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에게서 더 이상 나를 쥐어짜며 살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이제부터는 제 2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상태였거든요. 사실 이 말이 나를 죽을 만치 겁나게 만들었다구요! 며칠이 지난 뒤 전 자신에게 말했죠. " 어쨌거나 난 아직 살아 있다구. 이따위 쓸모없는 두려움일랑은 집어 던져 버리고, 대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구." 나는 내가 답을 얻거나 아니면 지상에서의 삶을 떠나리라 결심했어요. 관상동맥 혈전증 따위에게 내 인생을 맡기지는 않을 거라구요. 의사들은 신장 결석으로 고통을 받을 때면 몰핀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주기까지 했죠. 내가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의사들에게 경고를 받은 후에 한 일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 그것도 100%의 단절이었어요. 예전에는 전 뉴욕에서 생활할 때 예술 오페라 재즈 발레 극장 등등을 즐기는 매우 사교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어요. 나 자신으로부터의 회피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죠. 그러나 3개월 동안 나는 모든 사회 활동을 멈추었고, 데이트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주말에 여동생들과 그 가족들을 방문하던 것조차 그만 두었어요. 전화기도 집어 던져 버렸죠. 정말로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이었고, 뉴욕 시내 한가운데서 전 혼자 고립되었어요. 새벽 2시와 5시 사이에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게 전부였고, 그 시간이면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죠. 맨하탄에서는 가게들이 밤새 문을 열고 있었지만 식료품 가게 주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완전히 세상에서 떨어진 채 혼자 대답을 찾기 위해 죽어라 골몰하고 있었어요. 나는 지난 40년간을 대부분 불행하게 보냈어요.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친구들은 아마 저에게 이렇게 말하겠죠? "Gee 이런 레스터 넌 모든 걸 가진 사람이잖아!" 하지만 전 제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에겐 좋은 가족들과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가 있죠. 훌륭한 교육도 받았구요. 전 센트럴 파크 남부 116번지 펜트 하우스에서 살았어요. 친구들도 무지하게 많았구요. 하지만 제 생활은 불행했고 병들어 있었답니다. 나는 20년 동안 건초열에 시달렸고, 15년 동안 각종 궤양들과 천공된 궤양들에 시달렸고, 간은 비대해졌고 신장 결석까지 있었어요. 1년에 두 번 정도는 황달에 시달렸어요. 편두통도 있었죠. 그러다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겼고 두려움 좌절 분노가 내 삶을 옭죄고 있었어요. 의사들은 심장 문제로 인해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가 있다’고 말했는데, “피할 수만 있다면 계단을 오르는 것은 생각도 하지 마세요.”라는 경고를 듣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죠. 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내 인생 전체의 공포보다 더 심했어요. 이로 인해 나는 드디어 결심을 해야만 했죠. "내가 여기서 해답을 얻거나, 아니면 스스로 삶을 끝장낼 거야. 심장병 따위에 내 목숨을 맡기진 않겠다구." 그리고 신장 결석 때문에 의사가 처방해준 몰핀이 있으니 그런 일 정도야 간단히 할 수가 있었죠. 해답을 얻고야 말겠다는 그 결심이 나에게 인생과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저에게 가져다 주었어요. 나는 나의 아파트에 홀로 앉아서 그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어요. 나에겐 지금 절박한 문제가 있고 난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해요. 그래서 전 자리에 앉아서는 말했어요. "레스터. 넌 꽤 똑똑한 편이야. 고등학생 때는 우등생이기도 했었잖아? 그리고 대학생 때는 장학금도 받았고 역시 우등생이었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랬더라도 난 바보 바보 바보였어요. 나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는 바보 천치였다구요! 아 이젠 어떡하죠? 과거의 모든 지식 따윈 이젠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그래서 전 그것들을 다 놓아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오케이 좋아. 나는 누구지? 이 세상은 또 뭐지? 이 세상에 대한 나의 관계는 또 뭐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조그마한 행복을 떠올렸고 그게 항상 여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행복이었군." 그러고는 생각을 했어요. "글세, 나는 나를 원하는 사랑스러운 여자들이 넘쳐나지. 하지만 난 아직 비참하다구." 난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행복은 사랑을 받는 게 아닌 거야!!" 나는 그 생각을 다시 음미해보았고 내가 그들을 사랑했을 때 그때 내가 행복했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결론: 나의 행복은 내가 사랑하는 능력과 같다. 그리고는 나는 다른 이들을 사랑하려는 강렬한 시도를 했어요. 나는 나의 과거 행동을 되살펴 보았습니다. 내가 스스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사랑받고자 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알았어요. 예를 들어 나는 여자에게 잘 대해준 것이 ‘그녀로부터 무언가 다른 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레스터. 이런 **자식. 당장 그것을 바로잡으라구." 그리고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습니다. 그녀로부터 무엇을 원해서가 아니라요. 나는 잘못을 바로 잡을 게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바로잡고 또 바로잡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나에게 찾아온 큰 깨우침은 ‘지성intelligence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우리들이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지성이라는 것의 전체적인 그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내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모든 생각이란 조만간 -늦든 빠르든- 물질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기로 했습니다. 그것들을 살펴보면서 내 마음에 최초의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의식할 수 있게 되고 그리고 나서는 그것을 놓아줄 수가 있게 되었어요. 나는 내가 창조한 모든 지옥들을 놓아주었고 그것들을 되돌렸undoing어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평등하게 대하고, 사랑받으려 하기보다는 사랑하려고 하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짐으로써 -나의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바로 잡음으로써-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고 점점 더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지성에 대한 어떤 흥미로운 그림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그건 놀이 공원에 있는 범퍼카들이 계속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었어요. 범퍼카는 제대로 운전하기가 어려워 자꾸만 서로 부딪히죠. 그들은 모두 위에 있는 철사 그물에서 긴 안테나처럼 생긴 막대기를 통해 전기에너지를 받습니다. 그 천장에 있는 전기에너지원은 나와 모든 사람에게 막대기로 연결되어 에너지를 공급하는 보편적 지성과 우주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범퍼카의 페달을 밟는 만큼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지요. 각 운전자는 천장에서부터 그가 원하는 만큼 지성과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멀어서 다른 차들과 부딪히고 또 부딪힙니다. 처음 2달 동안 나는 "행복이 무엇이고 지성과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았고 해답을 찾음에 따라 나의 긴장과 비참함의 무거운 짐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게 되었어요. 첫 번째 통찰은 사랑에 관한 것이었어요. 나의 행복이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는 것이었죠. 이것은 어마어마한 통찰이었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행복의 사슬에 끄트머리를 붙잡게 되었고, 나는 이 사슬의 전체를 보기 전까진 이걸 놓지 않으리라 결심했죠. 그리고 2번째로 나의 총체적인 생각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이것은 나에게 더 큰 자유를 주었답니다. 나는 과거에 내가 결정한 그리고 현재에는 잠재의식에 있는 모든 충동적인 행동들을 되돌려undoing 놓음으로써 나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어요. 3번째 통찰의 국면은 ‘내가 진실로 누구인가?’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이었어요. 나는 우리 모두는 아무런 한계를 가지지 않는 무한한 존재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한계란 과거에 학습되어지고, 현재까지 붙들고 있는 ‘우리 마음속의 관념들’뿐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한계지워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되고, 그 한계들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 3가지 작업을 하면서 나는 점점 더 자유로워졌고, 내 가슴은 점점 더 가벼워져 갔습니다.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고 평화로워졌습니다. 내 마음은 고요해졌어요. 그러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어요. "이게 이렇게도 좋은 것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더 좋은 것일 수 있는지 알아야겠어. 나는 끝까지 한번 가볼 꺼야.." 나는 불행한 삶을 살아왔어요. 그래서 이 멋진 행복감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원했고 끈질기게 파헤쳤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갑작스런 힘이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LA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는 이야기를 했어요. "거실에 지금 3사람이 있군." 이런 식으로 계속 내가 투시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내가 친구를 놀라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말을 끊어버렸어요. 나는 신성한 법칙이 작동하는 것을 보는, 기분 좋은 느낌에 놀랐어요. 매혹적인 것은 그 힘들 자체가 아니라 신성한 법칙이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고 목격하는 것 그 자체였어요. 그렇지만 정말이지 <행위자>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또한 이러한 것들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만약 내가 이런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멈추리란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이 무렵 이 세상은 단지 정신 작용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니 꿈속에서 작용하는 힘들에 대한 관심은, 내가 빠져나오려고 하는 꿈으로 다시 나를 밀어넣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나의 외로운 탐구의 시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알아채고야 말았습니다. 오! 이런, 세상 모든 일들은 단지 내 마음속의 꿈같은 것일 뿐이에요. 마치 밤에 꾸는 꿈처럼 말이죠! 그것도 당신이 밤에 꾸는 꿈보다 더 현실적이지도 않은 꿈 말입니다. 당신이 밤에 꾸는 꿈은 현실일까요? 아니오. 그것은 단지 당신의 마음속에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아침에 꿈에서 깰 때까지는 그게 현실처럼 보이기야 하겠지만요. 새로운 진실은 <나는 있다 I AM>이고 그것이 존재하는 전부라는 겁니다! 나의 존재my beingness는 우주의 변함없는 에센스이고 물론 나는 희열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모든 세상이 완벽하게 보입니다. 내 몸을 바라볼 때 나는 이 몸 또한 완벽의 일부로 봅니다. 이것이 나의 모든 질병들을 바로잡아주었죠. 나의 정신이 더 높이 고양될수록, 내 육신에 에너지가 너무 넘쳐 흘러서 꽤나 빠른 속도로 몇 마일이고 계속 걸어야만 하기도 했어요. 어떤 깨달음들은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이기도 했어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죠. 몇 번이고 나는 새롭고 강렬한 에너지가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걷고 또 걸어야만 했어요. 나는 잠재의식적인 심리적 장애, 경향성, 편견 등등을 되돌리고undoing 있었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자유로워짐을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는 자유로움이 나의 기본적인 천성이 되었습니다. 나는 점점 더욱 자유롭고 또 자유로워져서는 충분할 만큼 정신적인 한계를 벗어버리자undoing 나의 진정한 자아 real Self가 스스로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의 진정한 <자기 I>는 존재 그 자체일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존재는 바로 우주의 존재 그것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우주의 모든 것과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주의 모든 것 안에 들어있는 원자 하나하나와 하나였어요. 당신이 만약 이런 상태에 이른다면 당신은 개인적인 분리감 즉 <에고>의 느낌을 몽땅 다 잃어버리고 말 겁니다. 내가 나 자신이 우주의 존재 그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마치 꿈처럼 나의 상상에 의한 이미지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내가 육체라고 상상하거나 꿈을 꾸었죠.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이 육체라고 꿈꾸고 있어요. 실제로는 말이에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존재 Isness>일 뿐이랍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삼라만상 뒤에 있는 변함없는 진정한 근본이죠. 그리고 당신 또한 그러합니다. 나의 탐구가 시작될 무렵 나는 더 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는 상태였어요. 나는 오랜 세월 온갖 질병들에다가 심장 이상 그리고 깊은 죽음에의 침울함과 비참함에 쩔어있었어요. 그러나 3달 뒤 나는 완전히 반대 극단에 서 있게 되었어요. 나는 너무나 행복했고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어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심과 가벼움으로 말이에요.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나에게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 내 삶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통해서 말이죠.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한계라는 개념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무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받아들인 한계로 인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마치 그게 진짜인 것처럼 말이죠. 왜냐면 그것들은 우리의 타고난 본성인 완전한 자유와는 정반대의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환상이고 정신적인 개념일 뿐이랍니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완전히 서로 다른 2개의 극단입니다. 처음에는 극도의 비참함과 고통이었어요. 이후에 삶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고요함이 되었어요. 삶 그 자체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조화롭게 되어서 매일 매일 모든 날들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답니다. 뉴욕 도심을 차를 몰고 다닐 때 빨간 신호등에 걸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내가 주차를 하려하면 두 세 명의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는 나에게 주차장 방향을 알려주려고 거리로 나오기도 합니다. 택시 운전사들이 내가 주차할 곳을 찾는 걸 보고 자신의 주차 장소를 양보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도 자신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는 겁니다. 주차해 있던 경찰들도 자리를 뜨면서 나에게 주차할 데를 내주더군요.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면서 말이죠. 그러나 난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기분이 좋을 거라는 것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리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나는 항상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가게에 들어갈 때에도 판매원이 가던 길을 멈추고 행복한 마음으로 나에게로 와서 도와줍니다. 식당에서 내가 주문을 해놓고 난 뒤에 마음이 바뀌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가져오더군요. 나의 진동이 그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그들로 하여금 나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그들을 더욱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그들은 기꺼이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죠. 실제로 모든 이들이 당신을 도우러 움직입니다. 당신이 조화 속에 있고 그리고 당신이 어떤 생각을 일으킨다면, 우주의 모든 원자들이 당신의 생각을 충족시키려 움직입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조화 속에 있는 것은 기분 좋고 유쾌한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을 도우러 오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신의 활동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건 정말 대단한 느낌이죠. 상상하기도 힘들 겁니다. 조화 속에 있을 때 당신은 모든 곳에서 신을 만나게 됩니다. 당신은 모든 곳에서 활동하는 신을 만나봅니다. 그런 시간이나 사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신의 활동을 즐기는 거죠. 그의 활동이 바로 궁극적인 것이죠. 우리가 조화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이 극대화되어 극도의 강렬함으로 모두를 사랑하게 되며,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가장 기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2.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을 신뢰합니다. 나는 나 외의 모든 사람들도 내가 발견한 것을 알았으면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게 나에게 일어난 첫 생각이었죠.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이들의 교육 시스템에 이 지식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추진할 생각을 하던 중 어느 날 내가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바랄지도 모르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끼어드는 것이 옳지는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과 부모들의 카르마에 끼어들어 간섭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나는 그 계획을 놓아보내기로 했습니다. 카르마는 보상의 법칙으로 당신이 내보낸 것은 모두 당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죠. 나는 아이들의 삶의 방식에 끼어들어 간섭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그들이 선택한대로 조화를 이루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2번째로 떠오른 생각이 나는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을 증명해보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것이라 생각했죠. 내가 다른 이들에게 모든 것을 증명해 보인다면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이리라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나에게 찾아온 이 모든 새로운 깨우침들을 입증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심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소한 것들이었죠. 그리고 그것들은 아주 빨리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내가 큰 소망들을 얻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유일한 것은 ‘내가 감히 큰 것들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하는 바로 그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죠.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일까?’ 그리곤 말했어요. ‘오호, 캐딜락. 특별히 제작된 차체를 가진 캐딜락!’ 나는 특별히 제작된 차체를 가진 캐딜락을 심상화 했고, 내가 그것을 운전하고 그것이 나의 것이라는 심상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심상을 놓아주었어요. 왜냐하면 그건 틀림없이 나의 것이니까요. 2주쯤 뒤에 알고 지내던 지인이 와서는 말하기를 "이봐 레스터. 내가 당신에게 주려고 정말 멋진 캐딜락을 하나 구입했는데 말이지." 하면서, 그게 어떤 차인지를 설명하는 겁니다. 그 차의 색깔은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그 색깔이었고 모든 게 내가 심상화하면서 본 그대로였어요. "내 친구 중 한명이 그것을 구입했는데 말이지. 특별히 제작된 차체라구. 하지만 그가 왠지 그것을 원하지 않게 되어서 내가 4000달러를 주고는 구입했지."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를 쳐다보았어요. 나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아! 돈 걱정은 하지 말게나. 내가 돈을 내어줄테니깐."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내일까지 제가 대답해 드리면 안 될까요?" 그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어요. 누가 이런 제안에 대답을 하루 있다가 해준다고 하겠어요? 하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아아~ 물론 괜찮아요. 그렇게 해요." 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오래된 차를 처분한 상태였어요. 뉴욕시에서는 그게 귀찮은 골칫거리였어요. 그리고 나는 캐딜락 같은 차를 몰고 다니면서 호사스럽게 지내는 게 별로였어요.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캐딜락을 몰고 다닐 형편이 못되었죠.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고 싶지도 않았구요. 또 이렇게도 생각을 했어요. "그래. 내가 지금 이걸 해낼 수 있다면 언제라도 다시 해낼 수가 있어." 다음날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차를 받기를 거절했어요. 그건 제 친구에게는 너무나 놀라워서 거의 충격적인 일이었죠. 나는 이런 식으로 내가 깨달은 다른 모든 법칙들을 증명해 나갔어요. 나는 처음부터 언젠가는 내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멀리 와 있어서 그러긴 힘들었어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이 책처럼 활짝 펴져 있었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당신이 만약 이러 이러한 것들을 한다면 당신의 문젯거리는 해결될 겁니다." 나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바로 초점을 맞출 수 있었고 그들에게 간단한 한 문장으로 이야기해주곤 했어요. 하지만 그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고 거의 효과가 없었어요. 가끔 나는 어떠한 질문도 받지 않은 문젯거리에 대해 답을 해주곤 했고, 혹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질문을 하면 내 대답은 그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도 했어요. 나는 사람들이 겉으로 말하는 질문보다는 그들이 진정으로 알기를 원하는 것에 대답을 해주었어요. 나중에는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그룹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말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들에 대해 토론하는 그룹들이 있더라구요! 나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결심을 했고 자연스레 연결이 되었어요.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모든 주요한 형이상학적인 그룹들을 공부했어요. 하지만 결국 가장 좋은 언어는 단순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바로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영어였어요. 나는 종종 뉴욕에 있는 스타인웨이 홀에 들러서는 다양한 강의들에 참석을 했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단지 몇 명 뿐이었고 그게 다였어요. 나는 대중적인 선생이 될 타입은 아니었던 것이죠. 나의 가족들에게 있어서 나의 변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내 여동생 도리스는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 위해 전화를 했어요.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오케이 도리스. 저녁 먹으러 가도록 하지. 15분 뒤에 봐."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나선 도리스가 나에게 말 한마디 꺼내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았죠! 나는 종종 여동생과 처남인 내트의 집에 들리곤 했었는데 내트는 가끔 나에게 "레스터, 내 라디오 좀 고쳐줘요. 한때 엔지니어셨었잖아요." 그럼 저는 슬쩍 들여다보고는 이렇게 말하죠. "내트, 여기 튜브가 느슨해졌군." 이렇게 말하고 튜브를 조여주면 그건 작동이 되곤 했어요. 내가 이렇게 6번인가 8번인가 고쳐주고 난 다음에 내트가 알아차리곤 이렇게 말했어요. " 근데 레스터. 좀 이상한 게 있어요. 나의 라디오나 하이파이가 고장 날 때마다 당신은 매번 튜브가 느슨해졌다고 그러고 조이기만 하면 작동이 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나는 말했어요. "내트. 그건 그냥 튜브가 느슨해진 것일 뿐이라구." 나는 그가 내가 한말을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는 그런 이상한 일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거에요. 나는 그저 라디오를 완벽한 것으로 보았고 단지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튜브를 만지작거린 것일 뿐이었죠. 깨달음을 얻은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뭐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했어요. 심지어 나는 백만장자가 되었어요. 나는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내 생각은 "내가 투자할 돈이 하나도 없이 맨하탄에 빌딩을 몇 개나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어요. 빌딩에 투자할 돈이 한 푼도 없었지만, 나는 내가 맨하탄의 그 빌딩들을 다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을 계속 밀고 나갔죠. 내가 구입한 첫 번째 건물은 하나의 단위로 인접해 있는 2개의 10가구가 들어 있는 건물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아주 좋은 가격에 구입했기 때문에 은행이 그 건물을 평가하고 융자를 해준 돈으로 그 빌딩을 구입하고도 천 달러나 남았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2채의 건물과 덤으로 천 달러를 가지게 되었죠. 다음으로 나는 500달러를 보증금으로 내고서는 동부 79번 거리에 있는 18개의 집들을 계약했습니다. 3주 만에 나는 그 집들의 월세 계약을 다 끝내었고 2천 달러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어요. 약 2년 만에 나는 23개의 아파트를 소유하게 되었어요. 그것들을 나는 돈 한 푼도 쓰지 않고 구입을 했고, 필요하다면 나의 변호사가 나에게 돈을 빌려 주었죠. 그리고 그 건물들에게서 나오는 임대 수익은 나의 보증금과 모든 비용들을 다 제하고도 이익이 남을 정도였죠. 내가 하는 모든 계약들은 그것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했어요. 그게 나의 성공의 비결이었죠. 나는 어느 날 은행에 가서는 그들이 팔 수 있는 부동산이 있나 살펴보았어요. 은행이 청산하려고 하는 부동산들이 정말 많이 있더군요. 은행 측에서는 오래된 아파트들을 청산하기를 원했지만 빨리 팔리지는 않았고, 그래서 절반 값에라도 팔려고 했어요. 나는 그 건물들을 보지도 않고서 즉시 매입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3/4가격에 팔았죠. 일들은 정말 아름다울 정도로 알아서 저절로 풀려갔어요. 그래서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이나 하면서 보냈어요. 하루에 많아야 4시간만 일하고서 말이죠. 하루는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이제 이 일에서 빠져나와서는 예수가 했던 것처럼 셔츠 한 장만 입고서 떠나자구. 내가 그냥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가지고서 떠나야겠어."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문 쪽으로 걸어갔어요. 그러다가 생각하기를 "잠깐 레스터, 아직 첫 번째 두 번째 보증금과 이 건물들을 위해서 빌린 대출금들이 남아 있잖아.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을 해야지."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결정이었죠. 나는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겼어야 했었고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신이 돌볼 것이었는데 말이죠. 어쨌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부동산들을 거의 헐값에 팔아치웠어요. 내가 보기에는 정말 쓸모없어 보이는 건물 5개를 제외하고 말이죠. 내가 그 건물들을 산 이유는 그 건물들이 시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아서 몇 개월 내에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에 포함이 될 것이고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였죠. 나는 그 건물들을 중개인들에게 관리하도록 위임하고서는 크라이슬러 차를 새로 뽑아서는 서부로 떠났습니다. 나는 어딘가 조용하고 고립된 장소를 원했고 그 길의 끝에 있는 아리조나주의 세도나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장소였어요. 은거하기에는 완벽한 장소였죠. 거기서 160에이커의 땅을 구입했습니다. 나는 중개인들에게 보증금을 낼 돈이 없었지만 그 땅을 구입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루 이틀 뒤에 수표가 우편으로 도착했고 겨우 돈을 맞출 수 있었어요. 나는 수표가 올 거란 것을 몰랐지만 뉴욕에 있는 부동산에서 온 수표였어요. 어쨌든 그것으로 땅을 구입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시에서 그 다섯 채의 건물을 구입하기를 원한다고 했어요. 거기에서 나온 돈으로 나는 그 땅들을 구입하는데 나머지 돈을 다 치룰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1958년에 뉴욕을 떠난 이후로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신께서 모든 것을 하도록 놓음으로써 생활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내면의 소리에 따라 나의 뉴욕의 아파트에서 셔츠 한 장만 달랑 걸친 채 떠났을 때 뭔가 다른 것이 나에게 다가왔어요. 무언가를 끌어 모으는 것은 확신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면 나는 무언가를 끌어 모을 필요가 없어요. 새들과 동물들이 무언가를 끌어 모을 필요를 느끼던가요? 만약 신께서 그들을 보살펴 주고 있다면 틀림없이 저도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신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한다면 당신은 미래의 안정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유일한 안정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저절로 나에게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답니다. 3. 사랑은 사랑 안에서 피어납니다. 내가 1958년에 아리조나주 세도나에 왔을 때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나는 내 몸을 여기에서 머물게 했고 약 2년간을 엑스터시의 상태에서 지냈습니다. 나는 이 시기 동안 혼자였지만 내면의 이끌림에 따라 가끔은 밖으로 나가곤 했어요. 나는 소규모 그룹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내가 한 말들이 묶여서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The Ultimate Truth Book?이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다른 소규모 그룹들이 동시에 형성되었어요. 나는 거기에 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돌아오곤 했어요. 1년에 절반 정도는 말이죠. 그들은 다시 모였고 새로운 멤버들도 들어왔고 나는 다시 그들과 세션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들이 내 말을 이해하고 흡수하기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었죠. 하지만 일년 전부터는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도저히 선생으로 볼 수가 없었고, 나는 새로운 운동 같은 것을 시작하고 싶은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이리저리 끌었고 나는 그들이 끄는 대로 뭔가를 전해주긴 했죠. 그 세션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녹음을 하기 시작했고 "레스터와 함께 하는 세션들" 이라는 출판물 시리즈가 나왔어요. 내가 세상에 다시 돌아온 것이 나로 하여금 사물들을 다르게 보게 만들었어요. 제가 초창기에 그들 그룹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나는 반대라는 것을 볼 수가 없었어요. 그것은 신이 신과 나누는 대화였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나는 사람들로부터 나에게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이제 나는 사람들이 내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반대할 때면 내가 그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느낍니다. 이제 나는 내가 말해야 하는 것들을 흑과 백으로 표현할 수가 있고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것을 읽든지 그렇지 않든지 하겠죠. 나는 이제 더 이상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건 좋은 일입니다. 나도 그들이 더 나은 세상을 가지는 것에 행복합니다. 그들이 나로부터 나오는 정보들을 사용해서 그런 목적으로 쓰는 것에 나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이러한 지식을 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 내가 보기에는 95%의 사람들이- 단지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궁극’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들이 그들의 삶을 보다 더 풍족하고 편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그들의 성장을 멈춥니다. 그들은 높이 비상하였고 생활은 아주 쉽고 편한 것이 되었고 그걸 유지하는 것으로 끝이죠.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그들이 계속해서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들이 끝까지 추구하지 않는 한 결코 만족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옴짝달싹 못하게 갇혀버리고 말죠. 나는 내가 친밀하게 작업을 같이 했던 LA에 있는 한 그룹을 예를 들 수가 있어요. 그들의 사업은 아주 잘 풀려갔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잘해냈어요.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끔찍한 상태입니다. 사업은 예전 같지가 않고 그들은 두통에 시달리고 좌절해 있어요. 아주 비참해하고 있죠. 세상에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뒷걸음치고 있는 거예요. 만약 그가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면 그는 한계로부터의 자유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한계지워진 것이니까요. 결국 모든 사람은 세상에서 행복이라 불리우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만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끔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되고 다시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되지요. 나의 모든 가르침들은 이제 책으로 묶여서는 "풍요의 코스"라고 불리우는 코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주고자 했던 것을 원했던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옛말에서 인용하자면 "천명 중에 한 사람만이 나를 구할 것이요. 나를 구한 자 천명 중 한 사람만이 나를 찾게 될 것이다." 같은 거죠. 우리는 현재 진리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한 시기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눈먼 나머지 영혼의 길을 물질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차, 더 많은 기계들,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돈 등 물질만을 추구하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의 신은 달러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는 신보다 달러를 더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불행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평화도, 아무런 고요함도 없습니다. 내가 처음 아리조나주의 세도나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저 2년 동안을 혼자서 지냈습니다.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물러나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지고의 상태에 머물렀어요. 아마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유사한 경험은,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자고 나서 너무나 기분이 좋게 깨어나서는 그것을 기억하는 것일 겁니다. 나는 바로 그 상태에 있었어요. 하지만 깨어있었죠. 그것은 깨어있음 그 자체였습니다. 당신이 그런 상태에 있을 때, 당신이 의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당신은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물러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에도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것을 했습니다. 나는 다시 2년 후에 뉴욕과 LA에 있는 소규모 그룹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1962년에 피닉스에 갔었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에서 1970년에 이르기까지 나는 꽤나 활동적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LA에서 보냈죠. 나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었고, 나에게 있어서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보듯이 세상이 비참하고 어렵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일단 지고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쉬운 것인지 깨닫기만 한다면, 세상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겁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초기에, 나는 개인적인 치유에 관련이 되었어요. 하나를 치유하고 나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났죠. 그러다가 차라리 사람들을 가르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적인 치유가 가장 좋습니다. 이것은 즉각적이죠. 만약 당신이 영적인 치유를 하지 못한다면 정신적인 치유를 하면 됩니다. 이것은 매우 빠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2가지를 해낼 수 없다면 그냥 의사를 찾아가세요. 영적인 치유는 완벽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행해집니다. 그것은 단지 당신이 완벽만을 봄으로써 불완전함을 놓아 보내는 것이죠. 정신적인 치유는 당신의 마음을 질병으로부터 떼어 놓고는 당신의 몸을 건강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비쥬얼화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마음으로 아프다는 심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아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1952년에서 1956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치유에 관련되어 있었고, 그것도 개인적인 범위 내에서였어요. 사람들은 즉시로 치유가 되었고 심지어는 전화로도 가능했죠. 한번은 어떤 소녀가 전화를 해서는 "의사들이 말하기를 제가 횡격막이 파열되어서 수술을 받아야만 한데요. 어떡하죠?"하고 말하길래, 나는 그녀의 완벽함을 보고서는 말했어요. "그냥 그것이 완벽한 것으로 보렴. 넌 괜찮을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 애가 말하기를 "예. 바로 그거에요." 그러길래 나는 그애의 받아들임이 완벽한 것임을 알아차렸죠. 그러고 나선 제가 말했어요. "좋아. 이젠 의사에게 가서 확인해보렴." 그녀는 그렇게 하였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물론 의사는 놀랐죠. 나는 이런 치유에서 나 자신에게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어요. 나는 항상 그저 뒤로 물러나 있었죠. 당신은 자신을 힐러로 느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그저 길을 내어줄 뿐이에요. 당신은 비켜서고 신이 모든 걸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항상 자신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라고만 했어요. 대중적인 스승들은 대중들에게 나아가서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과시하진 않아요. 그는 단지 신이 신에게 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는 단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 몇 가지 싸인을 보여준 것에 불과해요. 이러한 모든 치유들은 그저 사람들에게 영적인 깨우침을 주는데 도움이 되는 정도죠. 치유를 위한 치유 그 자체는 도움이 안 됩니다. 항상 치유 이상의 것이어야 해요. 여기에는 패러독스가 있어요. 만약 나 레스터가 어떤 기적을 행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럴 수 없어요. 하지만 내가 만약 레스터로 하여금 비켜서게 하고 신이 행하게 한다면 기적이 일어나죠. 여기서는 <행위자>라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철저하게 신에게 맡기는 것이 기적을 행하게 하는 것이죠. 만약 누군가가 기적을 행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의 지식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해를 해야만 해요. 당신은 당신의 그 조그만 자아를 비켜서게 해야 합니다. 당신은 내려놓아야만 하고, 신에게 맡기면 그것은 즉시 일어날 겁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보곤 해요. "레스터. 당신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나요?" 나는 말합니다. "아니오. 나는 그렇게 못해요." 그게 사실입니다. 나는 나 자신 레스터를 비켜서게 하고서 경험하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나의 에고를 놓음으로써 어떤 일이든 그리고 모든 일이 다 가능해지는 겁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방이 많으니라." 사람들이 육신을 떠나고 이 세상과 비슷한 세상으로 갈 때 그들은 오래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납니다. 이 세상과의 가장 주요한 차이점은 거기서는 모든 것이 즉각적이라는 것이죠.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즉각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보다 훨씬 더 쉽게 말이죠. 이 세상과 비교해 본다면 거의 천국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처럼 쉽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여기 이 세상은 당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가장 큰 곳입니다. 나는 경험으로부터 ‘내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무엇이든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빠르게 실현이 됩니다. 나는 은행에 융자금을 대출 받으러 갈 때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그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 직원은 나에게 끌려 아무런 담보 없이 만 달러를 나에게 내어주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날 때 나는 그 두 사람이 무의식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으면서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미소를 짓곤 합니다. 난 알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마음을 읽고 있답니다. 나는 내가 깨닫기 전에 이런 모든 것들이 헛소리라 생각했어요. 나는 일주일에 7일을 일했어요. 매일 12시간에서 14시간씩이요. 뭔가 내면의 불안감에 쫓겨가면서요. 나는 뭔가 일에 몰두함으로써 마음에서 짐을 덜어내는 기분이었어요. 그게 내가 그토록 죽어라 일을 열심히 한 이유였죠. 나는 내가 땡전 한 푼 없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한다고 변명했지만 사실 핑계거리였어요. 나는 흔히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았어요. 좋은 사람으로 살고, 돈을 많이 벌고, 나의 직업에서는 최고가 되어야만 했죠.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하려고 했어요.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 부유함 저명함 등등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었죠. 그러나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고 마침내는 심장에 이상을 가져왔어요. 당신이 아무리 사회의 룰에 따라 분투하더라도, 심지어는 목표를 성취해낼지라도,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세상에서 마냥 이길 수가 없어요. 나는 극도로 억눌렸고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힘들었어요.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죠. 이것이 결국 나에게 신경증을 가져다 줬어요. 나는 진정으로 돈에 관심을 가지지도 그것을 즐기지도 못했어요. 내가 탐구를 하는 시기 동안 잠이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어요. 우리는 단지 진짜처럼 보이는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잠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원하고, 세상이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기 때문에 하루에 8시간 정도씩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당신이 조화롭고 튜닝이 되어있을 때는 결코 피곤해지지가 않습니다. 피곤함은 단지 정신적인 갈등이 있기 때문이죠. 모든 정신적인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당신은 결코 결코 피곤해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튜닝이 되어있을 때는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당신이 쓸 수가 있어요.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당신이 쓸 수 있도록 거기에 항상 있습니다. 내가 잠을 자지 않던 시기 동안 나는 내가 잠을 자던 때보다 더욱 에너지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생활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시간 다음에는 2시간 그리고 마침내 6시간을 자는데 성공했어요. 나는 1시간을 잘 수도 있고, 6시간을 잘 수도 있지만, 이젠 아무래도 차이가 없습니다. 내가 깨닫기 전에는 나는 의사들과 영양학자들이 하는 말을 믿어서 단백질을 많이 섭취했어요. 아침에는 계란과 큰 스테이크 베이컨 등을 먹었죠. 점심과 저녁에는 항상 고기를 먹었어요. 내가 깨닫고 나자, 나는 동물 가족들이 우리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먹을 수가 있겠어요? 만약 배고픔이 일어나면 나는 그것을 꺼버리고 그것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난 결코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 누구나 조금만 연습하면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당신이 배고픔을 느낄 때 먹지 마세요. 대신에 배고프지 않을 때 음식을 먹으세요. 당신은 그런 식으로 하루 3끼를 먹을 수 있답니다. 이건 단지 육체를 훈련시키는 방법일 뿐이에요. 단지 위장이 당신을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몸을 컨트롤 하는 것이죠. 내가 1952년 깨달음을 얻기 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아름다운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어요. 그리곤 늘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죠. 나는 사랑에 빠지고, 우리 둘은 헤어지고, 나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찢겨 나가는 것 같았어요. 내가 처음으로 아네트와 헤어졌을 때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사궜던 여친- 그것을 극복하는데 5년이 걸렸어요.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어서 나는 그것과 싸우느라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죠. 나는 한때 그 일 때문에 계속 우울했어요. 그리고 나서는 버지니아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죠. 그러다가 우린 또 헤어졌어요. 이번에는 극복하는데 3년밖에 안 걸리더라구요! 내 인생에서 이쁜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어요. 문제는 여자와 사귀면 뭐랄까 자유를 뺏기는 기분이어서 결혼이 나에게 줄 부자유를 내가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거였죠.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친들은 저를 떠나고야 말았어요. 나는 이런 고통들을 겪고 싶지가 않아서 뭔가 대책을 세우기로 결심했고, 연애가 정점을 지나서 내리막길의 조짐이 보일 때 헤어짐에 미리 대비했어요. 하지만 나는 여자애들이 내가 겪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애들에게 차이기로 했죠. 내가 알게 된 것은 여자애들은 남자가 좇아가면 도망을 간다는 거였어요. 반대로 남자가 도망을 가면 여자가 좇아오죠. 여자애들이 슬슬 결혼에 대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이젠 내리막길이 시작된다는 신호였어요. 그래서 나는 헤어지기 전에 미리 작업을 시작했죠. "하니. 어디 있었던 거야?? 빨리 와. 난 자기가 항상 내 옆에 있어주길 바란다구. 다신 그러지마~" 여자애들은 숨 막혀 했고 불편해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들을 더욱 밀어부쳤고 일이 얼마나 환상적으로 진행되어갈지 잘 알고 있었죠. 그리고 난 다른 여자애를 물색했어요. 내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덜기 위해서였죠. 나는 이 고통이 무엇보다도 싫었고, 다른 여자를 찾는 것으로 그것을 덜어내고자 했어요. 하지만 내 연애 생활 끝에 남는 것은 비참함이었어요. 그러나 이런 애정의 열정과 애통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이런 환상에 가라앉아있을지도 모르죠. 약간의 달콤함과 오랜 시간의 고통들 말이에요! 이게 바로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약간의 즐거움과 그 뒤의 고통의 패턴이었던 것이죠. 그 고통은 너무나도 큰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해요. 대부분의 연애 관계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은 대개는 에고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언젠가 뉴욕의 23번가 거리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친구 2명과 앉아 있었어요. 1945년쯤이었나 그랬을 겁니다. 앉아서 파이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조가 말을 했어요. "Gee. 난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어." 내가 말했죠. "조. 무슨 소리야? 저번 주에 그렇고 그랬던 일은 뭐야?" "오 그런 건 카운트에 넣으면 안 되지." "그럼 지지난 주에 그랬던 건 뭐야?" "오~ 그런 건 카운트에 넣으면 안 되지." 그러자 프레드도 한마디 했어요. "Gee. 나도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내가 말했어요. "프레드. 지난 주에 그렇고 그랬던 일은 뭐야?" "오~ 그런 건 카운트에 넣으면 안 되지." 난 그때 갑자기 깨달았어요.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나도 걔들처럼 그렇게 느끼고 있었어요. 난 한 번도 섹스다운 섹스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구요! 내가 말했어요. "우리 모두가 미친 거 아니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리고 나서는 나는 깨달았어요. 우리가 원한 건 ‘사랑’이지 섹스가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사랑이 없다면 "그건 우리가 한 번도 섹스를 안 한 것이라구요." 나는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섹스에 집착하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것을 사랑과 동일시하고는 항상 더욱 더 많은 섹스를 통해서 사랑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거죠. 4. 사랑은 개인적인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랍니다. 당신은 세상과 싸움으로써 자유로워질 수는 없어요. 당신은 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낸시 시내트라가 토크쇼에서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죠.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자유는 개인적인 것이에요. 나는 왜 자유를 위해 싸워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이미 자유를 얻었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거죠. 그녀가 옳습니다. 자유란 당신이 개인적으로 성취하는 상태이죠.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2등 시민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그걸 알지도 못하기도 해요. 여성들이 2등 시민의 위치에 있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여성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바로 잡고 스스로를 모든 면에서 남성들과 대등하다고 실제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남성들의 타고난 성품은 이성적이고 여성들의 타고난 성품은 감성적이죠. 감성이야말로 이성보다 근원의 자아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훨씬 더 근원의 자아에 가까운 것이죠.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업가가 떠오르는군요. 그 양반은 중요한 사업상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의 고객을 집으로 초대해서 와이프에게 보이고 난 후에야 결정을 내렸어요. 그 양반은 경험으로 부인의 느낌이나 직관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자기도 그걸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렇다는 것은 알겠다고 하더군요. 이제 당신도 보다시피 2개의 서로 다른 본성이 있고 이 때문에 가끔 서로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내가 같이 작업한 그룹들 중에 남자들은 항상 질문을 해대요. 그리고 그들은 영리하죠. 하지만 여성들은 거의 말을 하진 않지만 언제나 남자들을 뛰어넘어요. 여성들은 바로 느끼고 바로 경험해요. 여자들이 유리해요. 우리가 수많은 생을 경험하면서 어떤 특정한 시기에 우리는 성sex을 바꿉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마지막 전생에 여자였었지만 지금은 남자로 태어났죠. 내가 남자의 몸을 가졌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여자들에게 끌리지만 지난 생으로부터 많은 여성적인 감정들을 가지고 왔어요. 내가 남자의 생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나의 감정은 더욱 남성적으로 되어가겠죠. 당신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의 동성애 경향homosexuality을 발견할 수 있어요. 우리가 더 많은 경험을 위해서 성sex을 바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죠. 나는 또한 갓난아기가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만약 당신이 갓난아기 시절을 다시 기억할 수 있다면, 심지어는 태어나는 날 엄마 아빠가 누구인지, 의사가 누구인지도 기억해낼 겁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나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고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를 떠올렸어요. 당신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어요. 당신의 관심은 오직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뿐이었죠. 만약 엄마가 젖을 주지 않는다면 그저 엄마가 젖을 줄때까지 우는 거죠. 나의 누나는 생후 6개월 후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나 봐요. 하지만 전 3살까지 말을 안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걱정을 했죠. 그들은 내가 좀 멍청하다고 생각했었나봐요. 하지만 난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소리를 냄으로써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나는 그들이 왜 나를 걱정하는지 궁금해 하곤 했었죠. 오늘날의 교육은 완전히 잘못되었어요. 우리는 무한한 존재에게 암기할 거리나 쑤셔넣고는 창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의 능력을 질식시키고 있어요. 당신은 해바라기에게 아름답게 자라나도록 가르쳐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게 바로 이런 거에요.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내적인 능력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허락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 수가 있죠. 모든 약물들은 독입니다. 약물들이 당신을 육신에게서 밀어내고 당신은 육신의 무거움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죠. 육신에 대한 집착을 놓아줌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의식을 육체 의식 너머로 확장시킬 수가 있습니다.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다른 약물들을 사용하는 것의 해악은 그것들 없이도 당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것들에게 의존하게 된다는거죠. 지고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런 상태이고 우리 자신이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엑스터시를 느끼기 위해 마리화나나 다른 약물들을 사용할수록 우리는 그것들에 더욱 의존하게 되요. 또한 우리가 약물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때 우리는 약물이 주는 한계와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할 수가 있어요. 당신은 우리가 약물 없이도, 스스로 도약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단지 마리화나는 당신이 그것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보게 될 것을 미리 흘낏 보게 해준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할 생각은 없어요. 당신은 단지 마음을 충분히 고요하게 함으로써 그러한 일별보다 더욱 강렬한 비전을 볼 수가 있어요. 점성술에 대한 자료는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축적이 되어 왔어요. 그러므로 그게 꽤나 들어맞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나의 견해로는 그 별들이 나에게 영향을 그렇게 미칠 수 있다면,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는 얼마나 더 영향을 미치겠어요? 그래요. 내가 살고 있는 이 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저기 다른 별들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클 거예요. 또 생각해 보세요. 저기 우주 공간의 흙덩어리들하고 나의 지성을 놓고 볼 때 어느 쪽이 더 똑똑하겠어요? 그 별들은 단지 물질 덩어리들일뿐인데 그것들이 나의 지성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단호하게 아니오!, 라고 말할 겁니다. 이게 점성술에 대한 나의 태도입니다. 비록 지성이란 대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같은 걸로 정의되지만, 난 지성을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 행복을 원합니다. 지성이란 게 ‘사람이,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가지는 능력’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당신은 돌아다닐 때 차를 사용하죠. 하지만 당신은 "나는 차입니다." 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이것처럼 당신의 몸은 가죽 덩어리에 불과해요. 지금 당신은 그것을 타고 다니는 것으로 사용하죠. 만약 당신이 "나는 몸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나는 차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나는 내가 원한다면 보편적 지성을 더더욱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나는 생각과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조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일어난 모든 일 뒤에는 그 사건 이전의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에는 그 둘 사이에 있는 시간이라는 요소 때문에 눈이 가려져 그걸 연결시키지 못했던 거죠. 모든 사건이 그 일이 있기 전에 생각된 것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생각만 잘 붙잡는다면 나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내가 의식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걸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세상이 나를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엄청난 노력과 결국의 실패 그리고 모든 지난 세월이 나의 생각에 의한 거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내가 세상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생각,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세상의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거대한 해방과 자유였지요. 나의 탐구가 시작될 무렵 나의 병은 너무나 위중해서 무덤 속에 이미 한쪽 발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이 모든 일을 일으킨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즉시 나의 몸을 턱에서 발끝까지 온전한 것으로 여기며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즉각 나의 몸이 온전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궤양에 의한 장의 협착과 손상이 해소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나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요. 나는 점점 더 큰 자유를 누렸습니다. 일을 해야 한다, 여자를 얻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충동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라는 느낌, 나의 환경을 나에게 맞도록 조정할 수 있다는 느낌. 이 새로운 자유가 나의 내면을 너무나 강렬하게 깨우쳐주어서 이제 나는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게다가 내가 경험하게 된 새로운 행복은 너무나 컸습니다. 전에는 있으리라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기쁨을 경험했어요. 행복이 그토록 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한 인간이 그토록 행복해 질 수 있을 줄은 몰랐지요. 나는 계속해서 어떻게 이 기쁨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장 원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 결혼하기를 내가 가장 바라지 않았던 친구’가 결혼하여 서로 즐거워하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나에겐 이것이 최대한 확장된 사랑이었어요. 한 친구와 그녀가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그 상상을 계속했어요. 나중에는 나에게 심하게 반대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이것을 시험해보았습니다. 그들이 나를 공격할 때 의식적으로 그들에 대해 가장 큰 사랑을 느끼려 했지요. 그들에 대한 사랑의 기쁨은 너무도 좋았습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그들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아낌없는 감사를 표했고, 그들은 거기에 감동을 받곤 했지요. 사랑하기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을 사랑할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는 감사를 드렸어요. 나는 나의 적들도 사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나는 행복의 끝까지 도달하기까지는 사랑 키우기를 멈추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갔지요. ‘이보다 더 높을 수 없을 거야!’ 하면서도 계속 더 높이 올라갔어요. 결국 난 행복이 무한히 커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죠. 나는 더 이상 꼼짝도 할 수 없게 되기도 했어요. 너무나 큰 기쁨과 황홀함에 가득 차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이런 상태가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어요.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 나중에는 몸을 다시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아래로 내려오는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성과 에너지의 근원에 대해 깊이 명상하면서 그것은 무한한 양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을 단지 모든 충동과 억압, 집착,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때 찾아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에너지의 유입을 댐으로 막고 있었던 겁니다. 댐은 바로 나의 충동과 두려움이죠. 내가 할 일은 오로지 그 댐의 통나무를 느슨하게 열어주는 것뿐입니다. 그게 바로 내가 했던 일이지요. 마치 댐에서 통나무들을 하나 하나 치워내면 물이 흐르듯이 내가 이런 것들을 제거하자 무한한 에너지가 흘러 들어온 겁니다. 통나무를 더 많이 치우면 치울수록 흐름은 더 커지겠지요? 우리가 할 일은 이 통나무들을 치워내서 무한한 힘이 흐르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알고 나자 나의 마음 바로 뒤편에 있던 힘이, 전에는 한번도 흐른 적이 없었던 것처럼 흘러들기 시작했지요. 나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은 때로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 주었고, 난 의자에서 공중으로 튀어 오르곤 했어요. 그럴 때면 나는 곧바로 현관 밖으로 걸어나가 걷고 또 걷기 시작했죠. 어쩔 땐 몇 시간씩 또 어쩔 땐 며칠씩 계속 걸었어요. 나의 몸은 그 많은 에너지를 다 담고 있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걷거나 뛰면서 에너지를 일부분 배출해야만 했죠. 이른 아침 뉴욕의 거리를 쉬지 않고 걷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주 빠른 속도로 걷기만 했어요. 그렇게 걷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그 에너지는 너무나 거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를 써버려야 했던 겁니다. 나는 이 모든 에너지와 지성의 근원이 근본적으로 조화로운 것이고 그 조화야말로 우주의 법칙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조화 때문에 행성들이 충돌하지 않는 거고, 매일 태양이 솟아오르며 모든 것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겠죠. 나는 절대적인 물질주의자였죠. 만질 수 있는 것이 유일한 실재라고 믿었어요. 나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했습니다. 그런데 물질은 지성이 없고, 우리의 지성이 모든 물질을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자 나의 단단했던 물질주의적 기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요. 그 견고했던 기반은 단지 나의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20년간 쌓아온 토대가 부서지기 시작했던 거죠. 그러자 나의 몸이 흔들렸습니다. 아주 심하게 말입니다. 여러 날을 흔들리기만 했죠. 꼭 신경쇠약에 걸린 늙은이처럼 몸을 흔들어댔어요. 내가 지녀왔던 세상에 대한 견고한 시각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편하고 우아하게 떨어져나가지 않았던 겁니다. 며칠 동안 정말로 몸을 흔들어댔어요. 내 생각에 모든 게 다 풀어헤쳐진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 뒤에는 몇 달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되는 관점을 갖게 되었어요. 진정으로 견고한 것은 물질계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훨씬 더 위대한 무엇이라는 거죠. 나의 진정한 본질 존재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그것은 한계가 없고 영원합니다. 이제껏 내가 보아왔던 나는, 나의 전부가 아니고 최소한의 나였던 거죠. 전부의 나는 존재 그 자체입니다. 그렇게 알아차리자 나는 존재 그 자체가 되어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제한적인 육체가 아닌데 그렇다고 생각했었군! 나는 한계를 지닌 이 마음이 아닌데 그렇다고 생각했었어!’ ‘나는 그게 아니야! 이제 다 끝났어! 바로 그거야!’라고 말하면서 나는 모든 몸의 제약과 거의 모든 마음의 한계를 풀어버렸습니다. 정말 그렇게 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몸과의 동일시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나의 존재는 즉 모든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전존재는 하나의 거대한 대양과 같습니다. 그것은 물방울과 같은 낱낱의 몸으로 쪼개져 들어가는 게 아니죠. 모두 하나의 대양일 뿐입니다. 이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모든 존재 모든 사람 심지어 이 우주의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게 했어요. 그러고 나면 분리와 분리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세상의 한계들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되죠. 당신은 세상을 꿈으로 보게 됩니다. 당신의 존재는 한계가 없음을 알게 되니까요. 사실은 유일한 실재는 존재뿐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진실하고 변함없는 무엇입니다. 이 깨달음 이전과 이후의 나의 삶은 양극단이었죠. 전에는 극도의 우울함, 비참함과 아픔이었는데 이후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행복과 평온함으로 바뀌었어요. 내 인생은 너무도 조화롭고 아름다워서 하루 종일 매일 매일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 속에 있습니다. (그는 3개월 만에 완벽한 건강을 얻었으며 그 후로도 40년 이상을 건강하게 살았다. 게다가 그의 삶은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좋아졌다. 그는 그가 발견한 행복의 원리를 경제생활에 적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 후로는 강연과 명상법 개발을 통해 다른 이들이 마음의 신비를 풀고 풍요를 누리는 것을 돕는데 여생을 바쳤다.) 5. 사랑으로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원자atom>라는 단어의 정의는 더 이상 쪼개어질 수 없는 최소의 단위입니다. 1952년까지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원자와 원자에 대한 최신의 이론을 따라왔어요. <원자>는 원래 이 우주를 이루는 기본적인 입자로 생각되어져 왔지만, 이젠 그 안에 30개가 넘는 입자가 있다는 게 알려졌어요. 이젠 원자를 만물의 공통된 입자로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자연 현상에 대한 모든 총체적인 지식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될 거에요. 우리는 중력, 자기장, 전기, 빛, 혹은 열이 무언지 알지 못해요. 과학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발전해왔어요. 왜냐하면 오늘날의 과학은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존재의 과학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세상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파괴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는 물질을 파괴함으로써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물질을 계속 파괴해 나간다면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할 거예요. 이게 오늘날 우리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보상의 법칙이죠. 우리는 대기를 오염시키고, 물을 오염시키고, 식품들을 오염시키고 있어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이젠 우리가 인간과 그의 존재를 연구할 때입니다. ‘다른 모든 과학들을 바로 잡아주는 과학’이야말로 모든 과학들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곧 머지않아 우리는 자연의 과학을 이해하고 원자를 이해해야 하고 그리하면 우리는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원자를 이용할 수가 있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파괴와 증오를 놓아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자연과 자연법칙의 단순함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맑아질 겁니다. 그건 우리의 물리학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처럼 복잡하지가 않아요. 자연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존재합니다. 우리는 자연과 싸우거나 짓뭉개거나 파괴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존재의 과학’은 모든 다른 과학들이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줄 겁니다. 만약 우리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우리 자신과 조화를 이룬다면, 증오하기보다 사랑을 한다면, 자연은 우리를 기꺼이 충족시켜주고 우리를 풍족하게 해주어서 모든 이들이 풍요로울 뿐 아니라 지극히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양면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만약 플러스가 있다면 마이너스가 있죠. 뜨거움이 있으면 차가움이 있고, 중력이 있다면 반중력이 있습니다. 오직 중력을 이해할 때만 우리는 반중력을 이해하는 열쇠를 갖게 될 겁니다. 바로 그때에서야 우리는 이 지구를 떠나서 우주를 여행하게 될 거예요. 우리는 우주의 자기장을 따라 여행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오늘날처럼 인간들이 파괴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한 자연은 우리를 이 행성에 묶어둘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행성으로 가서 그들을 정복할 테니까요. 우리가 더욱 많이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더욱 고요해진다면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볼 수가 있어요. 그리하면 우리는 중력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지구를 쉽게 떠날 수가 있게 되죠. 우리는 원자로부터, 어떻게 하면 파괴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무한한 자유 에너지를 얻게 되는지를 알게 될 겁니다. 전에 말한 것처럼 우리는 원자를 파괴함으로써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되돌려서 건설적인 방식으로 연구를 해야 해요. 그리하면 우리는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저 밖의 우주를 살펴봐야 해요.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원자를 배워야 하고, 원자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안다면 무한한 힘의 비밀을 알게 될 겁니다. 우리의 물질적 우주의 원자는 광자photon particle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이죠. 빛의 입자가 우리의 망막에 부딪히고 빛으로 인식이 됩니다. 똑같은 입자가 중력과 자기장을 만들고 또한 원자의 에너지 층을 구성하고 있어요. 물질은 한 점에 멈추어 있는 듯이 보이는 에너지에 불과해요.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죠. 여기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 잔에는 멈춘 듯이 보이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 덩어리가 있어요. 커피 잔이 움직이면 그것들은 에너지가 됩니다. 당신이 만약 이 잔을 친다면 알다시피 당신에게도 에너지가 돌진해 오죠. 이렇게 간단한 겁니다. 고차원의 관점에서 보자면 물질은 얼어붙은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또한 마음의 움직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들은 ‘마음의 작용’이죠. 모든 우주가 단지 마음의 움직임일 뿐입니다. 모든 것들이 단지 우리 마음속의 이미지일 뿐이에요! 이걸 잠드는 것으로 설명해봅시다. 당신의 마음이 잠에 들었을 때 이 세상은 어디에 있나요? 만약 당신이 깨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마음을 제외하고 도대체 어디에 이 세상이 있나요? 당신의 마음을 영원히 치워버린다면 다시는 이 세상이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자신의 하나임 your oneness을 보게 될 때 - 당신이 당신의 진정한 자아 real Self를 보게 될 때, 당신은 이 모든 우주를 당신의 마음속의 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밤에 자면서 꿈꾸는 것과 똑같이요. 당신은 당신만의 꿈을 상상해냅니다. 그 안의 등장 인물들, 행동들, 사람들 사이의 관계 등등. 당신이 밤에 꾸는 꿈에서 깨어나서, ‘깨어있음의 꿈’을 꾸는 동안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모두가 당신이 만들어낸 꿈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 "오! 이런 세상에~ 모두가 다 꿈일 뿐이었어." 그리고 당신은 이 환상의 끝에서 웃게 될 거에요. 만약 당신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죠. 실재 real의 정의는 이런 것입니다. 결코 변함이 없는 게 실재입니다. 실재는 변할 수가 없어요. 그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 진실은 결코 변하지가 않습니다. 언제나 진실합니다. 이 세상의 실재는 세상 뒤에 있는 <존재beingness>입니다. 당신이 깨어났을 때 이 세상이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세상에 대한 당신의 앎은 완전히 변해버립니다. 세상을 당신의 통제를 벗어난 당신과 분리된 것으로 보는 대신에, 당신은 세상이 단지 당신의 <존재beingness>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모든 것들을 이미지로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젠 당신은 세상을 한낱 꿈으로 보게 될 거에요. 이전에는 그토록 진짜 같았었는데 말이죠. 이것이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의 유일한 차이점이에요. 당신이 자신의 진정한 자아 real Self(God)를 알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완전히 충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은 완전히 만족하고 혹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어요.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오아시스를 찾고자 하는 갈증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신 I-that-I-am을 찾고자 한다면 바로 마음 뒷편을 살펴보세요. 마음은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무한한 것을 품고 있을 수가 없답니다. 당신의 마음이 충분히 고요해져서 당신이 마음의 소음을 꿰뚫고서 볼 수 있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인 진정한 <나 I>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더 고요히 할수록 당신은 더 성공할 수가 있어요. 당신은 완벽한 성공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은 오로지 창조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실제로 현현됩니다. 마음은 이미지로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신발'을 생각한다면 나는 단어가 아니라 신발의 이미지를 생각을 하죠. 마음은 <안 돼 not>와 <하지 마 don't> 라는 단어를 심상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하지 마 don't> 라고 생각하는 한 당신은 마음속에 원하지 않는 것의 그림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래서 당신은 원치 않는 것을 창조하게 됩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시계 챙기는 것을 잊지 말라구, 레스터.”라고 말하면 나는 시계를 잊어버리죠. 내가 만약 "차를 흘리지 마."라고 말하면 차를 흘리게 되요. 이건 참 기묘한 일이죠. 내가 탐구 이후에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부정적인 단어들이었어요. 처음에는 나의 사전에 부정적인 단어가 없었죠.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는지 놀랄 겁니다. 확인해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하실 겁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자연스러워요. 그래서 내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했을 때 나는 <하지 마 don't>를 배워야만 했어요. 이제는 제법 익숙한 습관이 되었어요. 이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마음은 오로지 창조만 한다는 것을.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을 한다면 If you ‘don't’ something, 당신은 무언가 원치 않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은 그것을 창조해냅니다. 당신도 이제 알다시피 <하지 마 don't>는 마음속의 그림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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