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대로라면 나는
선천적인 영재 수준의 명상가이다.
가드너교수가 말한대로 나는 정확히 19살때
엄청난 참선에 대한 초발심이 강력하게 일어났던 사람이다.
지금, 나이가 들어 뒤돌아보니 나는 분명
그런 부문에서는 영재임에 틀림없었다.
영재교육전문가인 랜줄리 교수의 이론을 보면
영재란 별것이 아니라, 보통보다 조금 높은 지능 수준에다,
강력한 과제집착력이 있고, 창의력이 있으면
그가 바로 영재라고 했으니 말이다.
나는 내인생이 꽤나 드라마틱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다닐 때에는 나는 거의 미친 사람 수준으로
참선을 좋아했고 멀리서 스님의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뛰는 그런 사람이었다.
부모의 반대와 출가하지 않아도 될 듯한 필자의 느낌으로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신심만은 대단했던(?) 사람이다.
늘 여름방학만 되면 오대산 회사거리 위 쪽 조개골이라는
골짜기에서 나름대로 참선에 매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보내고 시내에 나오면 사람들이
모두 개미처럼 작게 느껴졌고 내 마음은 태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살다가 군대에 가게 되고,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고,
결혼을 하면서 그 선정력을 모아서 대단한 기백으로(?)
선수를 양성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중학교 교사에서 고등학교로 발령받아 평창고등학교 교사 시절,
내 거처인 원주에서 전국체전이 있었을 때, 당시 가장 인가가 높던
테니스 종목에 원주의 유지들이 많이 임원으로 있었다.
당시 나의 열정적인 지도력에 그들은 모두 매료 되어
"당신이 원주에서 테니스 선수를 키워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음해에 원주중학교로 전근하여 그 동안 정립했던
테니스지도력을 자유롭게 발휘하게 된 것이다.
그분들이 당시 한달 동안에 우리 테니스부만을 위하여
1인당 5만원씩 8분이 40만원을 보내주시기에
그러한 큰 일을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에 밝힌대로 나의 인생을 건 승부수는 결코 그러한
세속적인 것에 있지 않았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자신있고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명상에
그 동안의 노하우를 모아 책을 출간하려고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또 다시 나로 하여금 다른 방향으로 돌게 하였으니,
한국초월명상 이원근 대표를 통하여 알게 된 출판사 사장님과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은 무려 3년동난이나 써서 가지고 온 나의 명상책을
단 한번도 보자는 말이 없이 "선생님! 그 명상책은 팔리지 않겠습니다"
라는 너무나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
은근히 화가 난 나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 동안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를 키워보려고 노력하였던 내력과
그러한 선수 뒤에는 나타나지 않는 희생적인 지도자가 있음을
보아왔다는 사실에서, 전국적으로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들의
엄마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30여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지신 출판사 사장님이
"선생님, 그 책이라면 저희 출판사에서 무료로 출간하겠으니,
한번 써보라"는 파격적인 사장님의 권유로 '칭기스깐학습법'
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4월 28일에는 아내의 친구들의 권유로
원주 더불유 시티 컨벤션 홀에서 300여명의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출판기념회도 개최하였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해진 듯한 운명을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은, 나의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칼하다.
'칭기스깐학습법 > 맘샘교육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은 세상학교의 축소판이다. (0) | 2011.06.07 |
---|---|
자식을 너무나 모르는 부모들 (0) | 2011.06.05 |
최선의 80%를 실행했다는 것은? (0) | 2011.06.05 |
이사금 대표의 교육학 공부 '열공시절' (0) | 2011.06.05 |
고교 교육과정 중에 '부모교육'과목이 시설되어야 한다. (0) | 2011.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