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작(道綽: 562-645: 당나라)은 서하선사(西河禪師)라고도 부르는데,
담란의 정토사상을 계승하여 당대의 초기 정토교를 개척하였다.
《안락집(安樂集)》을 지어 불교의 일대 교설을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으로 분별하고, 말법시대에는 시대와 근기에 상응하는
정토문이 유일한 법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안락집(安樂集)≫상권, 성정이문(聖淨二門)에서 이렇게 설하였다.
『묻기를,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이 있고,
오랜 겁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응당히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을 것인데,
무슨 원인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생사에 윤회하고 고통(火宅)을
벗어나지 못하는가?”라고 한다.
대승의 성스런 가르침에 의지하되 진실로 두 가지 수승한 법으로써,
생사를 버릴 수 없는 것이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때문에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 법(法)인가?
첫째 성도문(聖道門)이요,
둘째 왕생정토문(往生淨土門)이다.
성도의 한 문은 지금 시대에는 증득하기가 어렵다.
첫째, 대성인이 가신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치는 깊으나 이해하는데 미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문에 《대집월장경(大集月藏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법시대 가운데서는 수많은 중생이 행을 일으켜
도를 닦지만 한 사람도 얻는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지금은 말법시대가 나타나고 있다. 이 오탁악세(五濁惡世)에는
오직 정토의 한 문이 있으니 들어가는 길에 가히 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때문에 《무량수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어떤 중생이 비록 일생동안 악업을 지었더라도
목숨이 다하는 때에 임하여 나의 명호를 십념으로 불러도,
만약 왕생하지 않는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라.’라고 하셨다.
또한 일체 중생은 스스로 헤아리지 않는다.
만약 대승법에 의거하더라도 진여실상(眞如實相),
제일의공(第一義空)에 일찍이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소승법을 논하더라도 사제(四諦)를 보고 수도함으로써
닦아 들어가 아나함 아라한의 지위에 이르러,
위아래의 번뇌를 끊어야 하는데, 출가자와 재가자를 물을 것 없이
조금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인천(人天)의 과보가 있지만 모두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을 지어서 능히 이러한 과보를 부른 것이다.
그러나 계를 지니고 과보를 얻는 자도 보기가 극히 어렵다.
만약 악행을 일으키고 죄업을 짓는 것을 말한다면,
어찌 사나운 폭풍, 몰아치는 소낙비와 다르겠는가?
이러한 때문에 모든 부처님이 대자비심으로 정토에 돌아가기를 권하셨다.
비록 일생동안 악업만을 지었더라도 단지 마음을 모아
오로지 정성으로 항상 염불(念佛)한다면,
일체의 모든 장애가 자연히 소멸되고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어찌 생각하지 않으며, 도무지 왕생할 마음이 없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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