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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만큼 명상하게 된다.

by 법천선생 2013. 10. 12.

 

 

 

명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을 선듯 말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왜냐하면 묻는 사람이 물질, 세속적 성향으로

물어보게 되면 당장 답이 궁할 때도 많으니 말이다.

 

세상의 지식처럼 명상에서도 아는 것이 힘이다.

오히려 명상에서만큼 아는 것이 힘인 경우도 드물 것이다.

 

신에게 올인하고 경외하는 방법을 한가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어

신에 대한 헌신적 생각의 힘을 강화하는 방법을 깨달아 안다면,

 

아마 그보다 세가지, 또는 그 이상의 더욱 더 좋은 집중방법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훨씬 더 효율적으로 신에 대한 헌신적인

생각을 만들어 더욱 더 강력하게 집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상에서의 공부는 세상에서의 공부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

세상의 공부는 다른 사람이 체험한 사실을 지식으로 묶어

책이나 강연이라는 방식으로 만들어 이해하는 방식이지만,

명상에서는 그러한 보편적, 외형적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오직 내 내면에 에고와 영혼, 둘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진정한 나의 원래 모습인 불성, 성령, 상위자아 등으로

지칭되는 영혼의 존재에게 그 답을 직관적으로 구하는

형식으로 세상의 지식 습득방식과는 조금은 다른 형식

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높은 자아의식과 소통하여 그의 말을 경청하려면,

일단, 눈을 감아 시각정보를 차단하고, 전신을 이완하여

모든 근육의 힘을 풀고, 내면의 진정한 자아가 하는 말을

형식에 구애없이 잘 듣고 알아채는 것이 바로 명상인 것이다.

 

마음의 나와 내면의 자아와 어떻게든 만나려고 한다면,

눈을 감아 외부와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나서 되도록 허리를 편 바른 자세로 모든 의식과

전신의 신경을 내면의 진정한 자아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에도 당장 어떤 성과가

단시간에 잘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이 과거의 너무나 강력한 고정관념에

철저히 사로잡혀 현실에 있는 것을 고정관념없이 그대로

제대로 보지 못하게 세뇌 당하도록 세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신구의를 잘 정화해야 하는 것이다.

 신구의란 행동과 말과 생각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는

모두 같은 개념이나 사람의 행동방식상 생각하는 것이

말로 표현되고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쉽게 한마디로 줄여 말한다면 '수행의 개념을

어떻게 바르게 정립하는가'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아는만큼 체험한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내면의 자아를 사랑하고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