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연 (이하 문) : 목연선생이 노힐부득과 달달박박님을 초청하여 대담하였습니다.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 주신 두 분의 자취를 전하기 위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다고 하네요.
노힐부득, 달달박박 (이하 답, 노힐부득은 노, 달달박박은 달) : 허허, 아무튼 반갑습니다.
달 :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며) 나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 새삼스레 뭐.
노 : 허허허, 이 친구야, 다 지난 일이 아닌가? 이것도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인연이 아니겠는가? 그래, 선생께서 우리에게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오.
문 : 고맙습니다. 그럼 우선 노힐부득(努肹夫得)님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두 분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노 : 우리는 신라 성덕왕 때에 수도를 하던 승려이지요. 나는 20세 무렵에 도반인 달달박박(怛怛朴朴)과 함께 출가하여 유리광사(琉璃光寺) 등에서 수행을 하였지요.
문 : 그런데, 달달박박 스님께서 꿈속에서 어떤 계시를 받으셨다지요?
달 : 그렇습니다. 어느 날 꿈에 서쪽에서 찬란한 빛이 우리에게 비치면서 빛 속에서 금빛나는 팔이 뻗쳐오면서 우리 둘의 머리를 쓰다듬는 꿈을 꾸었지요. 다음날 노힐부득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이고요. 우리는 이 꿈이 더욱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계시인줄 알고 절을 옮겨 백명산(白月山) 깊은 골짜기로 수도처를 정했습니다.
문 : 그래서 어디로 가셨는지요?
달 : 나는 북쪽 산 고개에 있는 사자암에 터를 닦고 판자로 집을 지었지요. 노힐스님은 동쪽 산고개 아래에서 돌무더기로 집을 짓고 수행을 하셨고요.
문 : 그런데 두 분이 계시는 곳에 아리따운 낭자가 찾아왔다고요?
달 : 그 때가 성덕왕(聖德王) 8년(709) 4월 8일날 밤이었습니다. 우선 내 거처에 먼저 왔었지요. 시각이 깊은 밤중이었는데 그녀는 밤이 되어 갈곳이 없다면서 자고 가기를 청했습니다.
문 : 그 낭자가 의미 깊은 시구를 읊었다고 전해지는데요.
달 : 그렇지요. 이런 시였습니다.
길가다가 해가 지니 온 산은 어두워지는데 (行逢日落天山暮)
갈길은 막히고 갈곳은 멀어 막막하구나 (路隔城謠絶四隣 )
오늘밤 이 암자에 자고가고자 하오니 (今日欲投庵下宿)
자비로운 스님이시여 노여워하지 마시오 (慈悲和尙暮生嗔)
문 : 스님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달 : 달리 생각할 것이 없었지요. 불제자로서 한밤중에 젊은 여자를 머무르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녀에게 절이라는 곳은 깨끗해야 하므로 여자가 머물 곳은 못된다고 타일렀지요. 그리고 어서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보라고 말한 뒤 문을 닫아버렸고요.
문 : 매정하신 처사가 아닌지요? 그 밤중에 어디로 가란 말인가요?
박 :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십년 공부가 허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후세의 일이지만 황진이의 미모로 인해 파계를 한 지족선사 이야기도 있지 않소이까?
문 : 그렇군요. 그 낭자는 노힐부득 스님의 처소로 갔다고 하고요. 노힐부득 스님께서 그 곳에서의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노 : 선생이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낭자는 내게로 왔지요. 내게는 이런 노래를 들려주며 하룻밤 머물 것을 청했습니다.
깊은 산길에 해는 저물고 가도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네.(日暮千山路 行行絶四隣 )
송죽은 짙은 그늘 드리우고 골짜기 물소리 더욱 새로워라.(竹松陰轉邃 溪洞響猶新)
길잃어 갈 곳 찾으러 온 것이 아니고 그대의 뜻을 이끌어 주려고 함일세.(乞宿非迷路 尊師欲指津)
부디 나의 청만 들어주시고 내가 누구인지 묻지를 마오.(願惟從我請 且莫問何人)
문 : 스님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노 : 나도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심상치 않은 노래가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았고요. 곰곰히 생각 끝에 낭자를 맞아들였지요.
문 : 출가한 스님으로서, 더구나 단칸방에 젊은 여자를 맞이한다는 것은 파계가 아닌지요?
노 : 선생의 말이 맞소. 내 방은 여자가 함께 있을 곳이 아니지요. 하지만, 내가 도를 깨치려는 것은 중생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중생이 내게 도움을 청하는데 그 뜻을 들어주는 것도 보살의 길이지요. 길을 잃어 어두운 밤에 깊은 산골을 찾아온 사람을 어찌 박정하게 쫓겠습니까?
문 : 달달박박 스님께서는 노힐부득 스님의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달 : 허허, 어려운 질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노힐 스님이 옳았지만, 당시 나로서는 내가 믿는 신념을 따라 결단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문 : 노힐부득 스님께서는 그 날 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아리따운 여인과 한 방에 있으면서 아무렇지 않으셨습니까?
노 : 어찌 잠을 잘 수 있었겠습니까? 선생이 생각한 그대로 입니다. (웃음) 처음에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지요. 그대로 누웠다가는 내 마음을 통제할 수 없을 듯했고요. 나는 밤새도록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염불을 하였지요.
문 : 하지만, 새벽녘에 유혹이 있었다고요?
노 : 글쎄요. 유혹이라기보다는 나의 정진을 시험하는 채찍이었지요. 낭자가 갑자기 나를 불렀습니다. 산기가 있다면서 도와달라고 했지요.
문 : 산기라고 하셨습니까?
노 : 그렇습니다. 아이를 낳게 된다는 이야기이지요. 내가 비록 남자라고는 해도 출산이 무엇인지라는 정도의 상식은 있었습니다. 난감했지요.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외딴 산사에 나와 낭자뿐이었으니까요. 그녀는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순산했고, 곧이어 몸을 씻겠다면서 물을 데워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출산을 돕기 위해 물을 데웠고, 그녀가 몸을 씻을 수 있게 도와주었지요.
문 : 스님으로서 아니, 남자로서 그런 것을 보시면서 아무렇지도 않았습니까?
노 : 밤새워 기도하면서 마음을 비운 상태였습니다. 나는 오로지 불쌍한 중생을 살피려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문 : 그래서 어찌 되었는지요?
노 : 낭자가 목욕통에 들어 가자마자 목욕통에서 향기가 퍼지고 목욕물은 황금색으로 변했습니다. 나는 크게 놀랐지요. 그녀는 내게도 목욕통 속에 들어오라고 권했습니다. 무엇엔가 홀린 마음으로 나도 그 속에 들어갔고, 순간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내 몸이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무심코 옆에 있는 낭자를 돌아보니 어느새 낭자는 연꽃 받침자리(蓮臺)에 앉아 있었고요. 낭자는, 아니 그 분은 관세음보살이셨던 것이었습니다.
문 : 경하드립니다. 드디어 해탈하시고 성불의 경지에 이르셨군요.
노 : 모두 부처님의 은덕입니다.
문 : 달달박박 스님께서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달 :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는 다음날 그 낭자가 혹시 노힐부득을 찾아가지 않았나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그 친구는 실수를 저질렀을 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꾸중을 해줄 요량으로 날이 새자마자 노힐 스님의 암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암자문을 여니….
문 : 어찌되었는지요?
달 : 노힐 스님은 보이지 않고, 연꽃 좌대 위에 彌勒尊像(미륵존상)이 앉아계셨습니다. 자세히 바라보니 다름아닌 노힐 스님이었지요. 나는 자기도 모르게 황공한 자세로 성불한 벗에게 합장배례 하면서, 먼저 관음보살을 만나보았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보낸 나의 어리석음을 한탄하였지요.
문 : 그런데 노힐부득 스님께서 도와주셨다고요?
달 : 그렇습니다. 노힐 스님이 자신의 몸을 씻은 목욕통 속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몸을 담그자 내 몸 역시 금불로 화했습니다.
문 : 경하드립니다. 두 분 스님의 성불을 축하드리고요. 그런데 그 기록이 모두 사실인지요?
노 : 허허허, 선생이 믿기 나름이오.
달 : 이렇게 우리를 만나고도 믿을 수 없다면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겠소.
문 : 저도 두 분처럼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노 : 인연이 있다면야…. 아무리 우매한 중생이라도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을….
문 : 저로서 이해가 안 가는 면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저의 소견으로는 노힐부득 스님보다는 달달박박 스님의 처신이 옳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으시고 계율을 철저하게 지킨 달달박박 스님께서 먼저 득도하셨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노 : 허허허.
달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리석은 내가 하는 것이 옳을 듯하오.
문 : 말씀해 보시지요?
달 : 이런 말을 들어 보셨소.
두 스님이 길을 가고 있는데 강이 하나 나왔소.
그런데 어떤 젊은 여인이 강가에서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오.
물은 허벅지만큼 적실 만큼 깊은데 배는 없고,
그렇다고 젊은 여인으로서 치마를 벗고 건널 수가 없었던 것이오.
문 : 그래서 어찌 되었는지요?
달 : 한 스님은 계율을 엄하게 지키는 분이셨소.
그는 여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혼자서 바지를 벗고서 물을 건넜지요.
그러나 다른 스님은 역시 바지를 벗더니 그 여인에게 등을 내밀었소.
여인은 스님에게 업혔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오.
혼자서 먼저 강을 건넌 스님은 그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지요.
'남녀가 유별한데,
더구나 수행자로서 어찌 젊은 여인을 업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지요.
강을 건넌 뒤에 여인은 제 갈 길을 갔고, 두 스님도 역시 그랬지요.
한 오리 쯤 걸은 뒤에 먼저 강을 건넌 스님이 이렇게 꾸짖었다오.
"스님은 그럴 수 있단 말이오?"
"무슨 말씀입니까?"
"불제자로서 젊은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너다니 부끄럽지 않소이까?"
그 때 여인을 업고 건넌 스님이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선생은 아시오?
문 : 모르겠습니다. 어떤 대답을 하셨는지요?
달 : "소승은 강을 건너자마자 그 여인을 잊어 버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직까지 그 여인과 함께 오셨습니다, 그려.
아직도 스님의 마음 속에 품고 계신 것입니까?"
무슨 뜻인지 아시겠소?
문 : 아, 알 듯합니다. 노힐부득 스님께서는 밤새껏 낭자와 함께 있었지만 그녀를 잊은지 오래이고, 달달박박 스님께서는 낭자를 내쳤지만, 밤새껏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는 뜻인지요?
노 : 허허, 달달박박 스님의 설법이 감동적입니다. 그것을 깨친 선생께서도 깨달음의 인연이 있는 듯하구려.
문 : 그런 인연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 가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두 분의 깨달음이 보다 많은 분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노 : 이제 헤어질 시간인가? 편히 돌아가시오.
달 :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기를 빌겠오.
* 자료 출처 : 제가 알고 있는 상식과 삼국유사의 노힐부득, 달달박박 설화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대화에는 저의 소설적인 상상을 가미했습니다.
목연 네이버블로그에서 옮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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