람이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두꺼운 교육학 책을 읽고 일어서면 당장 잊어 버리고

하나도 머리속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읽고 또 읽고 읽었다. 그리고 오전에는

이 학원 오후에는 저 학원, 저녁에는 다른 학원을 다니면서

듣고 또 듣고 들었다.

 

무조건 공부가 습관이 되도록 스스로 성취동기를

강화하곤 밀고 나갔다.

 

고시원 생활은 정말 열악하였다.

30여평의 반안을 여러개의 방으로 나누어

키가 작은 편인 내가 누워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가

2미터밖에는 안되는 좁은 방에 책상 딱하나

책꽂이 하나가 있었으니까말이다.

 

어느 날인가 책꽂이 위를 더듬다가 책 한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학원에서 발행한 개발세발 쓴 조잡한 합격수기였다.

 

예전에는 고시에 합격해야만 쓰여졌던 수기가 이제는

공무원 시험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9급 공무원에

합격하고서도 쓴 합격수기들이었다.

 

그 수많은 합격수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저절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짐을 느꼈다.

 

그들의 괴로움이 피부로 직접 와 닿는 직접적인 체험이었다.

내 인생은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으로 멋있는 사람의 태도로 이어졌다.

 

그해 나는 컴퓨터 시험과목을 대비하지 못하여 떨어졌다.

다음 해를 대비하여 또다시 공부에 돌입하였다.

이번에는 컴퓨터와 논술과목에 더욱 더 집중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해에도 낙방, 당시 삼진 아웃제가 있어 이번에 떨어지면

영원히 자격조차없게 되었었다.

 

또 다시 노량진 학원가를 전전하며 공부를 하고 또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합격을 하게 되었다.

 

합격을 했지만 발령은 즉시 나지 않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교육학을 배운 탓에 교양과목 강사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하여 그 사람을 매우 곤욕스럽게 만들었던 생각이 난다.

워낙 배운게 많았던 탓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선택이 멋지고 매우 잘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냥 너무나 평범한 체육교사의 길을 갔을 것이다.

 

그 때 공부를 열심히하게 되니까 두뇌속으로 흘러가는

혈류량이 엄청나게 증가하여 두뇌가 건강하여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부나 독서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

 

내가 체험하여 겪은 부문이 아니지만, 공부라는 다른 차원의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사실은 내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테니스를 잘하는 선수를 키웠음에도 지도자나 부모들이

단 한명도 나를 찾아와 내 노하우를 묻지 않는 점에 대하여

대단한 놀라움으로 다른 방면에서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내 책에 등장한 어머니들은 내가 그분들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 양육 상황을 묻자 대단히 감동하며

한나절씩이나 정성껏 답해주시던 고마운 기억이 난다.

 

사람은 누구나 존경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나는 늘 말하길 김연아보다는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가

더욱 더 존경스럽다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피겨 세계 침피언을 꿈도 꾸지 못할 시절에

1년에 4천내지 5천만원이나 하는 훈련비를 감당하고

자식의 특기와 적성을 믿고 끝까지 밀어준 그 어머니의 열정과

목표의식, 집념의 투지 앞에 온 국민들이 모두 박수를 보내야할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