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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선가귀감(禪家龜鑑)도고마성 /서산대사

by 법천선생 2011. 8. 19.

마군(魔軍)이란 나고 죽는 생사를 좋아하는

마음 속에서 온갖 요술을 부리는 귀신의 이름이고,

8만 4천 마군이란 중생의 8만 4천의 번뇌이다.

 

악마란 본래 종자(種子)가 없는 것인데

수행자가 바른 생각을 잃는 데서 그 움이 트게 된다.

 

중생들은 그 뜻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이 공존(共存)하나,

수행하는 도인은 그 뜻에 거슬리므로 악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방해하는 마(魔)가 드세다"고 한 것이다.


어떤 스님이 선정(禪定)에 들었는데

상복을 입은 사람이 "네가 우리 어머니를 왜 죽였느냐?"고

대들어서 옥신각신 시비 끝에 도끼로 그 사람을 찍었는데

자기 다리가 찍어서 큰 상처를 입은 바가 있고,


또 어떤 스님이 선정에 들었는데

멧돼지가 쫓아와 대들기에 멧돼지 코를 붙잡고

소리를 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의 코를 붙잡고 있었다는 일화가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악마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온갖 시비장단과 선악분별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부동심(不動心)이면

악마가 아무리 많은 요사와 재주를 부린다해도

마치 칼로 물을 베거나, 빛을 입으로 불어

끄려는 행위처럼 허망한 것일 뿐인 것이다.

 

옛말에 "벽이 갈라져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 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악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밖으로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이고,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陰魔)이고,

일어나기도 하고 혹은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煩惱魔)이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바른 정법(正法)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무심(無心)한 것이 불도(佛道)이고,

분별(分別)하는 것이 악마의 짓이다.

 

악마의 일이란 허망한 꿈 속의 일인데

더 길게 말할 것이 무엇이랴.


마음을 밝히는 공부를 한 단계라도 이루었다면

비록 금생(今生)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죽어서 눈을 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기적인 행위는 어리석은 무명(無明)이고,

선정(禪定)은 에고가 없는 밝은 지혜이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서로 맞설 수 없는 것은

물과 불이 함께 할 수 없듯 당연한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