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존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끔
문명화된 개인의 정상적인 반응을 부정하고
세속적인 자아에 폭력을 휘둘러야 했다.
요가 수행자들은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파괴하고
사고와 감정을 없애소 깨달음에 저항하며 버티는
무의식적인 바사나를 제거할 때에만 ‘자아’가
해방될 수 있다고 믿었다.” (카렌 암스트롱)
요가는 우리 자신을 부수기 위한 기술로 개발된 것이다.
요가 수행의 초기단계에서 “수행자는 음악, 특히
스스로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웅장하고 고아대하며 차분하면서도 고상한 영역에
들어선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몸을 소유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이 아마도 저자의 좌뇌가 무너졌을 때
느낌일 것이다.
요가 수행자는 네 개의 정신 상태를 차례로
경험하면서 존재의 새로운 양식에 진입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무한에 대한 느낌(空無邊處)이다.
두 번째는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순수한 의식(識無邊處)이다.
세 번째는 부재에 대한 인식(무소유처(無所有處)이며
이것은 역설적으로 풍요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오직 재능이 뛰어난 요가 수행자만이
이 세 번째 아야타나에 이를 수 있었다.
이것을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 말이나 개념은 없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방 안에 걸어들어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묘사한다.
그럴 때 우리는 공허, 공간, 자유를 느끼게 된다.
저자의 체험은 뇌과학 서적에서 종교적 체험을
설명할 때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종교적 혹은 영적 경험의 밑바탕에 있는
신경해부 구조가 확인되었다.
우리가 개인의 존재에서 벗어나 우주
(신, 열반, 극도의 행복감)와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뇌의 어느 부위가 관여하는지 확인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뇌졸증 경험으로 축복에
가까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누구든 언제라도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열반과도 같은 경험이 우뇌의 의식 속에 존재하며
언제라도 스스로 뇌의 그 부분에 접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뇌졸증이 나에게 가르쳐준 최고의 것은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평화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그러나 좌뇌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예전의 감정이 돌아왔다.
“판단은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분노, 좌절, 공포 같은 감정이 몸 안에 차오르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감정 프로그램을 되찾고 싶고
어떤 감정 프로그램(조바심, 비난, 불친절)에 발언권을
부여하고 싶지 않은지 무척 까다롭게 골랐다.
뇌졸증은 내가 세상에서 누구이고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게 해준 놀라운 선물이었다.
사고 이후 나는 내게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출처] 영적 체험의 생리학|작성자 C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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