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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궁극의 자유를 위한 열쇠, 레스터 레븐슨

by 법천선생 2014. 9. 15.

 

나는 의사에게서 더 이상 나를 쥐어짜며 살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이제부터는 제 2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상태였거든요. 사실 이 말이 나를 죽을 만치 겁나게 만들었다구요! 며칠이 지난 뒤 전 자신에게 말했죠. " 어쨌거나 난 아직 살아 있다구. 이따위 쓸모없는 두려움일랑은 집어 던져 버리고, 대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구." 나는 내가 답을 얻거나 아니면 지상에서의 삶을 떠나리라 결심했어요. 관상동맥 혈전증 따위에게 내 인생을 맡기지는 않을 거라구요. 의사들은 신장 결석으로 고통을 받을 때면 몰핀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주기까지 했죠. 내가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의사들에게 경고를 받은 후에 한 일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 그것도 100%의 단절이었어요. 예전에는 전 뉴욕에서 생활할 때 예술 오페라 재즈 발레 극장 등등을 즐기는 매우 사교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어요. 나 자신으로부터의 회피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죠. 그러나 3개월 동안 나는 모든 사회 활동을 멈추었고, 데이트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주말에 여동생들과 그 가족들을 방문하던 것조차 그만 두었어요. 전화기도 집어 던져 버렸죠. 정말로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이었고, 뉴욕 시내 한가운데서 전 혼자 고립되었어요. 새벽 2시와 5시 사이에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게 전부였고, 그 시간이면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죠. 맨하탄에서는 가게들이 밤새 문을 열고 있었지만 식료품 가게 주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완전히 세상에서 떨어진 채 혼자 대답을 찾기 위해 죽어라 골몰하고 있었어요. 나는 지난 40년간을 대부분 불행하게 보냈어요.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친구들은 아마 저에게 이렇게 말하겠죠? "Gee 이런 레스터 넌 모든 걸 가진 사람이잖아!" 하지만 전 제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에겐 좋은 가족들과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가 있죠. 훌륭한 교육도 받았구요. 전 센트럴 파크 남부 116번지 펜트 하우스에서 살았어요. 친구들도 무지하게 많았구요. 하지만 제 생활은 불행했고 병들어 있었답니다. 나는 20년 동안 건초열에 시달렸고, 15년 동안 각종 궤양들과 천공된 궤양들에 시달렸고, 간은 비대해졌고 신장 결석까지 있었어요. 1년에 두 번 정도는 황달에 시달렸어요. 편두통도 있었죠. 그러다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겼고 두려움 좌절 분노가 내 삶을 옭죄고 있었어요. 의사들은 심장 문제로 인해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가 있다’고 말했는데, “피할 수만 있다면 계단을 오르는 것은 생각도 하지 마세요.”라는 경고를 듣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죠. 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내 인생 전체의 공포보다 더 심했어요. 이로 인해 나는 드디어 결심을 해야만 했죠. "내가 여기서 해답을 얻거나, 아니면 스스로 삶을 끝장낼 거야. 심장병 따위에 내 목숨을 맡기진 않겠다구." 그리고 신장 결석 때문에 의사가 처방해준 몰핀이 있으니 그런 일 정도야 간단히 할 수가 있었죠. 해답을 얻고야 말겠다는 그 결심이 나에게 인생과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저에게 가져다 주었어요. 나는 나의 아파트에 홀로 앉아서 그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어요. 나에겐 지금 절박한 문제가 있고 난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해요. 그래서 전 자리에 앉아서는 말했어요. "레스터. 넌 꽤 똑똑한 편이야. 고등학생 때는 우등생이기도 했었잖아? 그리고 대학생 때는 장학금도 받았고 역시 우등생이었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랬더라도 난 바보 바보 바보였어요. 나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는 바보 천치였다구요! 아 이젠 어떡하죠? 과거의 모든 지식 따윈 이젠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그래서 전 그것들을 다 놓아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오케이 좋아. 나는 누구지? 이 세상은 또 뭐지? 이 세상에 대한 나의 관계는 또 뭐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조그마한 행복을 떠올렸고 그게 항상 여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행복이었군." 그러고는 생각을 했어요. "글세, 나는 나를 원하는 사랑스러운 여자들이 넘쳐나지. 하지만 난 아직 비참하다구." 난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행복은 사랑을 받는 게 아닌 거야!!" 나는 그 생각을 다시 음미해보았고 내가 그들을 사랑했을 때 그때 내가 행복했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결론: 나의 행복은 내가 사랑하는 능력과 같다. 그리고는 나는 다른 이들을 사랑하려는 강렬한 시도를 했어요. 나는 나의 과거 행동을 되살펴 보았습니다. 내가 스스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사랑받고자 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알았어요. 예를 들어 나는 여자에게 잘 대해준 것이 ‘그녀로부터 무언가 다른 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레스터. 이런 **자식. 당장 그것을 바로잡으라구." 그리고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습니다. 그녀로부터 무엇을 원해서가 아니라요. 나는 잘못을 바로 잡을 게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바로잡고 또 바로잡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나에게 찾아온 큰 깨우침은 ‘지성intelligence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우리들이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지성이라는 것의 전체적인 그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내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모든 생각이란 조만간 -늦든 빠르든- 물질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기로 했습니다. 그것들을 살펴보면서 내 마음에 최초의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의식할 수 있게 되고 그리고 나서는 그것을 놓아줄 수가 있게 되었어요. 나는 내가 창조한 모든 지옥들을 놓아주었고 그것들을 되돌렸undoing어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평등하게 대하고, 사랑받으려 하기보다는 사랑하려고 하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짐으로써 -나의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바로 잡음으로써-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고 점점 더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지성에 대한 어떤 흥미로운 그림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그건 놀이 공원에 있는 범퍼카들이 계속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었어요. 범퍼카는 제대로 운전하기가 어려워 자꾸만 서로 부딪히죠. 그들은 모두 위에 있는 철사 그물에서 긴 안테나처럼 생긴 막대기를 통해 전기에너지를 받습니다. 그 천장에 있는 전기에너지원은 나와 모든 사람에게 막대기로 연결되어 에너지를 공급하는 보편적 지성과 우주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범퍼카의 페달을 밟는 만큼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지요. 각 운전자는 천장에서부터 그가 원하는 만큼 지성과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멀어서 다른 차들과 부딪히고 또 부딪힙니다. 처음 2달 동안 나는 "행복이 무엇이고 지성과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았고 해답을 찾음에 따라 나의 긴장과 비참함의 무거운 짐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게 되었어요. 첫 번째 통찰은 사랑에 관한 것이었어요. 나의 행복이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는 것이었죠. 이것은 어마어마한 통찰이었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행복의 사슬에 끄트머리를 붙잡게 되었고, 나는 이 사슬의 전체를 보기 전까진 이걸 놓지 않으리라 결심했죠. 그리고 2번째로 나의 총체적인 생각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이것은 나에게 더 큰 자유를 주었답니다. 나는 과거에 내가 결정한 그리고 현재에는 잠재의식에 있는 모든 충동적인 행동들을 되돌려undoing 놓음으로써 나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어요. 3번째 통찰의 국면은 ‘내가 진실로 누구인가?’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이었어요. 나는 우리 모두는 아무런 한계를 가지지 않는 무한한 존재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한계란 과거에 학습되어지고, 현재까지 붙들고 있는 ‘우리 마음속의 관념들’뿐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한계지워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되고, 그 한계들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 3가지 작업을 하면서 나는 점점 더 자유로워졌고, 내 가슴은 점점 더 가벼워져 갔습니다.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고 평화로워졌습니다. 내 마음은 고요해졌어요. 그러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어요. "이게 이렇게도 좋은 것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더 좋은 것일 수 있는지 알아야겠어. 나는 끝까지 한번 가볼 꺼야.." 나는 불행한 삶을 살아왔어요. 그래서 이 멋진 행복감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원했고 끈질기게 파헤쳤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갑작스런 힘이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LA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는 이야기를 했어요. "거실에 지금 3사람이 있군." 이런 식으로 계속 내가 투시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내가 친구를 놀라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말을 끊어버렸어요. 나는 신성한 법칙이 작동하는 것을 보는, 기분 좋은 느낌에 놀랐어요. 매혹적인 것은 그 힘들 자체가 아니라 신성한 법칙이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고 목격하는 것 그 자체였어요. 그렇지만 정말이지 <행위자>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또한 이러한 것들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만약 내가 이런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멈추리란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이 무렵 이 세상은 단지 정신 작용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니 꿈속에서 작용하는 힘들에 대한 관심은, 내가 빠져나오려고 하는 꿈으로 다시 나를 밀어넣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나의 외로운 탐구의 시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알아채고야 말았습니다. 오! 이런, 세상 모든 일들은 단지 내 마음속의 꿈같은 것일 뿐이에요. 마치 밤에 꾸는 꿈처럼 말이죠! 그것도 당신이 밤에 꾸는 꿈보다 더 현실적이지도 않은 꿈 말입니다. 당신이 밤에 꾸는 꿈은 현실일까요? 아니오. 그것은 단지 당신의 마음속에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아침에 꿈에서 깰 때까지는 그게 현실처럼 보이기야 하겠지만요. 새로운 진실은 <나는 있다 I AM>이고 그것이 존재하는 전부라는 겁니다! 나의 존재my beingness는 우주의 변함없는 에센스이고 물론 나는 희열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모든 세상이 완벽하게 보입니다. 내 몸을 바라볼 때 나는 이 몸 또한 완벽의 일부로 봅니다. 이것이 나의 모든 질병들을 바로잡아주었죠. 나의 정신이 더 높이 고양될수록, 내 육신에 에너지가 너무 넘쳐 흘러서 꽤나 빠른 속도로 몇 마일이고 계속 걸어야만 하기도 했어요. 어떤 깨달음들은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이기도 했어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죠. 몇 번이고 나는 새롭고 강렬한 에너지가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걷고 또 걸어야만 했어요. 나는 잠재의식적인 심리적 장애, 경향성, 편견 등등을 되돌리고undoing 있었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자유로워짐을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는 자유로움이 나의 기본적인 천성이 되었습니다. 나는 점점 더욱 자유롭고 또 자유로워져서는 충분할 만큼 정신적인 한계를 벗어버리자undoing 나의 진정한 자아 real Self가 스스로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의 진정한 <자기 I>는 존재 그 자체일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존재는 바로 우주의 존재 그것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우주의 모든 것과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주의 모든 것 안에 들어있는 원자 하나하나와 하나였어요. 당신이 만약 이런 상태에 이른다면 당신은 개인적인 분리감 즉 <에고>의 느낌을 몽땅 다 잃어버리고 말 겁니다. 내가 나 자신이 우주의 존재 그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마치 꿈처럼 나의 상상에 의한 이미지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내가 육체라고 상상하거나 꿈을 꾸었죠.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이 육체라고 꿈꾸고 있어요. 실제로는 말이에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존재 Isness>일 뿐이랍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삼라만상 뒤에 있는 변함없는 진정한 근본이죠. 그리고 당신 또한 그러합니다. 나의 탐구가 시작될 무렵 나는 더 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는 상태였어요. 나는 오랜 세월 온갖 질병들에다가 심장 이상 그리고 깊은 죽음에의 침울함과 비참함에 쩔어있었어요. 그러나 3달 뒤 나는 완전히 반대 극단에 서 있게 되었어요. 나는 너무나 행복했고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어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심과 가벼움으로 말이에요.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나에게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 내 삶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통해서 말이죠.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한계라는 개념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무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받아들인 한계로 인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마치 그게 진짜인 것처럼 말이죠. 왜냐면 그것들은 우리의 타고난 본성인 완전한 자유와는 정반대의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환상이고 정신적인 개념일 뿐이랍니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완전히 서로 다른 2개의 극단입니다. 처음에는 극도의 비참함과 고통이었어요. 이후에 삶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고요함이 되었어요. 삶 그 자체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조화롭게 되어서 매일 매일 모든 날들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답니다. 뉴욕 도심을 차를 몰고 다닐 때 빨간 신호등에 걸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내가 주차를 하려하면 두 세 명의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는 나에게 주차장 방향을 알려주려고 거리로 나오기도 합니다. 택시 운전사들이 내가 주차할 곳을 찾는 걸 보고 자신의 주차 장소를 양보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도 자신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는 겁니다. 주차해 있던 경찰들도 자리를 뜨면서 나에게 주차할 데를 내주더군요.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면서 말이죠. 그러나 난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기분이 좋을 거라는 것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리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나는 항상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가게에 들어갈 때에도 판매원이 가던 길을 멈추고 행복한 마음으로 나에게로 와서 도와줍니다. 식당에서 내가 주문을 해놓고 난 뒤에 마음이 바뀌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가져오더군요. 나의 진동이 그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그들로 하여금 나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그들을 더욱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그들은 기꺼이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죠. 실제로 모든 이들이 당신을 도우러 움직입니다. 당신이 조화 속에 있고 그리고 당신이 어떤 생각을 일으킨다면, 우주의 모든 원자들이 당신의 생각을 충족시키려 움직입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조화 속에 있는 것은 기분 좋고 유쾌한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을 도우러 오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신의 활동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건 정말 대단한 느낌이죠. 상상하기도 힘들 겁니다. 조화 속에 있을 때 당신은 모든 곳에서 신을 만나게 됩니다. 당신은 모든 곳에서 활동하는 신을 만나봅니다. 그런 시간이나 사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신의 활동을 즐기는 거죠. 그의 활동이 바로 궁극적인 것이죠. 우리가 조화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이 극대화되어 극도의 강렬함으로 모두를 사랑하게 되며,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가장 기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2.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을 신뢰합니다. 나는 나 외의 모든 사람들도 내가 발견한 것을 알았으면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게 나에게 일어난 첫 생각이었죠.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이들의 교육 시스템에 이 지식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추진할 생각을 하던 중 어느 날 내가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바랄지도 모르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끼어드는 것이 옳지는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과 부모들의 카르마에 끼어들어 간섭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나는 그 계획을 놓아보내기로 했습니다. 카르마는 보상의 법칙으로 당신이 내보낸 것은 모두 당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죠. 나는 아이들의 삶의 방식에 끼어들어 간섭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그들이 선택한대로 조화를 이루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2번째로 떠오른 생각이 나는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을 증명해보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것이라 생각했죠. 내가 다른 이들에게 모든 것을 증명해 보인다면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이리라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나에게 찾아온 이 모든 새로운 깨우침들을 입증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심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소한 것들이었죠. 그리고 그것들은 아주 빨리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내가 큰 소망들을 얻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유일한 것은 ‘내가 감히 큰 것들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하는 바로 그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죠.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일까?’ 그리곤 말했어요. ‘오호, 캐딜락. 특별히 제작된 차체를 가진 캐딜락!’ 나는 특별히 제작된 차체를 가진 캐딜락을 심상화 했고, 내가 그것을 운전하고 그것이 나의 것이라는 심상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심상을 놓아주었어요. 왜냐하면 그건 틀림없이 나의 것이니까요. 2주쯤 뒤에 알고 지내던 지인이 와서는 말하기를 "이봐 레스터. 내가 당신에게 주려고 정말 멋진 캐딜락을 하나 구입했는데 말이지." 하면서, 그게 어떤 차인지를 설명하는 겁니다. 그 차의 색깔은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그 색깔이었고 모든 게 내가 심상화하면서 본 그대로였어요. "내 친구 중 한명이 그것을 구입했는데 말이지. 특별히 제작된 차체라구. 하지만 그가 왠지 그것을 원하지 않게 되어서 내가 4000달러를 주고는 구입했지."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를 쳐다보았어요. 나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아! 돈 걱정은 하지 말게나. 내가 돈을 내어줄테니깐."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내일까지 제가 대답해 드리면 안 될까요?" 그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어요. 누가 이런 제안에 대답을 하루 있다가 해준다고 하겠어요? 하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아아~ 물론 괜찮아요. 그렇게 해요." 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오래된 차를 처분한 상태였어요. 뉴욕시에서는 그게 귀찮은 골칫거리였어요. 그리고 나는 캐딜락 같은 차를 몰고 다니면서 호사스럽게 지내는 게 별로였어요.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캐딜락을 몰고 다닐 형편이 못되었죠.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고 싶지도 않았구요. 또 이렇게도 생각을 했어요. "그래. 내가 지금 이걸 해낼 수 있다면 언제라도 다시 해낼 수가 있어." 다음날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차를 받기를 거절했어요. 그건 제 친구에게는 너무나 놀라워서 거의 충격적인 일이었죠. 나는 이런 식으로 내가 깨달은 다른 모든 법칙들을 증명해 나갔어요. 나는 처음부터 언젠가는 내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멀리 와 있어서 그러긴 힘들었어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이 책처럼 활짝 펴져 있었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당신이 만약 이러 이러한 것들을 한다면 당신의 문젯거리는 해결될 겁니다." 나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바로 초점을 맞출 수 있었고 그들에게 간단한 한 문장으로 이야기해주곤 했어요. 하지만 그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고 거의 효과가 없었어요. 가끔 나는 어떠한 질문도 받지 않은 문젯거리에 대해 답을 해주곤 했고, 혹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질문을 하면 내 대답은 그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도 했어요. 나는 사람들이 겉으로 말하는 질문보다는 그들이 진정으로 알기를 원하는 것에 대답을 해주었어요. 나중에는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그룹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말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들에 대해 토론하는 그룹들이 있더라구요! 나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결심을 했고 자연스레 연결이 되었어요.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모든 주요한 형이상학적인 그룹들을 공부했어요. 하지만 결국 가장 좋은 언어는 단순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바로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영어였어요. 나는 종종 뉴욕에 있는 스타인웨이 홀에 들러서는 다양한 강의들에 참석을 했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단지 몇 명 뿐이었고 그게 다였어요. 나는 대중적인 선생이 될 타입은 아니었던 것이죠. 나의 가족들에게 있어서 나의 변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내 여동생 도리스는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 위해 전화를 했어요.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오케이 도리스. 저녁 먹으러 가도록 하지. 15분 뒤에 봐."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나선 도리스가 나에게 말 한마디 꺼내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았죠! 나는 종종 여동생과 처남인 내트의 집에 들리곤 했었는데 내트는 가끔 나에게 "레스터, 내 라디오 좀 고쳐줘요. 한때 엔지니어셨었잖아요." 그럼 저는 슬쩍 들여다보고는 이렇게 말하죠. "내트, 여기 튜브가 느슨해졌군." 이렇게 말하고 튜브를 조여주면 그건 작동이 되곤 했어요. 내가 이렇게 6번인가 8번인가 고쳐주고 난 다음에 내트가 알아차리곤 이렇게 말했어요. " 근데 레스터. 좀 이상한 게 있어요. 나의 라디오나 하이파이가 고장 날 때마다 당신은 매번 튜브가 느슨해졌다고 그러고 조이기만 하면 작동이 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나는 말했어요. "내트. 그건 그냥 튜브가 느슨해진 것일 뿐이라구." 나는 그가 내가 한말을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는 그런 이상한 일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거에요. 나는 그저 라디오를 완벽한 것으로 보았고 단지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튜브를 만지작거린 것일 뿐이었죠. 깨달음을 얻은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뭐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했어요. 심지어 나는 백만장자가 되었어요. 나는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내 생각은 "내가 투자할 돈이 하나도 없이 맨하탄에 빌딩을 몇 개나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어요. 빌딩에 투자할 돈이 한 푼도 없었지만, 나는 내가 맨하탄의 그 빌딩들을 다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을 계속 밀고 나갔죠. 내가 구입한 첫 번째 건물은 하나의 단위로 인접해 있는 2개의 10가구가 들어 있는 건물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아주 좋은 가격에 구입했기 때문에 은행이 그 건물을 평가하고 융자를 해준 돈으로 그 빌딩을 구입하고도 천 달러나 남았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2채의 건물과 덤으로 천 달러를 가지게 되었죠. 다음으로 나는 500달러를 보증금으로 내고서는 동부 79번 거리에 있는 18개의 집들을 계약했습니다. 3주 만에 나는 그 집들의 월세 계약을 다 끝내었고 2천 달러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어요. 약 2년 만에 나는 23개의 아파트를 소유하게 되었어요. 그것들을 나는 돈 한 푼도 쓰지 않고 구입을 했고, 필요하다면 나의 변호사가 나에게 돈을 빌려 주었죠. 그리고 그 건물들에게서 나오는 임대 수익은 나의 보증금과 모든 비용들을 다 제하고도 이익이 남을 정도였죠. 내가 하는 모든 계약들은 그것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했어요. 그게 나의 성공의 비결이었죠. 나는 어느 날 은행에 가서는 그들이 팔 수 있는 부동산이 있나 살펴보았어요. 은행이 청산하려고 하는 부동산들이 정말 많이 있더군요. 은행 측에서는 오래된 아파트들을 청산하기를 원했지만 빨리 팔리지는 않았고, 그래서 절반 값에라도 팔려고 했어요. 나는 그 건물들을 보지도 않고서 즉시 매입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3/4가격에 팔았죠. 일들은 정말 아름다울 정도로 알아서 저절로 풀려갔어요. 그래서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이나 하면서 보냈어요. 하루에 많아야 4시간만 일하고서 말이죠. 하루는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이제 이 일에서 빠져나와서는 예수가 했던 것처럼 셔츠 한 장만 입고서 떠나자구. 내가 그냥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가지고서 떠나야겠어."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문 쪽으로 걸어갔어요. 그러다가 생각하기를 "잠깐 레스터, 아직 첫 번째 두 번째 보증금과 이 건물들을 위해서 빌린 대출금들이 남아 있잖아.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을 해야지."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결정이었죠. 나는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겼어야 했었고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신이 돌볼 것이었는데 말이죠. 어쨌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부동산들을 거의 헐값에 팔아치웠어요. 내가 보기에는 정말 쓸모없어 보이는 건물 5개를 제외하고 말이죠. 내가 그 건물들을 산 이유는 그 건물들이 시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아서 몇 개월 내에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에 포함이 될 것이고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였죠. 나는 그 건물들을 중개인들에게 관리하도록 위임하고서는 크라이슬러 차를 새로 뽑아서는 서부로 떠났습니다. 나는 어딘가 조용하고 고립된 장소를 원했고 그 길의 끝에 있는 아리조나주의 세도나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장소였어요. 은거하기에는 완벽한 장소였죠. 거기서 160에이커의 땅을 구입했습니다. 나는 중개인들에게 보증금을 낼 돈이 없었지만 그 땅을 구입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루 이틀 뒤에 수표가 우편으로 도착했고 겨우 돈을 맞출 수 있었어요. 나는 수표가 올 거란 것을 몰랐지만 뉴욕에 있는 부동산에서 온 수표였어요. 어쨌든 그것으로 땅을 구입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시에서 그 다섯 채의 건물을 구입하기를 원한다고 했어요. 거기에서 나온 돈으로 나는 그 땅들을 구입하는데 나머지 돈을 다 치룰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1958년에 뉴욕을 떠난 이후로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신께서 모든 것을 하도록 놓음으로써 생활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내면의 소리에 따라 나의 뉴욕의 아파트에서 셔츠 한 장만 달랑 걸친 채 떠났을 때 뭔가 다른 것이 나에게 다가왔어요. 무언가를 끌어 모으는 것은 확신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면 나는 무언가를 끌어 모을 필요가 없어요. 새들과 동물들이 무언가를 끌어 모을 필요를 느끼던가요? 만약 신께서 그들을 보살펴 주고 있다면 틀림없이 저도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신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한다면 당신은 미래의 안정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유일한 안정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저절로 나에게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답니다. 3. 사랑은 사랑 안에서 피어납니다. 내가 1958년에 아리조나주 세도나에 왔을 때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나는 내 몸을 여기에서 머물게 했고 약 2년간을 엑스터시의 상태에서 지냈습니다. 나는 이 시기 동안 혼자였지만 내면의 이끌림에 따라 가끔은 밖으로 나가곤 했어요. 나는 소규모 그룹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내가 한 말들이 묶여서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The Ultimate Truth Book?이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다른 소규모 그룹들이 동시에 형성되었어요. 나는 거기에 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돌아오곤 했어요. 1년에 절반 정도는 말이죠. 그들은 다시 모였고 새로운 멤버들도 들어왔고 나는 다시 그들과 세션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들이 내 말을 이해하고 흡수하기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었죠. 하지만 일년 전부터는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도저히 선생으로 볼 수가 없었고, 나는 새로운 운동 같은 것을 시작하고 싶은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이리저리 끌었고 나는 그들이 끄는 대로 뭔가를 전해주긴 했죠. 그 세션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녹음을 하기 시작했고 "레스터와 함께 하는 세션들" 이라는 출판물 시리즈가 나왔어요. 내가 세상에 다시 돌아온 것이 나로 하여금 사물들을 다르게 보게 만들었어요. 제가 초창기에 그들 그룹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나는 반대라는 것을 볼 수가 없었어요. 그것은 신이 신과 나누는 대화였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나는 사람들로부터 나에게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이제 나는 사람들이 내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반대할 때면 내가 그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느낍니다. 이제 나는 내가 말해야 하는 것들을 흑과 백으로 표현할 수가 있고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것을 읽든지 그렇지 않든지 하겠죠. 나는 이제 더 이상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건 좋은 일입니다. 나도 그들이 더 나은 세상을 가지는 것에 행복합니다. 그들이 나로부터 나오는 정보들을 사용해서 그런 목적으로 쓰는 것에 나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이러한 지식을 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 내가 보기에는 95%의 사람들이- 단지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궁극’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들이 그들의 삶을 보다 더 풍족하고 편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그들의 성장을 멈춥니다. 그들은 높이 비상하였고 생활은 아주 쉽고 편한 것이 되었고 그걸 유지하는 것으로 끝이죠.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그들이 계속해서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들이 끝까지 추구하지 않는 한 결코 만족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옴짝달싹 못하게 갇혀버리고 말죠. 나는 내가 친밀하게 작업을 같이 했던 LA에 있는 한 그룹을 예를 들 수가 있어요. 그들의 사업은 아주 잘 풀려갔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잘해냈어요.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끔찍한 상태입니다. 사업은 예전 같지가 않고 그들은 두통에 시달리고 좌절해 있어요. 아주 비참해하고 있죠. 세상에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뒷걸음치고 있는 거예요. 만약 그가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면 그는 한계로부터의 자유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한계지워진 것이니까요. 결국 모든 사람은 세상에서 행복이라 불리우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만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끔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되고 다시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되지요. 나의 모든 가르침들은 이제 책으로 묶여서는 "풍요의 코스"라고 불리우는 코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주고자 했던 것을 원했던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옛말에서 인용하자면 "천명 중에 한 사람만이 나를 구할 것이요. 나를 구한 자 천명 중 한 사람만이 나를 찾게 될 것이다." 같은 거죠. 우리는 현재 진리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한 시기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눈먼 나머지 영혼의 길을 물질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차, 더 많은 기계들,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돈 등 물질만을 추구하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의 신은 달러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는 신보다 달러를 더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불행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평화도, 아무런 고요함도 없습니다. 내가 처음 아리조나주의 세도나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저 2년 동안을 혼자서 지냈습니다.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물러나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지고의 상태에 머물렀어요. 아마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유사한 경험은,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자고 나서 너무나 기분이 좋게 깨어나서는 그것을 기억하는 것일 겁니다. 나는 바로 그 상태에 있었어요. 하지만 깨어있었죠. 그것은 깨어있음 그 자체였습니다. 당신이 그런 상태에 있을 때, 당신이 의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당신은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물러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에도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것을 했습니다. 나는 다시 2년 후에 뉴욕과 LA에 있는 소규모 그룹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1962년에 피닉스에 갔었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에서 1970년에 이르기까지 나는 꽤나 활동적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LA에서 보냈죠. 나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었고, 나에게 있어서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보듯이 세상이 비참하고 어렵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일단 지고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쉬운 것인지 깨닫기만 한다면, 세상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겁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초기에, 나는 개인적인 치유에 관련이 되었어요. 하나를 치유하고 나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났죠. 그러다가 차라리 사람들을 가르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적인 치유가 가장 좋습니다. 이것은 즉각적이죠. 만약 당신이 영적인 치유를 하지 못한다면 정신적인 치유를 하면 됩니다. 이것은 매우 빠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2가지를 해낼 수 없다면 그냥 의사를 찾아가세요. 영적인 치유는 완벽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행해집니다. 그것은 단지 당신이 완벽만을 봄으로써 불완전함을 놓아 보내는 것이죠. 정신적인 치유는 당신의 마음을 질병으로부터 떼어 놓고는 당신의 몸을 건강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비쥬얼화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마음으로 아프다는 심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아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1952년에서 1956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치유에 관련되어 있었고, 그것도 개인적인 범위 내에서였어요. 사람들은 즉시로 치유가 되었고 심지어는 전화로도 가능했죠. 한번은 어떤 소녀가 전화를 해서는 "의사들이 말하기를 제가 횡격막이 파열되어서 수술을 받아야만 한데요. 어떡하죠?"하고 말하길래, 나는 그녀의 완벽함을 보고서는 말했어요. "그냥 그것이 완벽한 것으로 보렴. 넌 괜찮을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 애가 말하기를 "예. 바로 그거에요." 그러길래 나는 그애의 받아들임이 완벽한 것임을 알아차렸죠. 그러고 나선 제가 말했어요. "좋아. 이젠 의사에게 가서 확인해보렴." 그녀는 그렇게 하였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물론 의사는 놀랐죠. 나는 이런 치유에서 나 자신에게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어요. 나는 항상 그저 뒤로 물러나 있었죠. 당신은 자신을 힐러로 느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그저 길을 내어줄 뿐이에요. 당신은 비켜서고 신이 모든 걸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항상 자신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라고만 했어요. 대중적인 스승들은 대중들에게 나아가서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과시하진 않아요. 그는 단지 신이 신에게 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는 단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 몇 가지 싸인을 보여준 것에 불과해요. 이러한 모든 치유들은 그저 사람들에게 영적인 깨우침을 주는데 도움이 되는 정도죠. 치유를 위한 치유 그 자체는 도움이 안 됩니다. 항상 치유 이상의 것이어야 해요. 여기에는 패러독스가 있어요. 만약 나 레스터가 어떤 기적을 행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럴 수 없어요. 하지만 내가 만약 레스터로 하여금 비켜서게 하고 신이 행하게 한다면 기적이 일어나죠. 여기서는 <행위자>라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철저하게 신에게 맡기는 것이 기적을 행하게 하는 것이죠. 만약 누군가가 기적을 행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의 지식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해를 해야만 해요. 당신은 당신의 그 조그만 자아를 비켜서게 해야 합니다. 당신은 내려놓아야만 하고, 신에게 맡기면 그것은 즉시 일어날 겁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보곤 해요. "레스터. 당신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나요?" 나는 말합니다. "아니오. 나는 그렇게 못해요." 그게 사실입니다. 나는 나 자신 레스터를 비켜서게 하고서 경험하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나의 에고를 놓음으로써 어떤 일이든 그리고 모든 일이 다 가능해지는 겁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방이 많으니라." 사람들이 육신을 떠나고 이 세상과 비슷한 세상으로 갈 때 그들은 오래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납니다. 이 세상과의 가장 주요한 차이점은 거기서는 모든 것이 즉각적이라는 것이죠.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즉각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보다 훨씬 더 쉽게 말이죠. 이 세상과 비교해 본다면 거의 천국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처럼 쉽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여기 이 세상은 당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가장 큰 곳입니다. 나는 경험으로부터 ‘내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무엇이든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빠르게 실현이 됩니다. 나는 은행에 융자금을 대출 받으러 갈 때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그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 직원은 나에게 끌려 아무런 담보 없이 만 달러를 나에게 내어주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날 때 나는 그 두 사람이 무의식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으면서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미소를 짓곤 합니다. 난 알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마음을 읽고 있답니다. 나는 내가 깨닫기 전에 이런 모든 것들이 헛소리라 생각했어요. 나는 일주일에 7일을 일했어요. 매일 12시간에서 14시간씩이요. 뭔가 내면의 불안감에 쫓겨가면서요. 나는 뭔가 일에 몰두함으로써 마음에서 짐을 덜어내는 기분이었어요. 그게 내가 그토록 죽어라 일을 열심히 한 이유였죠. 나는 내가 땡전 한 푼 없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한다고 변명했지만 사실 핑계거리였어요. 나는 흔히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았어요. 좋은 사람으로 살고, 돈을 많이 벌고, 나의 직업에서는 최고가 되어야만 했죠.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하려고 했어요.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 부유함 저명함 등등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었죠. 그러나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고 마침내는 심장에 이상을 가져왔어요. 당신이 아무리 사회의 룰에 따라 분투하더라도, 심지어는 목표를 성취해낼지라도,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세상에서 마냥 이길 수가 없어요. 나는 극도로 억눌렸고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힘들었어요.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죠. 이것이 결국 나에게 신경증을 가져다 줬어요. 나는 진정으로 돈에 관심을 가지지도 그것을 즐기지도 못했어요. 내가 탐구를 하는 시기 동안 잠이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어요. 우리는 단지 진짜처럼 보이는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잠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원하고, 세상이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기 때문에 하루에 8시간 정도씩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당신이 조화롭고 튜닝이 되어있을 때는 결코 피곤해지지가 않습니다. 피곤함은 단지 정신적인 갈등이 있기 때문이죠. 모든 정신적인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당신은 결코 결코 피곤해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튜닝이 되어있을 때는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당신이 쓸 수가 있어요.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당신이 쓸 수 있도록 거기에 항상 있습니다. 내가 잠을 자지 않던 시기 동안 나는 내가 잠을 자던 때보다 더욱 에너지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생활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시간 다음에는 2시간 그리고 마침내 6시간을 자는데 성공했어요. 나는 1시간을 잘 수도 있고, 6시간을 잘 수도 있지만, 이젠 아무래도 차이가 없습니다. 내가 깨닫기 전에는 나는 의사들과 영양학자들이 하는 말을 믿어서 단백질을 많이 섭취했어요. 아침에는 계란과 큰 스테이크 베이컨 등을 먹었죠. 점심과 저녁에는 항상 고기를 먹었어요. 내가 깨닫고 나자, 나는 동물 가족들이 우리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먹을 수가 있겠어요? 만약 배고픔이 일어나면 나는 그것을 꺼버리고 그것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난 결코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 누구나 조금만 연습하면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당신이 배고픔을 느낄 때 먹지 마세요. 대신에 배고프지 않을 때 음식을 먹으세요. 당신은 그런 식으로 하루 3끼를 먹을 수 있답니다. 이건 단지 육체를 훈련시키는 방법일 뿐이에요. 단지 위장이 당신을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몸을 컨트롤 하는 것이죠. 내가 1952년 깨달음을 얻기 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아름다운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어요. 그리곤 늘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죠. 나는 사랑에 빠지고, 우리 둘은 헤어지고, 나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찢겨 나가는 것 같았어요. 내가 처음으로 아네트와 헤어졌을 때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사궜던 여친- 그것을 극복하는데 5년이 걸렸어요.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어서 나는 그것과 싸우느라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죠. 나는 한때 그 일 때문에 계속 우울했어요. 그리고 나서는 버지니아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죠. 그러다가 우린 또 헤어졌어요. 이번에는 극복하는데 3년밖에 안 걸리더라구요! 내 인생에서 이쁜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어요. 문제는 여자와 사귀면 뭐랄까 자유를 뺏기는 기분이어서 결혼이 나에게 줄 부자유를 내가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거였죠.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친들은 저를 떠나고야 말았어요. 나는 이런 고통들을 겪고 싶지가 않아서 뭔가 대책을 세우기로 결심했고, 연애가 정점을 지나서 내리막길의 조짐이 보일 때 헤어짐에 미리 대비했어요. 하지만 나는 여자애들이 내가 겪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애들에게 차이기로 했죠. 내가 알게 된 것은 여자애들은 남자가 좇아가면 도망을 간다는 거였어요. 반대로 남자가 도망을 가면 여자가 좇아오죠. 여자애들이 슬슬 결혼에 대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이젠 내리막길이 시작된다는 신호였어요. 그래서 나는 헤어지기 전에 미리 작업을 시작했죠. "하니. 어디 있었던 거야?? 빨리 와. 난 자기가 항상 내 옆에 있어주길 바란다구. 다신 그러지마~" 여자애들은 숨 막혀 했고 불편해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들을 더욱 밀어부쳤고 일이 얼마나 환상적으로 진행되어갈지 잘 알고 있었죠. 그리고 난 다른 여자애를 물색했어요. 내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덜기 위해서였죠. 나는 이 고통이 무엇보다도 싫었고, 다른 여자를 찾는 것으로 그것을 덜어내고자 했어요. 하지만 내 연애 생활 끝에 남는 것은 비참함이었어요. 그러나 이런 애정의 열정과 애통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이런 환상에 가라앉아있을지도 모르죠. 약간의 달콤함과 오랜 시간의 고통들 말이에요! 이게 바로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약간의 즐거움과 그 뒤의 고통의 패턴이었던 것이죠. 그 고통은 너무나도 큰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해요. 대부분의 연애 관계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은 대개는 에고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언젠가 뉴욕의 23번가 거리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친구 2명과 앉아 있었어요. 1945년쯤이었나 그랬을 겁니다. 앉아서 파이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조가 말을 했어요. "Gee. 난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어." 내가 말했죠. "조. 무슨 소리야? 저번 주에 그렇고 그랬던 일은 뭐야?" "오 그런 건 카운트에 넣으면 안 되지." "그럼 지지난 주에 그랬던 건 뭐야?" "오~ 그런 건 카운트에 넣으면 안 되지." 그러자 프레드도 한마디 했어요. "Gee. 나도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내가 말했어요. "프레드. 지난 주에 그렇고 그랬던 일은 뭐야?" "오~ 그런 건 카운트에 넣으면 안 되지." 난 그때 갑자기 깨달았어요.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나도 걔들처럼 그렇게 느끼고 있었어요. 난 한 번도 섹스다운 섹스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구요! 내가 말했어요. "우리 모두가 미친 거 아니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리고 나서는 나는 깨달았어요. 우리가 원한 건 ‘사랑’이지 섹스가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사랑이 없다면 "그건 우리가 한 번도 섹스를 안 한 것이라구요." 나는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섹스에 집착하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것을 사랑과 동일시하고는 항상 더욱 더 많은 섹스를 통해서 사랑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거죠. 4. 사랑은 개인적인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랍니다. 당신은 세상과 싸움으로써 자유로워질 수는 없어요. 당신은 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낸시 시내트라가 토크쇼에서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죠.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자유는 개인적인 것이에요. 나는 왜 자유를 위해 싸워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이미 자유를 얻었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거죠. 그녀가 옳습니다. 자유란 당신이 개인적으로 성취하는 상태이죠.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2등 시민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그걸 알지도 못하기도 해요. 여성들이 2등 시민의 위치에 있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여성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바로 잡고 스스로를 모든 면에서 남성들과 대등하다고 실제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남성들의 타고난 성품은 이성적이고 여성들의 타고난 성품은 감성적이죠. 감성이야말로 이성보다 근원의 자아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훨씬 더 근원의 자아에 가까운 것이죠.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업가가 떠오르는군요. 그 양반은 중요한 사업상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의 고객을 집으로 초대해서 와이프에게 보이고 난 후에야 결정을 내렸어요. 그 양반은 경험으로 부인의 느낌이나 직관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자기도 그걸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렇다는 것은 알겠다고 하더군요. 이제 당신도 보다시피 2개의 서로 다른 본성이 있고 이 때문에 가끔 서로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내가 같이 작업한 그룹들 중에 남자들은 항상 질문을 해대요. 그리고 그들은 영리하죠. 하지만 여성들은 거의 말을 하진 않지만 언제나 남자들을 뛰어넘어요. 여성들은 바로 느끼고 바로 경험해요. 여자들이 유리해요. 우리가 수많은 생을 경험하면서 어떤 특정한 시기에 우리는 성sex을 바꿉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마지막 전생에 여자였었지만 지금은 남자로 태어났죠. 내가 남자의 몸을 가졌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여자들에게 끌리지만 지난 생으로부터 많은 여성적인 감정들을 가지고 왔어요. 내가 남자의 생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나의 감정은 더욱 남성적으로 되어가겠죠. 당신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의 동성애 경향homosexuality을 발견할 수 있어요. 우리가 더 많은 경험을 위해서 성sex을 바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죠. 나는 또한 갓난아기가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만약 당신이 갓난아기 시절을 다시 기억할 수 있다면, 심지어는 태어나는 날 엄마 아빠가 누구인지, 의사가 누구인지도 기억해낼 겁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나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고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를 떠올렸어요. 당신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어요. 당신의 관심은 오직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뿐이었죠. 만약 엄마가 젖을 주지 않는다면 그저 엄마가 젖을 줄때까지 우는 거죠. 나의 누나는 생후 6개월 후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나 봐요. 하지만 전 3살까지 말을 안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걱정을 했죠. 그들은 내가 좀 멍청하다고 생각했었나봐요. 하지만 난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소리를 냄으로써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나는 그들이 왜 나를 걱정하는지 궁금해 하곤 했었죠. 오늘날의 교육은 완전히 잘못되었어요. 우리는 무한한 존재에게 암기할 거리나 쑤셔넣고는 창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의 능력을 질식시키고 있어요. 당신은 해바라기에게 아름답게 자라나도록 가르쳐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게 바로 이런 거에요.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내적인 능력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허락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 수가 있죠. 모든 약물들은 독입니다. 약물들이 당신을 육신에게서 밀어내고 당신은 육신의 무거움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죠. 육신에 대한 집착을 놓아줌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의식을 육체 의식 너머로 확장시킬 수가 있습니다.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다른 약물들을 사용하는 것의 해악은 그것들 없이도 당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것들에게 의존하게 된다는거죠. 지고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런 상태이고 우리 자신이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엑스터시를 느끼기 위해 마리화나나 다른 약물들을 사용할수록 우리는 그것들에 더욱 의존하게 되요. 또한 우리가 약물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때 우리는 약물이 주는 한계와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할 수가 있어요. 당신은 우리가 약물 없이도, 스스로 도약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단지 마리화나는 당신이 그것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보게 될 것을 미리 흘낏 보게 해준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할 생각은 없어요. 당신은 단지 마음을 충분히 고요하게 함으로써 그러한 일별보다 더욱 강렬한 비전을 볼 수가 있어요. 점성술에 대한 자료는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축적이 되어 왔어요. 그러므로 그게 꽤나 들어맞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나의 견해로는 그 별들이 나에게 영향을 그렇게 미칠 수 있다면,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는 얼마나 더 영향을 미치겠어요? 그래요. 내가 살고 있는 이 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저기 다른 별들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클 거예요. 또 생각해 보세요. 저기 우주 공간의 흙덩어리들하고 나의 지성을 놓고 볼 때 어느 쪽이 더 똑똑하겠어요? 그 별들은 단지 물질 덩어리들일뿐인데 그것들이 나의 지성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단호하게 아니오!, 라고 말할 겁니다. 이게 점성술에 대한 나의 태도입니다. 비록 지성이란 대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같은 걸로 정의되지만, 난 지성을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 행복을 원합니다. 지성이란 게 ‘사람이,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가지는 능력’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당신은 돌아다닐 때 차를 사용하죠. 하지만 당신은 "나는 차입니다." 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이것처럼 당신의 몸은 가죽 덩어리에 불과해요. 지금 당신은 그것을 타고 다니는 것으로 사용하죠. 만약 당신이 "나는 몸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나는 차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나는 내가 원한다면 보편적 지성을 더더욱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나는 생각과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조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일어난 모든 일 뒤에는 그 사건 이전의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에는 그 둘 사이에 있는 시간이라는 요소 때문에 눈이 가려져 그걸 연결시키지 못했던 거죠. 모든 사건이 그 일이 있기 전에 생각된 것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생각만 잘 붙잡는다면 나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내가 의식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걸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세상이 나를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엄청난 노력과 결국의 실패 그리고 모든 지난 세월이 나의 생각에 의한 거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내가 세상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생각,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세상의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거대한 해방과 자유였지요. 나의 탐구가 시작될 무렵 나의 병은 너무나 위중해서 무덤 속에 이미 한쪽 발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이 모든 일을 일으킨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즉시 나의 몸을 턱에서 발끝까지 온전한 것으로 여기며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즉각 나의 몸이 온전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궤양에 의한 장의 협착과 손상이 해소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나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요. 나는 점점 더 큰 자유를 누렸습니다. 일을 해야 한다, 여자를 얻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충동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라는 느낌, 나의 환경을 나에게 맞도록 조정할 수 있다는 느낌. 이 새로운 자유가 나의 내면을 너무나 강렬하게 깨우쳐주어서 이제 나는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게다가 내가 경험하게 된 새로운 행복은 너무나 컸습니다. 전에는 있으리라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기쁨을 경험했어요. 행복이 그토록 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한 인간이 그토록 행복해 질 수 있을 줄은 몰랐지요. 나는 계속해서 어떻게 이 기쁨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장 원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 결혼하기를 내가 가장 바라지 않았던 친구’가 결혼하여 서로 즐거워하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나에겐 이것이 최대한 확장된 사랑이었어요. 한 친구와 그녀가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그 상상을 계속했어요. 나중에는 나에게 심하게 반대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이것을 시험해보았습니다. 그들이 나를 공격할 때 의식적으로 그들에 대해 가장 큰 사랑을 느끼려 했지요. 그들에 대한 사랑의 기쁨은 너무도 좋았습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그들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아낌없는 감사를 표했고, 그들은 거기에 감동을 받곤 했지요. 사랑하기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을 사랑할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는 감사를 드렸어요. 나는 나의 적들도 사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나는 행복의 끝까지 도달하기까지는 사랑 키우기를 멈추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갔지요. ‘이보다 더 높을 수 없을 거야!’ 하면서도 계속 더 높이 올라갔어요. 결국 난 행복이 무한히 커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죠. 나는 더 이상 꼼짝도 할 수 없게 되기도 했어요. 너무나 큰 기쁨과 황홀함에 가득 차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이런 상태가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어요.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 나중에는 몸을 다시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아래로 내려오는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성과 에너지의 근원에 대해 깊이 명상하면서 그것은 무한한 양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을 단지 모든 충동과 억압, 집착,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때 찾아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에너지의 유입을 댐으로 막고 있었던 겁니다. 댐은 바로 나의 충동과 두려움이죠. 내가 할 일은 오로지 그 댐의 통나무를 느슨하게 열어주는 것뿐입니다. 그게 바로 내가 했던 일이지요. 마치 댐에서 통나무들을 하나 하나 치워내면 물이 흐르듯이 내가 이런 것들을 제거하자 무한한 에너지가 흘러 들어온 겁니다. 통나무를 더 많이 치우면 치울수록 흐름은 더 커지겠지요? 우리가 할 일은 이 통나무들을 치워내서 무한한 힘이 흐르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알고 나자 나의 마음 바로 뒤편에 있던 힘이, 전에는 한번도 흐른 적이 없었던 것처럼 흘러들기 시작했지요. 나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은 때로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 주었고, 난 의자에서 공중으로 튀어 오르곤 했어요. 그럴 때면 나는 곧바로 현관 밖으로 걸어나가 걷고 또 걷기 시작했죠. 어쩔 땐 몇 시간씩 또 어쩔 땐 며칠씩 계속 걸었어요. 나의 몸은 그 많은 에너지를 다 담고 있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걷거나 뛰면서 에너지를 일부분 배출해야만 했죠. 이른 아침 뉴욕의 거리를 쉬지 않고 걷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주 빠른 속도로 걷기만 했어요. 그렇게 걷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그 에너지는 너무나 거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를 써버려야 했던 겁니다. 나는 이 모든 에너지와 지성의 근원이 근본적으로 조화로운 것이고 그 조화야말로 우주의 법칙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조화 때문에 행성들이 충돌하지 않는 거고, 매일 태양이 솟아오르며 모든 것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겠죠. 나는 절대적인 물질주의자였죠. 만질 수 있는 것이 유일한 실재라고 믿었어요. 나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했습니다. 그런데 물질은 지성이 없고, 우리의 지성이 모든 물질을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자 나의 단단했던 물질주의적 기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요. 그 견고했던 기반은 단지 나의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20년간 쌓아온 토대가 부서지기 시작했던 거죠. 그러자 나의 몸이 흔들렸습니다. 아주 심하게 말입니다. 여러 날을 흔들리기만 했죠. 꼭 신경쇠약에 걸린 늙은이처럼 몸을 흔들어댔어요. 내가 지녀왔던 세상에 대한 견고한 시각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편하고 우아하게 떨어져나가지 않았던 겁니다. 며칠 동안 정말로 몸을 흔들어댔어요. 내 생각에 모든 게 다 풀어헤쳐진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 뒤에는 몇 달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되는 관점을 갖게 되었어요. 진정으로 견고한 것은 물질계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훨씬 더 위대한 무엇이라는 거죠. 나의 진정한 본질 존재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그것은 한계가 없고 영원합니다. 이제껏 내가 보아왔던 나는, 나의 전부가 아니고 최소한의 나였던 거죠. 전부의 나는 존재 그 자체입니다. 그렇게 알아차리자 나는 존재 그 자체가 되어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제한적인 육체가 아닌데 그렇다고 생각했었군! 나는 한계를 지닌 이 마음이 아닌데 그렇다고 생각했었어!’ ‘나는 그게 아니야! 이제 다 끝났어! 바로 그거야!’라고 말하면서 나는 모든 몸의 제약과 거의 모든 마음의 한계를 풀어버렸습니다. 정말 그렇게 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몸과의 동일시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나의 존재는 즉 모든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전존재는 하나의 거대한 대양과 같습니다. 그것은 물방울과 같은 낱낱의 몸으로 쪼개져 들어가는 게 아니죠. 모두 하나의 대양일 뿐입니다. 이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모든 존재 모든 사람 심지어 이 우주의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게 했어요. 그러고 나면 분리와 분리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세상의 한계들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되죠. 당신은 세상을 꿈으로 보게 됩니다. 당신의 존재는 한계가 없음을 알게 되니까요. 사실은 유일한 실재는 존재뿐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진실하고 변함없는 무엇입니다. 이 깨달음 이전과 이후의 나의 삶은 양극단이었죠. 전에는 극도의 우울함, 비참함과 아픔이었는데 이후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행복과 평온함으로 바뀌었어요. 내 인생은 너무도 조화롭고 아름다워서 하루 종일 매일 매일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 속에 있습니다. (그는 3개월 만에 완벽한 건강을 얻었으며 그 후로도 40년 이상을 건강하게 살았다. 게다가 그의 삶은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좋아졌다. 그는 그가 발견한 행복의 원리를 경제생활에 적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 후로는 강연과 명상법 개발을 통해 다른 이들이 마음의 신비를 풀고 풍요를 누리는 것을 돕는데 여생을 바쳤다.) 5. 사랑으로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원자atom>라는 단어의 정의는 더 이상 쪼개어질 수 없는 최소의 단위입니다. 1952년까지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원자와 원자에 대한 최신의 이론을 따라왔어요. <원자>는 원래 이 우주를 이루는 기본적인 입자로 생각되어져 왔지만, 이젠 그 안에 30개가 넘는 입자가 있다는 게 알려졌어요. 이젠 원자를 만물의 공통된 입자로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자연 현상에 대한 모든 총체적인 지식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될 거에요. 우리는 중력, 자기장, 전기, 빛, 혹은 열이 무언지 알지 못해요. 과학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발전해왔어요. 왜냐하면 오늘날의 과학은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존재의 과학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세상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파괴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는 물질을 파괴함으로써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물질을 계속 파괴해 나간다면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할 거예요. 이게 오늘날 우리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보상의 법칙이죠. 우리는 대기를 오염시키고, 물을 오염시키고, 식품들을 오염시키고 있어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이젠 우리가 인간과 그의 존재를 연구할 때입니다. ‘다른 모든 과학들을 바로 잡아주는 과학’이야말로 모든 과학들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곧 머지않아 우리는 자연의 과학을 이해하고 원자를 이해해야 하고 그리하면 우리는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원자를 이용할 수가 있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파괴와 증오를 놓아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자연과 자연법칙의 단순함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맑아질 겁니다. 그건 우리의 물리학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처럼 복잡하지가 않아요. 자연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존재합니다. 우리는 자연과 싸우거나 짓뭉개거나 파괴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존재의 과학’은 모든 다른 과학들이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줄 겁니다. 만약 우리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우리 자신과 조화를 이룬다면, 증오하기보다 사랑을 한다면, 자연은 우리를 기꺼이 충족시켜주고 우리를 풍족하게 해주어서 모든 이들이 풍요로울 뿐 아니라 지극히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양면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만약 플러스가 있다면 마이너스가 있죠. 뜨거움이 있으면 차가움이 있고, 중력이 있다면 반중력이 있습니다. 오직 중력을 이해할 때만 우리는 반중력을 이해하는 열쇠를 갖게 될 겁니다. 바로 그때에서야 우리는 이 지구를 떠나서 우주를 여행하게 될 거예요. 우리는 우주의 자기장을 따라 여행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오늘날처럼 인간들이 파괴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한 자연은 우리를 이 행성에 묶어둘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행성으로 가서 그들을 정복할 테니까요. 우리가 더욱 많이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더욱 고요해진다면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볼 수가 있어요. 그리하면 우리는 중력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지구를 쉽게 떠날 수가 있게 되죠. 우리는 원자로부터, 어떻게 하면 파괴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무한한 자유 에너지를 얻게 되는지를 알게 될 겁니다. 전에 말한 것처럼 우리는 원자를 파괴함으로써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되돌려서 건설적인 방식으로 연구를 해야 해요. 그리하면 우리는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저 밖의 우주를 살펴봐야 해요.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원자를 배워야 하고, 원자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안다면 무한한 힘의 비밀을 알게 될 겁니다. 우리의 물질적 우주의 원자는 광자photon particle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이죠. 빛의 입자가 우리의 망막에 부딪히고 빛으로 인식이 됩니다. 똑같은 입자가 중력과 자기장을 만들고 또한 원자의 에너지 층을 구성하고 있어요. 물질은 한 점에 멈추어 있는 듯이 보이는 에너지에 불과해요.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죠. 여기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 잔에는 멈춘 듯이 보이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 덩어리가 있어요. 커피 잔이 움직이면 그것들은 에너지가 됩니다. 당신이 만약 이 잔을 친다면 알다시피 당신에게도 에너지가 돌진해 오죠. 이렇게 간단한 겁니다. 고차원의 관점에서 보자면 물질은 얼어붙은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또한 마음의 움직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들은 ‘마음의 작용’이죠. 모든 우주가 단지 마음의 움직임일 뿐입니다. 모든 것들이 단지 우리 마음속의 이미지일 뿐이에요! 이걸 잠드는 것으로 설명해봅시다. 당신의 마음이 잠에 들었을 때 이 세상은 어디에 있나요? 만약 당신이 깨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마음을 제외하고 도대체 어디에 이 세상이 있나요? 당신의 마음을 영원히 치워버린다면 다시는 이 세상이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자신의 하나임 your oneness을 보게 될 때 - 당신이 당신의 진정한 자아 real Self를 보게 될 때, 당신은 이 모든 우주를 당신의 마음속의 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밤에 자면서 꿈꾸는 것과 똑같이요. 당신은 당신만의 꿈을 상상해냅니다. 그 안의 등장 인물들, 행동들, 사람들 사이의 관계 등등. 당신이 밤에 꾸는 꿈에서 깨어나서, ‘깨어있음의 꿈’을 꾸는 동안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모두가 당신이 만들어낸 꿈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 "오! 이런 세상에~ 모두가 다 꿈일 뿐이었어." 그리고 당신은 이 환상의 끝에서 웃게 될 거에요. 만약 당신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죠. 실재 real의 정의는 이런 것입니다. 결코 변함이 없는 게 실재입니다. 실재는 변할 수가 없어요. 그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 진실은 결코 변하지가 않습니다. 언제나 진실합니다. 이 세상의 실재는 세상 뒤에 있는 <존재beingness>입니다. 당신이 깨어났을 때 이 세상이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세상에 대한 당신의 앎은 완전히 변해버립니다. 세상을 당신의 통제를 벗어난 당신과 분리된 것으로 보는 대신에, 당신은 세상이 단지 당신의 <존재beingness>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모든 것들을 이미지로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젠 당신은 세상을 한낱 꿈으로 보게 될 거에요. 이전에는 그토록 진짜 같았었는데 말이죠. 이것이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의 유일한 차이점이에요. 당신이 자신의 진정한 자아 real Self(God)를 알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완전히 충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은 완전히 만족하고 혹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어요.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오아시스를 찾고자 하는 갈증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신 I-that-I-am을 찾고자 한다면 바로 마음 뒷편을 살펴보세요. 마음은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무한한 것을 품고 있을 수가 없답니다. 당신의 마음이 충분히 고요해져서 당신이 마음의 소음을 꿰뚫고서 볼 수 있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인 진정한 <나 I>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더 고요히 할수록 당신은 더 성공할 수가 있어요. 당신은 완벽한 성공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은 오로지 창조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실제로 현현됩니다. 마음은 이미지로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신발'을 생각한다면 나는 단어가 아니라 신발의 이미지를 생각을 하죠. 마음은 <안 돼 not>와 <하지 마 don't> 라는 단어를 심상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하지 마 don't> 라고 생각하는 한 당신은 마음속에 원하지 않는 것의 그림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래서 당신은 원치 않는 것을 창조하게 됩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시계 챙기는 것을 잊지 말라구, 레스터.”라고 말하면 나는 시계를 잊어버리죠. 내가 만약 "차를 흘리지 마."라고 말하면 차를 흘리게 되요. 이건 참 기묘한 일이죠. 내가 탐구 이후에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부정적인 단어들이었어요. 처음에는 나의 사전에 부정적인 단어가 없었죠.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는지 놀랄 겁니다. 확인해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하실 겁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자연스러워요. 그래서 내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했을 때 나는 <하지 마 don't>를 배워야만 했어요. 이제는 제법 익숙한 습관이 되었어요. 이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마음은 오로지 창조만 한다는 것을.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을 한다면 If you ‘don't’ something, 당신은 무언가 원치 않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은 그것을 창조해냅니다. 당신도 이제 알다시피 <하지 마 don't>는 마음속의 그림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당신은
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이것이 마음속의 그림이 됩니다.) 만약 당신이 "Don't fall"이라고 말한다면 "fall"이 그림이 되는 거죠.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부정적인 것의 반대되는 것을 보여줘봐요." 하면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부정적인 습관을 긍정적인 습관으로 고칠 수가 있어요. 다만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세요. 하나의 강력한 생각은 수백 가지의 잠재의식적인 부정적인 생각들을 일시에 없애버릴 수 있어요. ‘생각의 파워’에 차이는 왜 만들어질까요? 당신이 생각 뒤에 심는 결심, 결단, 의지력의 정도가 그 차이를 만듭니다. 만약 당신이 "나는 무인인가?"라는 생각을 붙들고 진정한 당신이 스스로 모습을 보일 때까지 밀고, 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자유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겁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모든 생각들을 거절하고 "나는 무엇인가?"라는 생각만을 유지해 나간다면 몇 주 안에 해답을 얻게 될 겁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항상 "나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마음의 배경으로 삼아보세요. 이렇게 해도 성공하지 못했다면, 다음으로 할 수 있는 단계는 당신의 에고 감각을 내려놓는 겁니다. 더 이상 에고가 없을 때 남는 것은 무한한 당신 자신입니다. 만약 에고를 단번에 내려놓는 것이 너무 벅차다고 생각이 된다면, 에고의 결과물들을 하나씩 내려놓으세요. 당신의 성향, 기질,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 등등.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성향이나 기질 등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쉽게 내려놓을 수 있어요. 작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내가 말했던 것처럼 큰 것들로 나아가세요. 예를 들어 길을 오른편으로 걷는 습관 같은 사소한 것들을 왼편으로 걷는 것으로 바꿔보는 거죠. 8시간씩 매일 자는 습관을 6시간 정도 자는 걸로 바꿔본다든지요. 내가 마스터라는 것을 보인답시고, 오래되고 비중이 큰 습관들을 한번에 완전히 없애버릴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지나 동의를 구하는 습관은 참 다루기 힘든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남들의 지지나 동의를 구하려고 해요. 어리석은 노력과 시간 낭비죠. 당신이 탐구를 할 때 - ‘나는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의문을 가지고 하든 혹은 에고의 감각 성향 등을 내려 놓으려 하든 -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홀로 있는 시간은 당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홀로 있음은 도시 한복판에서도 할 수가 있어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죠. 나는 뉴욕시 한복판 116번지 59번가에서 홀로 있었답니다. 우리가 매일의 일상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와 만남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은 가능하답니다. 우리는 여기에 성장하기 위해 온 것이지 테스트를 받으러 온 게 아니에요. 여기 지구는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배움을 위한 곳이랍니다. 학교 같은 곳이죠. 각각의 별들은 서로 다른 단계의 가르침이 있는 교실 같은 것이랍니다. 여기 지구는 말하자면 일종의 대학원 과정과도 같은 곳이에요. 여기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이고 그래서 가장 큰 성장을 할 수가 있는 곳이죠. 우리 모두는 아주 진화한 영혼들이랍니다. 우리가 이렇게도 지극히 어렵고 힘든 곳을 거주지로 삼았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우리는 보다 더 높은 코스 더 험난한 코스를 원했고 그리고 이렇게 해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개념은 실제로는 어느 정도까지는 증오입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해. 난 당신을 가져야겠어. 당신 없인 살 수가 없어. 당신은 내꺼라구." 이런 것들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른 이가 원하는 것을 가지도록 해주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대개 육감적이고 이기적인 감정입니다. -일종의 거래죠. ‘네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준다면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건 우리의 사랑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각들을 통해서 제한되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런 한계가 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의 기쁨 역시 아무런 한계를 가지지 않아요. 우리의 기쁨은 우리가 섹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오르가즘의 수천 배 이상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해요. 난 섹스와 관련해서 2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제가 앞서 말한 것을 이해하세요. 둘째로 중용을 지켜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섹스보다 더 큰 지속적인 기쁨을 찾아낼 때까지는 자제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기쁨에 한계를 부여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섹스를 놓아주는 게 훨씬 더 쉬워집니다. 당신은 궁극의 기쁨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기쁨을 확장시켜 가길 원하게 될 겁니다. 인간은 실로 무한한 존재이지만 스스로를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는 마음 너머에 있는 것을 찾으세요. 당신의 전지전능함을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모든 관계들을 성장하는 방편으로 삼을 수 있어요. 단지 탐구하는 것을 멈추지만 않으면 됩니다. 탐구하는 것은 24시간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의 대부분은 스스로를 부자유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잘 살펴보고 그것을 놓아주세요. 당신이 사랑이 아닌 것을 볼 때마다 언제나 그것을 사랑으로 바꾸세요. 당신이 모든 것을 사랑할 때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어떤 일도 어떤 사람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 그런 장소를 하나 장만하세요.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완전히 전적으로 책임을 지세요. 당신의 무의식적인 원인이 되는 생각을, 의식의 표면에 떠올리고 그것을 내려놓고 풀어주는 습관을 기르세요. 나는 무언가가 불쾌한 일이 나에게 생길 때마다 이렇게 하는 습관을 길렀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이것을 불러 일으켰을까?" 그 즉시 원인이 되는 생각이 떠올랐고, 나는 그것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또 그것을 내려놓았어요. 나는 빌과 함께 LA를 향해 운전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밤낮으로 운전을 했고 나는 피곤했습니다. 우리가 San Bernardino 근처에 도달했을 때 빌이 말했어요. "레스터 눈이 아프지 않아요?" 나는 피곤했기 때문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듣고는 있었죠. 그때 라디오에서 그 지역에 안개가 많이 낀다고 예보를 했어요. 빌이 두 번째로 물었죠. "레스터 눈이 아프지 않아요?" 역시 너무 피곤해서 난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생각이 나의 잠재의식 속으로 파고 들어왔어요. 그 다음 날 내 눈은 화끈거리고 눈물이 쏟아졌어요. 내가 모텔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을 때 스스로 물어봤어요. "내가 왜 이걸 만들었을까?" 그때 빌이 처음 물어봤던 것을 들었고, 나는 그것을 되돌렸습니다. 그 다음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었고 그것도 되돌렸습니다. 그리고 빌이 두 번째로 물어본 것을 들었고 다시 한번 되돌렸습니다. 나는 눈을 떴고 이제 더 이상 눈이 화끈거리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어요. 그리곤 끝이었죠! 당신은 당신이 듣게 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이 당신의 잠재의식으로 파고 들어갈 겁니다. 당신은 부정적인 말을 내려놓고 긍정적인 확언을 함으로써 그것들을 되돌릴 수가 있어요. "내 눈은 괜찮아. 내 눈은 완벽해." 만약 빌이 처음 내 눈이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내가 "내 눈은 괜찮아"라고 대답했었더라면 모든 게 다 괜찮았을 겁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안개가 내 눈을 화끈거리게 하고 눈물이 나게 하도록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이 세상에는 부정적인 말들이 너무나 넘쳐나기 때문에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게 힘듭니다. 당신은 정말로 홀로 있어야 해요. 하지만 당신은 뉴욕시에서도 홀로 있을 수가 있어요. 세상으로부터 홀로 있음이란 ‘외부의 세상으로 향하는 방향을 돌려서 당신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서 당신의 진정한 자아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계속해서 안으로 안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죠. 그러면 어느 날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고서 그것이 단지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 웃음을 날릴 겁니다. 모든 스승들은 결코 하나됨 혹은 전체의 통찰력을 잃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잠들어 있는 그들의 자아의 나머지들이 깨어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분리의 게임을 연기할 수는 있어요. 이건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한 거랍니다. 당신이 깨닫게 되면 분리에서 하나됨으로 관점이 바뀝니다. 너무나 너무나 간단하고 또 간단하고 단순해요! 이전에는 모든 것들이 당신과 분리되어 있었어요.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이전에는 세상은 정말이지 진짜처럼 보였어요. 그 이후에는 당신은 인생의 파노라마를 한낱 꿈으로 보게 될 겁니다. 당신은 이것이 그저 꿈임을 알게 되고 꿈이 작동하는 대로 놓아줄 겁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당신이 이 꿈을 떠날 때가 오면, 당신은 당신의 모든 힘을 한 곳으로 모으고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의식적으로 몸을 빠져나와서는 당신의 불멸 속으로 들어갈 겁니다. 우리의 진정한 존재,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극장의 스크린과도 같아요. 당신의 진정한 존재는 변함없는 스크린이고 이 세상은 그 위에 펼쳐지는 이미지들의 쇼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결코 움직이는 법이 없지만 스크린 위의 그림들은 움직이죠. 그 스크린은 우리의 진정한 자아처럼 변함없고 건드려진 적이 없고 완벽합니다. 하지만 스크린 위에 비치는 것처럼 우리의 자아 위에 비치는 것들이 이 모든 움직임들입니다. 당신이 언젠가 깨어나서, 우주의 모든 ‘시네마 쇼’가 영화와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 이 우주의 움직임을 영화처럼 보게 될 겁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모든 이들이 누구나 가능한 이 ‘지고의 상태’를 성취해서 이 땅위에서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 아름답고 편안한 삶을 살고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천국을 맛보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소망은 모두가 내가 아는 것을 완전히 알아서 모든 비참함과 불행이 끝나고 사랑, 아름다움,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6. 사랑 Love - Lester Levenson 우리 인간이 하는 사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러나 신성한 사랑 진정한 사랑은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을 전적으로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변치 않고 영원한 그런 사랑입니다. 신의 사랑이란 다른 이들이 그들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있기를 원하고 또 받아들이는 그런 사랑입니다. 신성한 사랑은 모든 이들을 똑같이 보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 신성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고 있나요? 우리를 반대하고 우리에게 적대적인 사람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듯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신성한 사랑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이에게 똑같이 사랑을 베풉니다. 이것에 대한 가장 위대한 보기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너의 반대편 뺨을 내 주어라. 그대의 원수를 사랑하라. 한 국가의 차원에서 이러한 사랑을 실천한다면 우리의 적들은 완전히 무력해질 것입니다. 단지 사랑함으로써요. 그들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나라 전체가 이렇게 해야 하고 적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적을 사랑하는 것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거나, 아니면 할 수 없거나 둘 중하나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다른 이를 미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만큼 우리는 다른 이들을 역시 사랑하지 않는 셈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증오보다 더 클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랑이라 칭하는 것은 단지 욕구 혹은 필요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 사람은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가 이 사람은 나에게 필요가 있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죠. 하지만 이런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들의 사랑은 이기적이지만 신의 사랑은 완전히 자기를 비운 사랑입니다. 자기를 비운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가장 큰 상상보다 훨씬 더 큰 무한한 기쁨입니다. 이것을 당신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세요.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느끼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들에게 얼마나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스스로를 모든 존재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과 하나됨을 알 때 우리는 자신에게 대하듯 다른 이를 대하게 될 겁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치유하고 달래주는 향유와 같고 위안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할 때면 당신은 다른 이를 사랑으로 고양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바로 당신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물질적인 것보다 위대합니다. 당신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눈에서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이해하게 될 때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고 받아들일 때 당신은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는 행복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조화롭게 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온전히 사랑한다면 우리는 지금 완벽하게 행복합니다. 오직 사랑이 충만하거나 사랑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반대의 것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가장 높은 사랑은 당신이 바로 다른 이가 될 때입니다. 그와 하나되는 것은 사랑의 가장 지고한 형태입니다. 당신이 원수까지도 사랑한다면 당신에게 더 이상 원수란 없을 겁니다. 사랑의 힘과 효과는 분명한 것입니다. 한번 해보세요! 당신 자신의 중심에서 본다면 사랑, 받아들임, 하나됨, 이해, 교류, 진실, 신, 참자아 이 모든 단어들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에 ‘본연의 상태’는 오로지 사랑입니다. 우리의 문젯거리들은 단지 우리의 본래 타고난 사랑을 가리웠기 때문에 나타날 뿐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자기 없음’이 당신에게 가장 큰 선함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노력 없음이고, 미워함은 아주 많은 수고와 힘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문젯거리에 사랑을 적용해 보세요. 그것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신의 사랑은 다른 이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과 행복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지금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소유의 개념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의 의미와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유롭게 하고 소유는 가두어 두려 합니다. 사랑은 다른 이와 하나됨을 느끼는 것입니다. 충만한 사랑이 있을 때, 당신은 다른 이와 하나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하면 다른 이를 대하는 것이 바로 당신을 대하는 것이 됩니다. 당신은 다른 이의 기쁨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는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뒤에 있는 파워가 의심할 여지없이 수소 폭탄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직 사랑만을 가진 한 사람이 온 세상을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토록 강한 것이니까요. 이 사랑은 우리의 참자아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바로 신입니다. 사랑은 우주의 모든 힘을 나에게 줄 뿐 아니라 우주의 모든 기쁨과 앎을 나에게 줍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우리 자신을 깊이 이해함으로써입니다. 제 생각에 모든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멋진 경험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30억 명의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도 30억 배는 더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우리 안에서 계속 성장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을 해야 합니다. 모든 가족들에게 그들의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하도록 허용하세요. 그리고 이것을 친구들과 낯선 이, 나아가서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하는 겁니다. 우리가 더 많이 사랑을 연습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게 되고, 더 많이 사랑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겁니다. 사랑이 사랑을 계속 낳는 것이죠!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될수록, 우리는 우주의 조화와 더 많이 접하게 되고 우리의 삶은 더욱 환희로 가득하고 더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싸이클을 형성할 것이고, 당신은 그 싸이클 안에서 위로 비상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을 줌으로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는 바로 그것을 우리가 받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손쉬운 일이 바로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일단 우리가 사랑이 무언지를 알게 되면 가장 쉬운 일이 되는 것이죠. 모든 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우리의 매일의 일상에서 이것을 알 수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모두와 하나가 되고, 우리는 평화롭게 되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게 됩니다. 높은 영적 차원의 사랑에서는 자기 희생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이를 사랑할 때 우리 자신을 해칠 필요가 없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랑에는 상호관계의 느낌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가 다 옳다는 것이죠. 당신이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태도로 인해 우리는 사랑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기본적인 품성이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랑이 그토록 쉬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에 반하는 것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참자아로부터 떨어져 나와서는 그것을 가리우고, 사랑에 반대되는 관념들로 질식시켜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하지 않음이 우리에게 다시 되돌아오게 되는 거죠.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는 최상의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이 우주에 충만합니다.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는 사랑 말입니다. 사랑하지 않음 바로 그 뒤편에, 우리의 존재인 무한한 사랑이 항상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증가시킬 수도 없어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증오와 사랑하지 않음이라는 껍질을 벗겨내어 이 무한한 사랑의 존재가 더 이상 감추어져 있지 않게 하는 것뿐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가는 이 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완전해질 때까지 그것을 커지게 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당신은 결코 분리감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거기에 떨어져 있는 거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당신의 가슴 바로 거기에 항상 있기 때문이죠. 오직 성장함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타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게 됩니다. 사랑은 항상 하는 태도입니다. 사랑은 변하지가 않아요. 사랑은 쪼개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랑 -인간들의 사랑을 포함해서-은 신성한 사랑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할 때면 당신은 사랑하는 그를 위해 최선의 것만을 생각하게 될 겁니다. 당신이 더욱 사랑할수록 당신은 더욱 이해하게 될 겁니다. 진정한 사랑과 거짓된 사랑을 구별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어줌입니다. 당신이 사랑으로 고양되어 있을 때 당신은 사랑하는 이를 포옹하듯이 한그루의 나무를 포옹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모든 것들에 스며들고 있죠. 우리의 거짓 자아를 버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 자아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참자아에 있게 되니까요. 사랑은 바로 참자아의 상태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아닌 모든 것은 어느 정도는 증오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어떤 것에도 반할 수 against 없다는 것을 보실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신입니다. 우리의 원수조차 신입니다. 당신이 부분으로 한정짓는다면 당신은 신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진보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당신의 이해의 깊이에 의해 결정됩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꾸려 들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그저 세상을 지금 모습 그대로 존재하도록 받아들여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바꾸려 드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에고를 투영하는 것이니까요. 더욱 사랑하게 될수록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사랑이 되는 것이 사랑을 하는 것보다 더 고차원의 것입니다. 신의 진정한 헌신자는 사랑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이 바로 사랑이니까요. 사랑이 바로 당신의 참자아입니다. 그것이 가장 높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함께함입니다. 사랑이 바로 참자아입니다. 참자아가 사랑하는 게 아니라 참자아가 바로 사랑입니다. 오직 이원성의 환상에서만 사랑함이 있을 수가 있죠. 사랑함이 아니라 사랑 바로 그것이 되는 것이 당신을 신으로 인도합니다. 7. 사랑에 관한 모든 것 오늘 밤에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싶군요. 사랑이란 단어는 제가 그다지 쓰고 싶어 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오해받고 있는 말이거든요. 또한 저는 이러한 성장의 방법을 통해서나 혹은 오직 성장을 통해서만,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을 정의하는 것은 그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말들에 몇 가지를 덧붙이는 것에 불과하고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면 말이죠.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완전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키워나가야 합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려는 사랑은 섹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섹스는 그저 육체적인 즐거움일 뿐이죠. 우리는 - 대부분의 우리는 - 이 둘을 혼동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 둘은 연결이 되어있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말하려는 사랑은 예수의 사랑과 같은 그런 것입니다. 이 사랑은 완전합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죠. "원수를 사랑하라."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에 대한 가장 적합한 정의는 사랑은 받으려는 어떠한 기대도 없이 그저 주려는 감정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유로운 베풂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속되는 일종의 태도attitude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 게 아니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뿐 아니라 낯선 이들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주어야 하죠. 이건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진실입니다. 우리가 낯선 이들을 사랑하는 딱 그만큼 우리는 우리 가족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소유의 관념은 정확히 사랑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거기에는 소유하거나 울타리로 가두거나 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주려고 할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고 우리는 다른 이들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아마도 부모님의 사랑이 이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하겠죠.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기꺼이 희생하고 무엇이라도 주려고 할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다른 정의들도 많이 있지만 나는 받아들임 내지는 허용도 아주 좋은 단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할 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지금 그대로 존재하도록 허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그대로 존재하도록 허용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받아들이세요. 바꾸려 들지 마시구요.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식으로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을 바꾸려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에고를 투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사랑은 우선 느낌입니다. 서로서로 그리고 모든 이들과 하나되는 느낌이죠. 충만한 사랑이 있을 때 당신은 스스로를 다른 이와 똑같이 느끼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과 같아요. 사랑에는 완전한 하나됨이 있습니다. 항상 끊임없이 감사하는 상태는 완전한 사랑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 그저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는 심지어는 선한 것에서뿐 아니라 선하지 못한 것에조차 신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이 상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지고한 사랑의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오직 그때에서야 우리가 선하지 못한 것에조차 신에게 감사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됩니다. 이것의 실제적인 측면은 우리가 감사하는 상태를 더욱 연습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습해 보시고 이게 참진리라는 것을 깨우치세요. 사랑은 단지 느낌만인 것은 아닙니다. 사랑에는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이것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예를 마틴 루터킹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가 공격을 당했을 때조차도 그는 그를 공격한 사람에게 오직 사랑만을 주었습니다. 그는 비폭력을 가르쳤습니다. 이 비폭력의 가장 큰 가르침은 영국을 상대로 싸워서 이긴 마하트마 간디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떠한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서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것을 해내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영국과 영국 군인들에게 폭력으로 저항하지 말고 그들을 사랑하세요.” 간디는 이것을 잘 이해하였고 인도에서 이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당신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사랑의 힘은 의심할 여지 없이 수소 폭탄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사랑은 그것이 오로지 사랑으로 표현되었을 때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오직 사랑만을 가진 사람은 세상 전체와도 맞설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토록 강한 것이니까요. 이러한 사랑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의 참자아 즉 신입니다. 사랑은 신입니다. 우리가 오로지 사랑뿐일 때 우리는 곧 신입니다. 성경을 인용하자면 “신은 사랑이다. 신은 전능하시다.”라는 것이죠. 사랑은 이 우주의 모든 힘을 줄 뿐 아니라 모든 기쁨과 지식을 우리에게 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을 실제로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혜와 이해를 통해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우리의 사랑을 성장시킬 수가 있어요. 첫째로 할 수 있는 것은 가족들을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들을 더욱 더욱 더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멋진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30억명의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아마 30억 배는 더 행복해질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가정에서 우리의 가족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 있도록 허용하고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이 연습을 시작할 수가 있어요. 제 생각에 이것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일 텐데요. 특히 아이들에게 그들이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완전하고 전체적이며 무한한 존재이며 신의 아이들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좀 더 큰 그룹으로 갑니다. 우리의 주. 우리 나라. 그리고 우리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죠. Q: 러시아인들도 말입니까? Lester: 러시아인들도요. Q: 그리고 중국인들도요? Lester: 저는 로버츠가 그와 같은 이야기에 대해 몇주 전에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어보기를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돌아온다면 그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라고 했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예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게도 적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공산주의자를 미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악한 일을 하고 잘못된 일을 하는 것에는 반대하겠지만 어떠한 사람에게도 반대하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만약 우리가 사랑의 힘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미국인들의 대다수가 러시아인들을 사랑한다면 어떠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미국이 러시아를 이길 수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 세상의 바깥에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제 생각에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이 우주에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만나게 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에는 수많은 차원이 있고 수많은 존재계가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 행성 안에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차단하고 있어요. 자 다시 사랑을 하는 연습의 문제로 돌아옵시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연습을 더욱 많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더욱 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죠. 우리가 더욱 사랑할수록 우리는 우주의 하모니와 더 많이 만나게 되고, 우리의 삶은 더욱 환희로 가득 차고, 더욱 풍부해지고 모든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더욱 위로 위로 사랑을 주고 받는 싸이클을 순환시키는 것과 같아요. 사랑이 사랑을 낳고, 사랑이 사랑과 사랑에 빠지는 겁니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만약 우리가, 만약 사랑받고자 한다면 사랑하면 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뿐 아니라 제 생각에는 사랑을 받는 유일한 방법이랍니다. 그러나 사랑을 주지는 않고 받기만 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져다 주지도 않거니와 우리를 만족시킬 수가 없어요. 이것이 매우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기본적인 착각입니다. 그들은 살면서 사랑 받으려고 하지만 실제로 사랑받고 있을 때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느낌은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멋진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멋진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죠. 멋진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바로 그 자신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셈인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 그저 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의 가슴으로부터 사랑을 그저 주는 자는 축복 받은 사람이니 그는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욱 사랑한다고 할 때 그때 우리가 우리의 내면을 거슬러 잘 찾아가보면 우리가 더욱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에게는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우리가 뭔가 가지길 원하는 것이 있고 그래서 그 사람을 더욱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의 탈을 쓴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사랑은 이런 식으로 쪼개질 수가 없어요. 만약 당신의 사랑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당신의 원수를 보세요. 이건 정말 대단한 시험거리입니다. 이게 힘들다면 낯선 사람을 한번 보세요. 그 낯선 사람에 대한 당신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보세요. 모든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가 되고, 모든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고, 모든 아이들이 나의 아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우리가 이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인 것입니다. Q: "레스터.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기만 하는 사랑을 우리가 하다 보면, 사람들은 그저 우리에게서 더욱 얻어가기만 하고 우리를 이용해 먹고는 마침내 우리는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상처입고 엉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Lester: 그건 불가능해요. 만약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한다면 말이죠. 우리가 진정한 사랑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저도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매우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로 사랑을 주는 것은 무언가 물건 따위를 주는 게 아닙니다. 베풀어 준다는 것은 일종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랑의 태도를 가질 수가 있어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준다는 것은 사랑으로 주는 게 아니고, 무언가 자신들이 얻을 게 있다는 생각에서 주는 것입니다. “나를 좀 봐. 내가 착한 일을 하고 있어.” 혹은 “신문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겠는 걸.” 이런 것들이죠. 보다시피 이런 타입의 사랑은 우리를 곤란에 빠지게 해요.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내가기만 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무언가 대가(對價)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자신을 먼저 우선시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우리를 끌어 내리는 거죠. Q: 레스터. 옆집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500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더 쉽지 않나요? Lester: 이 우주에서 가장 쉬운 일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이것이 제가 발견한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사랑이 무언지를 알게 되면 이게 가장 쉬운 일이 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고,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우리는 그들과 하나가 되고, 우리는 평화롭고 모든 것은 아름다울 정도로 맞아 떨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제가 지금 정의하려는 그런 방식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식의 사랑이라면 당신이 말한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어요. Q: 그러면 뭐라고 부르실 건가요? Lester: 이기심입니다. 하지만 지고의 사랑 영적인 사랑은 자기 희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이를 사랑할 때 자기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당신은, 사랑에는 일종의 상호 작용 같은 게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이 사랑하면 또 당신이 그 사랑을 고수하면 사람들이 당신을 이용해 먹지 못합니다. 당신이 사랑을 할 때면 당신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쓰고 있는 거예요.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예수와 같은 그런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당신을 해치려 하는데 당신이 그 사람에게 사랑만을 느낀다면, 그들이 자신을 해치게 되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들이 만약 계속해서 그렇게 한다면 아마 그들은 거의 스스로를 파멸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들은 당신에게 더 이상 어떻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이제껏 우리가 알아왔던 것이 아닌 내가 사랑이라 부르는 이것을 계속해서 연습을 해야만 해요. Q: 그것은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행해야 하는 그런 건 아닌 건가요? Lester: 이것은 우리가 이것을 발전시키고자 할 때 당신 안에서 성장하는 지속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랑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우선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것부터요. 할 수만 있다면 가족 구성원들 모두를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이세요.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시도해 보세요. 그러고 나면 그것을 친구들과 또 낯선 이들 또 모든 이들에게까지 적용을 해보세요.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점점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세요. Q: 어떤 면에서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죠. 하지만 수많은 태도들에 의해 겹겹이 가리워져 있는 게 아닐까요? Lester: 네. 그것은 잘못된 태도들에 의해 질식되고 있죠. 자~ 내가 말한 사랑은 모든 이들의 기본적인 천성입니다. 이것은 타고난 거예요. 그래서 쉬운 겁니다. 그 반대되는 것은 노력을 필요로 해요. 우리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참자아로부터 벗어납니다. 우리의 참자아에 사랑의 반대되는 개념들을 덧씌우고 질식시키고 있어요. Q: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것에 가깝지 않나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면 우리 자신이 너무나 멋진 느낌을 가지잖아요? Lester: 저는 이런 식의 논쟁은 하고 싶지는 않군요. 하지만 당신이 말씀하신 의미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그렇지가 않아요. Q: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나는 너무 기분이 좋죠. 너무나도 멋진 느낌이거든요. Lester: 맞아요. 당신이 사랑이 뭔지를 발견하게 된 후에는 그게 맞습니다. 사랑은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첫째로 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지극히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Q: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라 할 수도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지고 생각들이 고요하게 집중되면서 다른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래서 마음이 고요해지는? Lester: 네. 네. 그래요.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할수록 우리는 생각을 할 필요가 점점 없어집니다. 내가 만약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해야 하죠. 내가 만약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항상 세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해야만 하고 이러한 것들은 점점 더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나를 극히 방어적으로 만들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이런 방어물을 구축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이제 나는 생각 덩어리들에 불과하고 나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야만 합니다. 이제 내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내 생각들은 고요해질 수가 있어요. 마음은 평화롭게 될 것이고, 그리하면 바로 거기에 무한한 참자아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극한 기쁨이죠. Q: 다른 말로 하자면 이러한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짐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사랑의 체험이군요. 그렇습니까? Lester: 그렇습니다. Q: 한줄기 빛이 비치는 거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한한 존재와 무한한 기쁨에 우리의 생각들을 덮어 씌워버렸어요. 한계 없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에 한계라는 생각들을 덮어씌운 거죠. 그 생각들이 이 무한한 참자아를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그 생각들이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질식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각을 고요하게 하거나 모든 생각을 놓아주는 겁니다. 그리하면 이제 남는 것은 원래의 우리 자신인 무한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우리 자신으로 있는 것 이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이상하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구요. 이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였고,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보지 못하고 있죠. 우리 자신인 바로 그 무한한 영광스러운 존재는 절대적으로 완벽하며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항상 거기에 있어요.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보지 않고 그것에서 눈을 돌리고는 멀리 다른 곳을 찾아 헤매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우리의 마음을 안으로 돌려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더 많이 들여다 볼수록 우리는 우리의 참자아를 더 많이 보게 될 겁니다. 모든 것이 오직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우주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면 할수록 그렇습니다. 모든 것들이 점점 더 아귀가 맞아 들어가고 단순하고 또 단순해져서는 마침내 신이라 불리우는 ‘절대적인 단순함’에 이릅니다. 신은 지극히 단순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외의 것들은 무지 복잡하기만 하죠. 복잡함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신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것이 ‘신은 하나이고 오직 신만이 유일한 것이고 두 번째가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될까요? Q: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와 함께 함으로써 뭔가를 잃게 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죠. 하지만 만약 사랑이 완전하다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든 나는 그와 같은 것을 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느낌이 나의 느낌이고 이것은 오직 하나의 느낌이기 때문이죠. 그리하면 나는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Lester: 그것을 함께함이라고 부릅시다. 아주 좋은 단어네요. 이게 당신이 말하려는 게 맞죠? Q: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저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저는 상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누가 저를 해칠 수가 있겠어요? Lester: 그렇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사랑하고 있을 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는 오로지 너무나 멋진 기분만을 느낍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는 최고의 행복을 느낍니다. Q: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어떤 사람과 함께함을 더 느낀다면 우리는 분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건가요? Lester: 그렇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사랑은 아닙니다. 부분적인 사랑이죠. 그리고 그 사랑이 부분적일수록 행복감은 줄어듭니다. 우리가 완전히 사랑할 때 우리는 모든 존재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모든 사람이 옳다’라고 하는 너무나도 멋지고 따스한 태도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완벽만을 봅니다. 그리고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 것입니다. 우리가 미워할 때면 우리는 똑같은 세상을 정반대의 눈으로 볼 것입니다. Q: 선생님께서 준다는 것을 말씀하실 때 어떤 사물을 준다는 것인가요? 혹은 영적인 이해를 준다는 것인가요? Lester: 사랑은 내어준다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물건을 준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만약 제가 당신이 저를 좋아하기를 원해서 무언가를 준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저의 에고를 강화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가장 위대한 내어줌은 이해와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 배고픈 이에게 밥을 준다면 몇 시간 지난 후에 그는 또다시 배가 고파질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에게 어떻게 밀을 수확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면 그는 결코 다시는 배고픔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구절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도 뽐내지도 아니합니다. 사랑은 교만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아니합니다. 사랑은 옳지 않은 것에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인 것에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의 힘 1 사랑할 때 우리는 결코 상처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사랑할 때 우리는 모든 존재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좋고 모든 사람들이 옳다는 놀라울 정도로 따스한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장밋빛 색안경을 쓰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사랑할 때 세상을 그렇게 보게 됩니다. 우리가 미워할 때는 우리는 똑같은 세상을 완전히 반대로 봅니다. 그러니 사랑의 힘에 대한 이 조그마한 비밀을 배우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처음에 내가 사랑에 대해서 말을 할 때는 저는 뭐라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다지 할 말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여러 차례의 모임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묶여서 책으로 나왔어요. 그 첫 번째가 "사랑은 되돌려 받으려는 어떠한 생각도 없이 그저 주려는 느낌이다."였고 전 여기서부터 시작했어요. "사랑은 어떠한 집착도 없는 나눔이다.", "오직 사랑함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사랑이 온다." 더 많이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많은 사랑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나는 이 점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란 것을 압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서요. 심지어는 그들이 실제로 사랑받고 있을 때조차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사랑의 느낌이 우리 안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나는 멋진 느낌을 가집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멋진 느낌을 가질 겁니다. 전에 말했듯이 기분 좋게 느끼는 쪽은 사랑하는 쪽입니다. 그러니 사랑 받기를 원하는 것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사랑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관념이 다 다릅니다. 그들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현실을 창조하죠. 사랑은 어떤 행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느낌이자 태도입니다. 물론 행동을 취할 수도 있죠. 당신은 당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줄 수도 있지만 그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Q: 아이들도 사랑을 하나요? Lester: 아이들은 우리들보다 조금은 더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리 많이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수 백만 년 동안의 성향과 태도를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이제 처음 세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생은 지난 과거생의 총합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이 잔인한 세상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사랑의 반대되는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런 점에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이고 그 외에는 똑같습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사랑이고 우리는 아이들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느낌을 알고 그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자신을 말로 속일 수는 있어도 아이들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그 아이가 일생 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사랑을 발달시켜 줍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랑이 무언지를 알아야 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은 받아들임입니다. Love is Acceptance 사랑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이를 그가 자신의 방식으로 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항상 그들을 믿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기는 쉽지가 않고 당신 스스로가 이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사람이라도 그를 믿어보십시오. 그는 당신에게만큼은 정직해질 것입니다. 사랑은 평화로운 느낌입니다. 이전에 말했듯이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에게는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경계할 필요가 없고 우리는 편안해집니다. 사랑은 일체감입니다. 사랑은 다른 이와 일체감을 느낌으로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인류가 자신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서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주 강력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됨입니다. 그것은 다른 이와 하나됨으로써 내가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마치 그가 당신인 것처럼 느낍니다. 당신은 그와 하나가 되는 거죠. Q: 만약 내가 나의 존재와 오직 선함만이 나에게 온다는 것과 나는 이 사랑의 영이라는 것을 깨우친다면 왜 내가 다른 사람과 일체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Lester: 만약 당신이 그러한 것을 깨우친다면 당신은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과 하나됨을 느낍니다. 그것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Q: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됨은 영혼의 차원에서 말씀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말하는 것은 육신의 차원이죠? Lester: 내가 하나됨이라고 말할 때는 당신이 바로 나입니다. 내가 이렇게 알 때 나의 하나됨은 완벽합니다. 만약 당신이 나라면 나는 당신의 모든 생각과 느낌을 다 알게 됩니다. 완벽한 하나됨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됩니다. Q: 저는 최근에 친구나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 이런 연습들을 하는데요.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이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하면, 나는 그들의 손을 붙잡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해줍니다. 내가 이렇게 말할 때 그들이 얼마나 놀라는지를 보면, 내가 이 연습들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들은 단순하게 말하는데 나는 그들의 행운과 행복에 정말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무언가를 얻은 느낌이거든요. Lester: 사랑의 효과와 힘은 명백합니다. 한번 해보세요. 여기저기에 적용을 해보세요. 매우 강력한 효과를 틀림없이 보게 될 겁니다. Q: 전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들을 단지 그의 장점이나 혹은 나에게 좋은 점 때문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뭔가 나쁘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들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됩니다. Lester: 폴. 우리는 그 사람들을 단지 실수투성이인 인간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이 절대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그들을 무한하고 완벽한 존재로 보게 될 겁니다. 전 이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가 무한하고 완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다만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관념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은 그들이 ‘옳지 못하다’라고 본 것이고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은 상처받게 될 것입니다. Q: 하지만 만약 선생님이 그들을 완벽한 존재로 보고 그들은 자신의 올바름에서 행동하고 있고 등등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 선생님에게…, Lester: 네. 겉으로 보기에…, Q: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선생님에게 그리고 선생님의 가족에게 적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제가 보기엔 그들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Lester: 당신의 관점을 바꿔보세요. 당신의 생각을 바꿔보세요. 당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바꿔 보세요. 그리하면 즉시 외부 세상에 변화가 옵니다. Q: 저의 생각을 바꿔보라구요? 흠. Lester: 만약 당신이 바깥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내면을 바꿔야 하고 그 즉시 세상은 바로 잡히게 됩니다. 당신이 있기 원하는 그곳으로 지금 가세요. Q: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사랑의 태도를 한 사람에게뿐 아니라, 이 나라 그리고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적용하는데도 이 세상이 안 바뀐다면요?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진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요? Lester: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불만족이란 것은 오히려 장애물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가장 큰 진보가 있습니다. 전에 제가 말한 것 중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든 행동을 통해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했죠. 만약 당신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본다면 그들은 무엇을 찾고 있을 것 같습니까?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야말로 궁극입니다. 가장 큰 진보는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복잡해지기만 하고, 오늘날 우리가 더욱 행복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보라 할 수가 없습니다. Q: 전 다른 관점에서 보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이 더 낫다고 봅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요. 예를 들어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 우리는 고통을 덜 받고 있죠. 뭐 정신적인 고통이라면 좀 더 많아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Lester: 가장 큰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이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불만과 고통이 있습니다. Q: 하지만 제 생각에는요. 제가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건 아마도 이런 시대에 적응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 같은데요. Lester: 저라면 그것은 사랑의 부족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을 해보죠. 우리는 먹고 살려고 하는 것에 너무나도 바쁘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홀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죠. 30년 전에 우리가 생각하기를, ‘오~ 저런 것들을 가지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던 것들을 오늘날 우리는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이것은 행복이란 사물에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 나쁜 건 아닙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불완전해 보이는 것에서 완벽함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최고의 경지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말이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죠. 폴? Q: 글쎄요. 저는 제가 무언가를 들었을 때 그것을 바로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서 천천히…. Lester: 제가 하는 말은 당신에게 건네줄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제가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스스로 작업을 해야 하고, 당신이 제가 보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신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해도 음,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에게는 충분한 기초가 있어요. 당신이 전에 말한 것처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쉽습니다. Bob: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가 만약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만 하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든 상관이 없을 겁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제가 줄 수도 있을 것이구요. 오직 완벽만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모든 것은 완벽으로부터 올테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죠. 하지만 만약 제가 걱정이나 두려움을 가진다면 저는 완벽함과 신 외에 무언가를 보기 때문에 참자아와 분리가 되고 맙니다. Lester: 풍요로 가는 열쇠 중 하나는 바로 내어주는 정신입니다. 내가 끊임없이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계속해서 내어주고자 하는 느낌입니다. 이것이 바로 풍요로움의 비결입니다. 매순간 감사함을 느끼는 태도 또한 아주 좋습니다. Q: 그것이 사랑인가요? Bob: 감사함 같은 것은 저에게는 그다지 와닿지가 않습니다만. Lester: 그러면 그건 그만 둬도 됩니다. 다른 단어들도 많으니까요. 보세요. 제가 말한 모든 말들은 저에게는 다 같은 말들입니다. 제가 말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항상 똑같은 것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고 말하고 다시 말하는 것뿐입니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귀결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단어를 하나 붙드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렛고우하세요. Q: 어쨌든 선생님께서 사용하는 단어의 개념들은 선생님이 깨우치신 것이고 선생님만의 개념으로 말씀하시는 것이죠. Lester: 저에게 있어서 이 단어들은 모두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받아들임이고, 하나됨이고, 이해이고, 교류이고, 진리이고, 신이고, 당신이고, 나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같은 것들이고 -모든 사람이 같은 관점에서 즉 자신의 중심에서부터 그것을 볼 수 있다면 같은 것입니다. 당신의 중심, 당신의 참자아, 진짜 자기 자신은 같은 말입니다. Q: 우리의 모든 학교 교육이 우리에게 주었던 것을 우리는 이제 통합하려고 하고 있는 거군요. Lester: 바로 그 때문에 저는 교육이란 것이 실제로는 학습된 무지의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가르치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에 가더라도 행복·사랑·인생 같은 것을 배우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모든 사람들이 찾고 있는 매우 중요한 주제들이지만 이 나라 어디에도 이것에 관한 수업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Q: 아마 가르칠 만한 자격이 있는 선생님이 없어서이겠죠. Lester: 사랑은 주려고 하는 태도이지 실제로 무언가를 주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무언가를 주는 것도 포함은 되지요. 하지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사랑의 정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당신이 나를 좋아하도록 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준다면 그것은 내 안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에고입니다. Q: 그런 식으로 사랑을 구하려 하는 것이죠. Lester: 그것을 끝까지 살펴보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모든 사람이 모든 행동에서 사랑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Q: 하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이 충분하지 않아서 무언가를 주기를 망설여 한다면… Lester: 사랑은 태도입니다. 실제로 무언가를 주거나 주지 않거나 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Q: 만약 제가 심장병 재단에 돈을 기부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저는 마음으로는 불완전한 것에서도 완벽함을 보아야 하는 것이겠죠? Lester: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이 우주의 모든 원자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가장 강력한 힘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을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한 심장병 재단에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돈을 기부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태도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수혜자로 생각하고 싶어하거나 혹은 돈을 기부한다는 영광을 위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혹은 당신은 방금 말한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하면서 돈을 기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Love is the Answer to All Problems 사랑이야말로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문제이든 당신이 그것에 가능한 한 모든 사랑을 적용하는데 성공한다면 그 문제는 즉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다만 상황을 악화시키지만 말고, 그저 ‘모든 것이 괜찮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란 것을 알고 사랑을 느끼기만 하면, 당신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문제가 스스로 용해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문젯거리들이 있을 때 우리가 더욱 사랑하면 그것들이 그냥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사랑이 완전할 때 모든 문젯거리들은 즉시 용해되어 버립니다. 사랑은 대화입니다. Love is Communication 대화와 사랑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대화는 서로 생각을 나누는 것입니다. 제가 “프랭크 타라라라라” 이렇게 이야기하면 당신은 “오 예. 타라라라” 이렇게 말합니다. 보세요, 저로부터의 생각이 프랭크에게 가고 그것을 알아본 거죠. 이게 대화입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눈과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 Q: 잠깐만요 여기서 그 눈이란 이야기는 잠시 잊고 말해보면… Lester: 제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Q: 오케이.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이해한 것은 Lester: 나I 나I Q: 나I 나I Lester: 여러분들은 이것을 여러분의 생활에서 실험해볼 수가 있어요. 만약 누군가와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된다면 당신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키워가는 겁니다. 단지 대화하는 것을 연습해보세요. 사람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그것을 반복하면 그들이 뭔가를 알아 듣게 되고, 이런 식으로 계속 하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점점 더 커져 가게 됩니다. 사랑을 키우고 대화도 키우는 것이죠. 당신이 더욱 많이 사랑할수록 당신은 사람들과 더욱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신에게 적대시하는 사람과 함께 더욱 대화를 많이 나눠보세요. 당신은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사랑이 커짐에 따라 다른 일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세상에서 당신의 현실을 늘려가는 연습을 한다면 당신의 사랑 역시 커져 갈 것입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당신이 대화를 늘려 간다면 당신의 사랑 또한 커져 갈 것입니다. 혹은 반대로 우리가 더욱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Q: 사고 같은 건 없을 거구요. Lester: 해리, 만약 당신이 사랑을 완전하게 가지고 있다면 결코 사고 같은 건 없습니다. 자~ 사랑은 대화입니다. 다른 이를 지지해주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죠. 그게 사랑입니다.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그 사람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다른 이에게 ‘행복의 공식’을 줄 수가 있는 거죠. 9. 사랑의 힘 2 - Lester Levenson 사랑은 우주를 묶어주는 힘입니다. Love is the Cohesive Force of the Universe 사랑은 끌어당기고 통합시키고 만들어 세우는 힘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에 영향을 주고 모든 것에 적용이 됩니다. 의회가 세상을 바로 잡을 수는 없지만, 사랑으로 가득한 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태도를 가진 다수의 사람만이 세상을 더욱 살기 좋고 조화로운 곳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고를 인정해주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고 요구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오직 좌절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느낄 수 있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면 다른 이에 대한 집착도 없고, 그 사람을 가두어 두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그 사랑을 다른 이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랑을 더욱 함께 하고자 하고 더욱 기뻐지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갈망이 없는데 왜냐하면 갈망은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임이므로 분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결혼하기 전에 있어야 하는 것이거나 혹은 결혼 생활 중에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한 사람에게는 적용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다른 이를 증오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를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나에게 무언가를 더 해준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인간의 사랑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는 것 또한 인간의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에서는 자신에게 적대시하는 사람도 사랑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신의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입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 평등하게 여기는 마음,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이 실제로 가장 높은 경지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보게 되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깨어남입니다. 깨달음이 오기 시작할 때면 그것들은 그저 옵니다. 단지 멈추지만 말고 계속해서 오게 하면 됩니다. 깨달음은 항상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게 가장 오묘한 부분이죠. 우리가 할 일은 항상 거기에 있는 것에 대해서 눈을 뜨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개념을 렛고우 하기만 하면 그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받으려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랑을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사랑을 줌으로써 우리는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구하면 구할수록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받는 것은 일시적인 행복과 에고가 우쭐해하는 것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온전히 사랑할 때 우리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하는 개념을 가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키우는 게 아니라 단지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키울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의 천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닌 개념들 뒤에는 바로 우리 자신인 무한한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키울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단지 이 어마어마한 사랑이 감추어져 있지 않도록 미워함의 껍질을 벗겨내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미워함이란 것은 사랑이 아닌 것들 - 두려움, 질투, 시기, 무기력함, 증오, 등등을 의미하고, 진실로 우리가 사랑을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미워하는 태도를 되돌리는 것뿐입니다. Q: 우리의 원죄란 무엇인가요? Lester: 우리의 미워하는 태도입니다. 우리의 한계 지어진 생각들입니다. 모든 죄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바로 에고 센스 -나는 전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이다- 입니다. 그게 바로 인류를 가장 아래로 떨어지게 한 것입니다. Q: 그러면 예수가 언급한 죄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군요. 매춘이 아니라. Lester: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실제적으로 신을 매춘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거의 모든 일들이요. Q: “낯선 이는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친구이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Lester: 거기서 이름name 이란 것은 본성nature 이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그의 본성이 나의 존재라는 것이죠. 그는 나입니다. Q: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게 가장 큰 깨달음이 아닌가요? Lester: 언젠가는 여러분들이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곳 모두에 자기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당신이 나입니다.” 라는 느낌을 의심의 여지없이 가지게 될 겁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당신이 바로 나입니다. Q: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군요. 하지만 전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Lester: 할 수 있어요. ‘나’라는 말은 어떤 누가 사용하더라도 똑같은 나입니다. 여러분들이 최고의 상태에 올랐을 때 계속해서 나, 나, 나, 나, 나… 라고 하는 끊임없는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게 바로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알게 되는 전부입니다. - 나 I 나 I 나 I 나 I 나 I…, 존재로서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존재>는 항상 (모든 방법으로) 있는 것입니다. Beingness always is. Q: 되어감becoming은 존재being의 반대인가요? 존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Lester: 아닙니다. 되어감becoming은 단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당신은 있습니다. You are.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I am that I am. 그것은 <있음>입니다. It's an amness. Paul: 잘 모르겠습니다. 음. 선생님이 존재로 있기 전에 그게 뭐랄까 코트라 하든 재킷이라 하든 그것을 벗어야만 하는 것 아닌가요? 제 생각에 그것들은 선생님의 코트 같은 것들이죠. 그러니까 선생님의 되어감에 있어. Lester: 눈을 가리는 덮개 같은 것 말이군요. Q: 네. 눈가리개 같은 거요. 어쨌든 그것은 되어감becoming의 과정이 아닌가요? Lester: 네. 겉으로 보기에는 되어감becoming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있습니다. You are. 그러니 어떻게 당신이 <있음>으로 되어가겠어요? 당신이 되어간다는 것은 단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Paul: 그러니까 저에게는 제가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그러니까, 음 ~~ Lester: 그렇게 보입니다. 당신 말이 맞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무언가로 되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Paul: 그러니까 제 생각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저에게,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음~ 그러니까 저는 아직 거기에 가지 못했다는 거죠. Lester: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거기에 가 있지 못하다는 어리석은 한계의 관념에 사로잡혀 버린 겁니다. 당신이 바로 그 몸일 뿐이라고 생각하고서는 오직 그 몸을 통해서만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진리를 보게 된다면 모든 것이 당신이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말일 뿐입니다. 자기 자신이 무소부재함을 모르는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는 지금 여기에만 있는데.”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전 여러분들이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이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란 것을 알게 될 겁니다. Q: 전 다른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혹은 저의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요. 만약 그들이 저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들의 문제이죠. Lester: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하고 반대를 할 때가 성장하기에 좋은 기회입니다. 당신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기회인 거죠. 그 사람들이 입을 움직여서 어떤 소리를 낸다고 해서 당신이 기분 나빠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소리 내어 노래 부르는 것이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하는 것이죠. Q: 하지만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죠. Lester: 네. 사랑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죠. 영화에서 보면 사랑이란 게 그저 남자와 여자가 껴안는 것으로 나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한 사람을 껴안는 게 아니라, 우주를 껴안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사람 하나하나를 껴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세요. 이것은 아주 뛰어난 방법입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무얼 하든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세요. - 지금 당신은 이것을 사랑으로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으로 하세요. Q: 또 다른 문장이 있죠. Lester: 뭔가요? Q: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세요. Lester: 아하~ 그것도 또한 뛰어난 방법이죠. 이 둘 다 매일 매일에서 성장을 하는데 아주 뛰어난 방법입니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의 무엇이 이것을 불러 일으켰을까?” 당신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이 되는 것을 떠올리는 습관을 기를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마스터이고, 자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마스터이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일을 일으킬 수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고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매일의 일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장할 수 있는 뛰어난 2가지 방법입니다. Q: 제가 궁금한 건, 선생님의 경험에서 그러니까 선생님이 그것을 해내었을 때 선생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두 알게 될 때 어떤 단계를 밟으셨던 거죠? Harry: 어떤 열려있는 엘리베이터 통로 같은 걸 느끼셨다고 했죠? Lester: 제가 말해봐야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 그것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Frank: Harry. 지름길 같은 것은 없다구요. Lester: 당연히 지름길은 있습니다. Frank: 있다구요? Lester: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가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아는데 시간이 걸리겠어요? 그는 모든 힘을 가지고 있고, 모든 앎을 가지고 있어요. 이제 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릴까요? 1초면 될 겁니다.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고 “나는 당신입니다. I am you.”라고 마음속으로 말하세요. 한 번에 한 사람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하고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와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군요. 오늘 밤 가장 놀란 사람은 아마 저일 겁니다. 8시 10분 전만 해도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란 것을 몰랐었거든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었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죠. “무슨 이야기를 할까? 여러분들에 대해서 혹은 나에 대해서?” 그리고는 깨달았어요. “무슨 차이가 있겠어? 우리 모두는 똑같이 삶이라는 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인데.” 제 눈에는 우리 모두는 제가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을 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최고선最高善을 찾고 있습니다. 궁극에 있는 가장 높은 지고의 선함을 말이죠. 그것은 바로 행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행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서는 그 행복을 찾아 투쟁하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헤매고 있습니다. 1952년으로 돌아가서 저는 제가 그 행복의 장소를 찾았다고 선언했어요. 그건 바로 제가 있는 그 자리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찾아 수없는 세월 동안 모든 곳을 헤매는 것은 전적으로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그것은 단지 여러분이 있는 곳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 모두는 지구라고 불리는 교실에서 궁극의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것이 있지 않은 바깥에서 그것을 찾고 있어요. 만약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로 방향을 돌리기만 하면 바로 여기, 지금 내가 있는 여기, 당신이 있는 여기, 당신의 <존재>가 있는 여기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 말이죠. 제가 여러분들이 바로 그것이라 말하고 여러분들은 그렇다고 대답을 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 외의 것을 하지만 않으면 여러분은 궁극의 행복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 여러분들은 너무나도 저기 저쪽, 그 혹은 그녀 아니면 이런 저런 일들에서 그것을 찾고 있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이 무엇인지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 있는 똑같은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밖에서 찾아다니는 것을 멈추고 안으로 향하게 되면, 우리는 모든 부정적이고 끔찍한 감정들은 그저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들을 릴리스release 함으로써 놓아 보낼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감정들은 단지 무의식적인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이 모든 감정들 하나 하나는 생존하기 위해서 입력된 것일 뿐입니다. 두려움일 뿐만 아니라 생존이죠. 우리의 모든 감정들은 자동적으로 우리 자신을 생존하도록 지키기 위해 입력된 프로그램입니다. 그것들은 항상 밖으로 향해 경계하고 살아남으려고 하고, 하루 24시간 내내 우리의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활동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생각을 멈추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볼 수가 없었던 것이죠. 만약 우리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바로 거기에 <그것>이 있다고 하는 어마어마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안에서 자신이 이 우주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지게 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나는 I AM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요. 나는 I AM 모든 것이고 완전하며 완벽합니다. 나는 I AM 항상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거기에 있는 이 엄청난 달콤한 상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바로 감정feeling이라고 하는 축적되어진 <프로그램>입니다.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도록 내몰고,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어마어마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곳을 보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그저 마음을 고요하게 해서 우리 자신인 이 어마어마한 존재가 스스로 명확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을 할 수가 있을까요? 아주 간단하다고 말씀 드릴 수가 있어요. 릴리스 테크닉 release technique입니다. 이 방법은 이 지고의 상태를 성취하는데 빠르고도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우주를 완전하게 컨트롤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모든 순간순간이 놀라운 순간들이 될 때 불행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릴리스 되었을 때 바로 그것이 우리의 본래의 상태입니다. 언젠가 여러분들은 이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그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애쓰는 똑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여러분들 모두 거기에 도달하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더 빨리 가고자 한다면 여기 이 방법을 시도해 보세요. 아마 꽤 놀라실 것이라는 걸 약속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찾아다니는 모든 것들이 바로 자신이 있는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눈가리개들을 치워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시야는 흐릿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무의식적인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프로그램들을 릴리스 하면 여러분들의 시야는 분명해지고 자신이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고 완전하며 영원합니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 이후로 삶은 너무나도 편안해져서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투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들이 이 테크닉을 배우기를 권합니다. 이것은 간단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1주일 정도의 시간이면 자신 안에서 보다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계속해서 더 좋아지고 가벼워지고 행복하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 사랑이라 불리는 것이 여러분들의 타고난 본성입니다. 우주의 모든 사랑이 바로 여러분들의 본성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행복 - 여러분들의 행복 - 이 바로 사랑하는 능력과 비례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반대로 말하자면 여러분들의 모든 고통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세요. 그리하면 여러분들은 너무나도 행복하고 건강하고 풍요롭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여러분들은 사랑이 아닌 감정들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테크닉을 한번 사용해 보세요. 매우 만족하게 되시리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한번 해 보시면 좋아하게 되실 겁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가슴을 활짝 열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지게 되었군요. 이 대화가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생각을 일으키기 위해서 여러 이야기들을 해왔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지성보다 더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그 타고난 부분에 대고 이야기를 해왔단 말이죠.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들을 지혜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지혜란 지적인 지식보다 훨씬 더 높은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제가 한 말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신다면 저는 여러분들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여러분들이 일상에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제가 개발한 이 방법을 스스로 해보시길 권합니다. 이것은 릴리스 테크닉 release technique이라고 부릅니다. 이 방법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열쇠를 줄 것이고,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릴리스 테크닉은 우리 모두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붙들고 있는 한계를 제외하고는 한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무의식적인 한계들을 렛고우할 때 우리는 자신이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건강 행복 그리고 물질적 부유함 등 어떠한 방향으로도 아무런 한계가 없습니다. 릴리스 테크닉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인생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것을 연습하시고 궁극의 경지를 성취하세요. 여러분에게서 집착과 혐오를 없애세요. 언제라도 항상 사랑을 느끼세요. 당신의 존재의 진리를 발견하세요. 당신의 진정한 본성에 깨어나세요. 내적인 변형을 가져오세요. 오랜 세월 쌓아온 혼돈을 없애버리세요. 모든 면에서 풍요로워지세요. 당신의 꿈을 현실로 이루세요. 당신에게서 근심 걱정을 없애버리세요. 당신의 내면의 참자아로부터 해답을 얻으세요. 깨달음을 얻으세요. <레스터의 릴리스 테크닉> 레스터는 그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세요. Square All with Love” 라고 부른 테크닉을 제안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이 테크닉을 적용하려면 다음과 같이 하세요. 모든 사랑이 아닌 느낌이 사랑으로 바뀌어 가도록 당신 스스로를 허용하세요. 사랑이 아닌 이 느낌들은 단지 당신의 진정한 본성인 사랑을 덧씌운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릴리스할 때 진정한 당신인 사랑이 더욱 더 많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릴리스하고 싶은 사랑이 아닌 느낌이 올 때마다 그저 이렇게 물어보세요. “나는 이 느낌을 사랑으로 바꿀 수가 있을까?” 렛고우는 단지 선택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를 이러한 선택을 하도록 허용만 해준다면, 겉보기에 사랑이 아닌 모든 느낌들은 용해되어버릴 것이고, 그 뒤에서 드러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늘 존재하는 사랑이 바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랑을 초대하면 그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어떠한 다른 느낌’도 다 용해시켜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랑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이 용해시킬 수 없는 감정이란 결코 없습니다. 이 작업을 그 상황에서 당신이 처음 가졌던 느낌 대신에 오직 사랑만이 남을 때까지 계속 하십시오. 이 과정은 처음에는 시간이 꽤나 걸릴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가끔은 그 감정을 ‘놓아보낼(release)’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테크닉을 꾸준히 연습한다면 이것이 점점 더 빨라지고 점점 더 쉬워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연습을 그다지 강하지 않고 뿌리가 깊지 않은 감정부터 시작해보세요. 당신이 이 연습을 조금 접근하기 수월한 감정부터 시작하신다면, 당신은 점점 더 깊은 상처와 실망을 주는 감정까지도 이런 식으로 쉽게 놓아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Questions: 당신은 (당신을 괴롭히는) 이 문제/감정을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까? 예/아니오 당신은 이것을 릴리스할 수 있겠습니까? 예/아니오 당신은 기꺼이 그것을 릴리스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언제? 지금/나중에 10. 다른 이들을 돕는 것 Helping Others 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군요. 아시다시피 진정한 사랑 신성한 사랑은 무언가 보답으로 받겠다는 기대가 없이 그저 내어주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모든 곳에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있는 너무나도 멋진 사랑의 느낌만을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의 달콤함을 맛보고, 자연스레 신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묘사할 수 없는 기쁨에 도취될 것입니다. 신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가장 쉽고도 자연스러운 길입니다. 이 길에는 아무것도 포기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내면의 사랑의 느낌을 확장해서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감싸고 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가족, 친구들, 같은 나라의 사람들, 전세계의 사람들로 확장해 나가세요. 사랑하기 위해서 어떠한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사랑의 느낌을 확장해서 모든 사람 모든 살아있는 생명 모든 것들을 감싸 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같은 나라 전 세계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넓혀가세요. 더 이상은 넓어질 것이 없을 때까지 확장하시고는 신과 하나된 영원한 황홀경에 머무십시오! 사랑은 기본적으로 태도입니다. 이 태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감사 인사와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줄 때 그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세요. 그리하면 당신은 주는 사람이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만난 이후로 여러분들끼리 1주일마다 모임을 가졌다고 들었는데 제가 뭐 설명을 해드려야 할 게 있나요? Q: 저희들은 각자 생각들을 이야기했고 그렇게 하면서 좀 더 이해를 더 할 수 있었고 제 생각엔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Lester: 좋습니다. “좀 더 나은 이해에 도달했다.” 여기에 더 할 말이 있나 봅시다. 우리는 한계 없는 목표를 향해서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오르락 내리락 해왔지만 우리의 생활은 훨씬 더 나아지고 행복해졌죠. 하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보기에 여러분들은 생활에 적용되는 원리들을 많이 마스터해왔다고 봐요. 여러분들은 어떤 한계를 어떻게 렛고우하는지 배웠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이는 법과 생각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도 배웠죠. 또한 자신의 인생의 창조자는 바로 여러분들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당연히 이런 것들과 더불어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왔죠. 우리가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켜 갈수록 우리의 사랑도 자동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랑이 커져가면 우리의 이해와 지혜 또한 커지게 되죠. 이제까지 많은 것을 이루었고 우리의 생활이 더 행복해졌지만 하지만 이것으로 다는 아니고 완전하지는 않아요. 제가 한 말에 반대하실 분 있나요? Q: 조금도 없습니다. Lester: 좋아요.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여기서 우리가 목표를 이루기까지- 완전한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첫 번째 포인트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것을 이번 생애 안에 할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수많은 생애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번 생애에 할 수가 있는데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좀 특별한 그룹입니다. 즉 이렇게 빠르고 가장 직접적인 길을 가려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죠. 둘째로 우리는 이번 생애에 이것을 이룰 수 있는 정확한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만약 우리가 미래의 생에 다시 되돌아오고자 한다면 그것은 필요가 아니라 선택에 의해서일 것입니다. 우리들 중 다른 사람들을 돕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서 다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궁극의 상태를 성취하는 것이죠. 인생의 마스터가 되는 것은 정말로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인생의 희생자가 아니라 마스터라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우리의 환경을 원하는 대로 만드는 방법을 마스터한 후에 우리는 그 너머를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생활을 아무리 행복하게 만들더라도 그것이 일상 생활에만 관련되어 있는 한 그것은 결코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원래 모습이 ‘무한함’이니까요. 여기까지 질문이 있나요? 이제 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싶군요. 우리는 이제 좀 더 보편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다 더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지점’에까지 렛고우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편적인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보편적인 존재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이 나이다.”, “당신이 바로 나이다.”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저는 “태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으로는 많은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너무나도 많고 우리는 그것을 다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사물 이상의 것을 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얻고 있는 지혜를 나눠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는 도움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기를 원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강요하는 셈이 될 테니까요. 우리는 우리와 마주치고 우리에게 물어보는 사람들만을 도와주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서서 그런 사람들을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할 것이고, 우리가 그들에게 대답을 줄 때 우리는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들에게 올바른 대답을 주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그들을 돕는 것이고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당신에게 와서 진심으로 올바른 방향을 물어보는 이를 돕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은 나이다. You are me.”라는 것을 한 가지 아이러니는, 우리가 우리 조그마한 자아가 아니라 더욱 다른 이들을 위해 살수록 우리는 실로 스스로를 돕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것과는 다르게 봅니다. 그들은 아마 이것을 우리가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와야 할 다른 이란 없고 오직 우리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가장 큰 도움을 받습니다. 다른 이를 도움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목표에 다가서는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에게 사랑의 태도와 자비심, 다른 이와 하나됨, 그들 역시도 우리처럼 알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 등이 없다면 결코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반복하자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더 좋게 컨트롤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배운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원하는 다른 이들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장을 멈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우리 자신이 더욱 성장해갈 것입니다. 질문 있나요? Q: 저는 제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고, 또 제가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한다면 돈이나 물건들을 모아야 한다고 느끼는데요. Lester: 네 Q: 실제로는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한다는 그 생각이 제가 없애야 할 첫 번째의 것이 아닌가요? Lester: 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 겁니다. 당신은 나중에는 이렇게 느낄 거예요. 당신은 그저 모든 것을 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통제해야만 할 거에요. 이 세상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상태에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에게 물건들을 제공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우리가 그들을 진짜로 돕고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그들이 스스로의 것을 장만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재산과 그것에 따라다니는 불행함을 한번 살펴보세요. Q: 그것과 약간 비슷한 말이 있는데요. “사람들에게 그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될 힘을 주지 않고 물건만을 주는 것은 사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Lester: 그렇습니다. 상대적으로 지혜를 얻게 되면 사물들이란 보잘 것 없는 것들이죠. Q: 아다시피 우리는 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모두가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가끔은 우리는 넘어지게 됩니다만…. Lester: 우리 중 몇몇은 그렇죠. 하지만 왜 그럴까요? Q: 우리가 한계지워진 생각들을 생각해서일까요? Lester: 우리가 오직 일상의 생활 속에서만 행복해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Q: 저의 이야기를 하자면 저로서는 그렇습니다. 거래가 성사가 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저는 더 행복하거든요. Lester: 좋습니다. 다만 행위자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렛고우하고 신께서 모든 것을 하게 하세요.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행복해하십시오. Q: 왜냐하면 진실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로지 신의 완벽함뿐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손을 저어서는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죠. 그렇죠? Lester: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죠. Q: 다만 렛고우하고 신께서 모든 것을 하게 하라? Just let go and let God? Lester: 네.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왜 다만 렛고우하고 신께서 모든 것을 하게 하지 않죠? Q: 제 생각에는 제 습관이 방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만. Lester: 습관이라.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왜 습관이 당신을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거죠? 당신은 분리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거래가 있어요. 당신이 하나임the oneness을 본다면 당신은 다른 이를 위해서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을 당신 자신으로 보게 될 겁니다. Q: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다른 사람들이 뭔가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저에게 옵니다. 저에게 와서는 “나는 평화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Lester: 그것은 당신의 의식입니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세요. 그리하면 평화를 구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경험 속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Q: 선생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심을 말씀하시는데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의해 주실 수 있나요? Lester: 사랑은 당신이 사랑할 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랑이란 다른 이를 이해하고 다른 이와 하나되면서 내어주려는 태도입니다. 자비심이란 다른 이들이 경험하는 것을, 그들의 고통을 공유하지는 않으면서도 더 나아지기를 소망하는 이해입니다. Q: 내가 ‘한계지워진 것에서 벗어난 느낌’을 스스로 원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이것을 느끼기를 원하는 것이 사랑이겠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Q: 우리 그룹은 꽤 높은 단계에까지 노력해왔습니다. Lester: 그래요. 이제 삶이 더 행복해졌으니 이제부터 우리가 무얼 해야 할까요? 다음 단계는 보다 더 넓게 확장된 삶 -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신을 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을 느끼세요. 왜냐하면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당신인 ‘하나임’의 존재뿐이니까요. 오직 신만이 존재하고 신이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 나의 존재 그것이 신입니다! 다른 이를 돕지 않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그들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 어떤 면이란 일반적으로 생각을 통해서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어떠한 좋은 생각이나 소망이 아닌 것은 그들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모든 마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소위 말하는 보상의 법칙 즉 카르마는 생각이 행동으로 이루어졌든 그렇지 않든 생각에 의해서 영향을 받습니다. 당신이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은, 당신의 행동이 아니라 당신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당신의 태도에 더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할 때 당신이 행동을 하든 하지 않든 당신은 매우 건설적입니다. 그저 사랑만을 느끼면 당신의 생각은 자연히 사랑의 생각이 될 것입니다. 생각은 행동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생각은 행동의 근원입니다. 생각이 행동을 촉발시키는 것이고, 생각이 행동에 앞서는 것이고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에고가 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참자아를 알수록 다른 이를 돕고자 하는 자비심과 바람이 더 커집니다. 당신이 더 많이 사랑할수록 당신은 세상을 더 돕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더욱 키워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게 됩니다. 당신의 생각의 힘이 세상의 영적인 진보를 돕거나 해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당신 스스로를 돕거나 해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이 나아지도록 돕지 않는다면 세상이 뒷걸음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뛰어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누군가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을 때 누구도 상처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로 하여금 당신이 돕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할 때, 그들은 의무감에서 감사를 돌려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것도 모를 때는 감사는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무한함이 되돌아와서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주고 당신이 그것을 되돌려 준다면, 당신은 내가 무한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을 가로막는 셈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도울 때 집착이 없고, 그 배후에 에고의 동기가 없다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동굴 안에 앉아 있는 깨달은 존재는 혼자 있더라도 사랑과 평화의 강력한 생각을 내보냄으로써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의 완벽을 보는 것만큼 다른 이를 도우는데 있어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동정심이란 신께서 참새는 돌보시더라도 인간은 돌보시지 않는다고 하는 거짓말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동정심은 “당신은 스스로를 도울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선행위는 무언가를 주고 소유한다는 차원의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고 필요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른 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내어주는 자는 축복받은 자이니 그는 더욱 행복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진심에서 그리 한다면요. 당신이 스스로를 바르게 하는 것만큼 다른 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다른 이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다른 이를 도우려고 애쓰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 자신을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다른 이를 돕기 위해서 특별한 훈련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존재의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차원에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스승입니다. 매일 매일의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내어줌은 사물에 있지 않습니다. 가장 큰 내어줌은 당신의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돈을 주는 것은 (뱀과 로프의 비유에서) 뱀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가장 큰 내어줌은 자신을 지켜야 할 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해를 주는 것입니다. 내어줌의 태도를 가지십시오. 당신이 얼마나 주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태도입니다. 어떤 이들은 병원 등에 기부를 하고는 자기 이름을 내세웁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보답이란 겨우 그 정도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는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당신이 아니라 당신 안에 있는 신께서 하신다는 느낌을 가지고 하십시오. 주는 사람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받는 사람이 “천만에요.”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주는 사람이 더욱 축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에고가 적을수록 우리는 다른 이들의 완벽함을 더욱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들의 완벽함을 아는 만큼 당신은 그들의 완벽함을 지지해줄 수가 있습니다. 완벽하게 내어주는 사람은 항상 그가 원하는 무엇이든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의 차원을 높임으로써 가장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더욱 높이 비상할수록 당신은 모든 이를 향상시킵니다. 당신이 선한 생각들을 가질 때,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생각을 보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이들을 돕고 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까? 이기심이 없는 것은 그 개인의 존재의 상태를 가늠하는 뛰어난 척도입니다. 내어줌 또한 훌륭한 척도입니다. 개인의 ‘존재 상태’는 그가 내어주려는 느낌과 다른 이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과 비례합니다. 마스터가 그의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던가요? 마스터는 항상 줍니다. 우리의 내어주는 마음은 모든 이에게 동등해야 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만 주는 것은 에고에 의한 것입니다. 마스터는 모든 이에게 동등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당신은 그와 당신을 동등하게 봐야 합니다. 즉 당신이 영적으로 더 높다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마스터로 볼 것입니다. 만약 모든 이들이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산다면, 그것은 이 세상을 바로 잡을 것이고 유토피아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다른 이들을 위해서만 살 때 우리는 최고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다른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혹은 당신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관계여야만 합니다. 어떠한 결과에 대한 욕망이 없이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11. 사랑 내어줌 그리고 그리스도 의식 이제 크리스마스 시즌이기도 하니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듣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아니면 제가 그냥 이야기를 할까요? 네 좋습니다. 크리스마스 Christ-mass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때이고 그리스도를 기리는 미사가 집전되는 때이죠. 제가 성경을 읽을 때는 제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읽는 것이지 예전에 읽었던 경험이나 혹은 다른 사람이 이야기한 것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이며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한 예수에 대한 칭호일 뿐입니다. 제 생각에 만약 여러분들이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아마 그의 말과 성경의 의미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가 “내가 길이요.”라고 말할 때 이것은 예수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제가 그리스도와 예수가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설명하는 게 좋겠군요. 예수는 이 지구에 약 2천년 전에 태어난 한 남자였으며, 정의로움을 통해 혹은 세상에서 정의롭게 행함으로써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 모두 각자가 따라야 할 불멸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죽어야만 합니다. 즉 우리의 의식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극복하고 그 자리에 오직 영원과 불멸을 자리잡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선택했고 부활함으로써 불멸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그는 길을 보여주는 자였으며, 그 자신의 삶을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는 것에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리스도 의식은 우리가 세상에 매여 있을 때 보는 이 모든 엉망진창인 잡동사니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의식입니다.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비참함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것은 바로 이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함을 통해서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의식이 이 모든 곤란과 어려움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고 우리를 우리의 불멸에 이르게 해줍니다. 우리가 만약 진정으로 예수와 같아지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가 지나온 모든 시련과 고난을 통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되거나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하여 그리스도가 되었을 때 우리는 모든 곤란과 비참함에서 벗어나 오직 무한한 기쁨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란 인간 예수가 성취한 상태입니다. 그는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했으며 그는 단지 우리에게 실제적인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성경을 읽으실 때 이 두 가지 의미를 잘 구별하신다면 훨씬 더 깊이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내어줌givingness과 모든 이에게 베푸는 선함으로 기억되어집니다. 내어줌에 굳건하게 자리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기쁨을 경험하고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내어줌의 정신에 있습니다. 당신이 돌이켜 생각해보신다면 당신이 내어줄 때 가장 기뻤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과 “내어줌giving”은 같은 말입니다. 내어줌의 정신the spirit of givingness에 기쁨의 비밀이 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줄 때 우리는 무한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어줌의 태도이자 정신이지 물건 따위를 내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선물 따위나 주고 받는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고 또 주고 주지만 그러나 이런 것은 내어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로지 내어줌의 태도와 정신에 기쁨이 거하는 것입니다.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내어줌의 정신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아주 멋진 일이죠. 우리는 매일 매일을 크리스마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완전히 깨닫게 되면 우리는 바로 이것만을 합니다. 단 한순간도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주기를 원하지 않을 때가 없을 겁니다. Q: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물건들을 주거나 자신을 내어준다는 것인가요? Lester: 글쎄요. 우리가 만약 조건을 붙이거나 의구심을 가지거나 비난을 하면서 주는 것이라면 거의 기쁨은 없죠. 하지만 우리가 온전히 내어줄 때 우리는 가장 큰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기쁨의 비밀은 이러한 내어줌의 정신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누군가에게 지혜를 준다면 당신은 그에게 단지 하나를 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내어줌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지혜를 주는 것이고, 이해를 주는 것이며,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것에 관한 지식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해볼까요? 만약 당신이 배가 고픈 누군가에게 한 끼 식사를 주어서 그 순간 그는 배불리 먹고 만족해서는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난 후 그는 또 다른 식사를 원할 것이고 아마 그 후로도 수천 끼의 식사를 원하게 되겠죠. 그러니 당신이 그에게 한 끼 식사를 준 것이 얼마나 큰 것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그에게 밀을 수확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 그는 영원히 굶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에게 그가 원하는 식사를 어떻게 하면 늘 가질 수 있는지 지식을 전해준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그에게 6만 끼의 식사를 제공하게 된 셈이죠! 그러니 이해와 지혜를 주는 것이 가장 큰 내어줌입니다. 이러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해를 당신에게 이것을 요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십시오. 이것은 당신의 그 조그마한 자아에서 벗어나 다른 이에게 확장된다는 의미에서 훌륭합니다. 이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해를 돕는 것이 지금부터 우리들의 생활 방식이 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당신이 빠르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무엇보다 큰 기쁨을 줄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좋은 선물입니다. 당신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선물 말이죠. 제 생각에 우리는 단지 물건을 주는 그런 것 이상의 지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혜와 이해를 주도록 해야 합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나요. 릴? Q: 네 Q: 이것은 오직 우리가 요청받을 때에만 해야 하는 건가요? Lester: 네.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이해와 지식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러한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지 우리의 에고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난 니가 알아야만 하는 것을 알고 있다구.” 보셨죠? “나”라는 것이 “너”에게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말하고 있어요. 그가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단지 당신의 에고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 상대가 요구할 때만 그것이 주어져야 하는 거겠죠. Q: 그러면 우리가 충분히 성숙해져서 다른 이들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해줄 때도 있을 수 있는 건가요? Lester: 네. 그렇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에고를 놓아 보낼수록 당신은 자동적으로 더욱 더 다른 이들과 튜닝을 하게 됩니다. 당신의 에고가 적을수록 당신은 다른 이들과 더욱 더 공명하게 되죠. 당신은 그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될 상태에 이르게 될 겁니다. 당신은 아마도 당신에게 요청하지만 진정으로 도움을 원하지는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런 도움이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지만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아차리려면 약간의 경험이 필요하죠. 우리가 성장해갈수록 즉 우리가 우리의 에고를 놓아보낼수록 우리는 다른 이들과 더욱 공명하게 되고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들을 돕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상황이더라도 항상 늘 도움을 주게 됩니다. 그 사람은 마트의 직원이 될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항상 계속되는 어떤 내어줌이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지혜로운 말일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친절한 말 한마디이거나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도움으로써 당신이 상처받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정말 가장 큰 내어줌이죠. 질문 있으신가요? Q: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떤 것인가요? Lester: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의 재림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의 재림은 그가 물리적 육체를 가지고 이 지구상에 돌아와 땅을 걸어다닐 때가 되겠죠. 그리고 제가 믿기에는 그 육신은 바로 그가 마지막으로 땅을 밟았던 바로 그 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할 때입니다. 우리 모임이 예수와 친밀하다는 것은 매우 운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모여 예수에 관한 명상을 할 때 분명히 그가 바로 이 방으로 와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 주위를 걸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임에 예수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우리를 돕고자 한다는 중요하고도 명백한 징표이죠. 그 힘은 우리가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힘에는 강제가 없습니다. 예수는 오직 우리가 그에게 활짝 열려 있을 때에만 자신의 힘을 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열려 있을 때면 언제라도 그는 준비가 되어 있고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저 그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우리가 이번 생애에 끝까지 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스승과 이러한 직접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요즘 시대에는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스승과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 중 이번 생애에 이것을 해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끝까지 이 길을 갈 수만 있다면 말이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 모두 누구나가 이번 생애에 해낼 수가 있습니다. Q: 그 “해낸다 making it”라는 게 뭘 의미하는 거죠?? Lester: 그리스도 의식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마스터가 된다는 것이죠. 마스터이란 무엇입니까? 마스터란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을 지배하는 자이며, 자신의 마음을 마스터한 사람입니다. 마스터란 바로 자신의 내부에서 그 자신의 무한함을 보는 사람입니다. 마스터란 모든 제한된 생각을 넘어선 자이며 이 한계 지우는 장막을 찢어버린 영원히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Q: 우리가 그걸 이번 생애에 해낼 수가 있다는 거죠? Lester: 네. 그렇고 말고요. 당신은 그 무엇보다도 그것을 원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원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그것을 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리할 때 당신은 스승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죽기 전에 해내지 못한다면 소위 죽음이라 불리우는 그 순간에 스승들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해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이번 생애 동안의 모든 생각과 전생의 모든 생각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가 있게 됩니다. 스승이 우리와 하나되어 있으므로 그는 자신을 마치 우리처럼 볼 수가 있어서, 우리의 마음에 생각이 떠오르면 그의 마음에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그 생각을 되돌릴undo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 생각들이 완전히 되돌려지면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거죠! Q: 우리가 “나는 한계지워진 존재가 아니야. 난 이걸 받아들이지 않아. 난 한계지워진 게 아니야.”라고 말할 때 이게 바로 우리가 매일 하는 그것이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든 생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것에도 어떠한 생각에도 한계지워져서는 안됩니다. Q: 하지만 너무 비약적이진 않은가요? 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미친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거든요. Lester: 전 여러분에게 이 길의 전체를 보여주고자 하는 겁니다.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에게 이 길의 전체적인 지도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전 여러분에게 “Bob, 오늘 당장 이걸 해치우세요.”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만약 당신이 전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를 갖게 된다면 당신 스스로 그것을 해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저처럼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일단 당신이 지도를 갖게 되면 당신이 할 일이란 그걸 따라가는 겁니다. 전 당신에게 완전한 지도 즉 완전한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주고자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당신이 실제로 그것을 성취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Q: 그러면 에고란 단지 내가 이것이 아니라는 느낌일 뿐이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에고란 전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이란 느낌일 뿐이고, 그런 분리의 느낌이 있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필요하죠, Q: 그게 한계지워진 것이란 말씀이죠? Lester: 만약 제가 몸을 가지고 있고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수천 가지의 한계를 가지게 됩니다. 나는 몸을 먹여야만 하고 그것을 돌봐줘야만 하죠. 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나의 감정은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끝없이 계속 되어지죠. 당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으세요. 당신은 당신이 몸이 아니고 에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무한이 되십시오. Q: 예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Lester: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 의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죠.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가 믿은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하려고 노력을 한다면, 예수는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예수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그와 접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만큼 예수와 접촉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를 물리적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물리적 육신을 가진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를 비젼이나 꿈에서 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그런 방식으로 예수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를 지금 이 순간의 현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이 순간 그가 현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게 당신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