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는 육류는 거의 인위적으로 도살된
짐승들의 고기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도살되는 순간 모든 동물들은 공포와 원망하는 감정을
엄청난 파장으로 증폭시킨 채 죽게 된다.
그러한 파장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모든 세포조직에
그대로 새겨진다.
그 짐승의 생명이 끊어져 몸뚱이가 죽은 시신이
되어 있는 상태라 할지라도 그 세포 속에는 공포와
원심(怨心)의 파장이 그대로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모든 물질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원자라는 입자가 남는다.
그 원자 속에는 원자핵이 있고, 다시 그 원자핵을
분해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의 파장이다.
즉, 진동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현대과학이
규명해 낸 물질의 실체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져지는 모든 물체가
근본적으로는 아무런 형체가 없는 파장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깨달은 이들은, 보여지고
만져지는 현실의 실체라 부르는 것들도
이미 공(空)이라 하지 않았던가.
물론 큰 깨달음의 공은 다른 차원의 표현이긴 하지만….
짐승이 죽을 때 발산하는 감정은 파장이기 때문에
그 짐승의 몸을 형성하고 있는 파장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파장은 평온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부정적이고 거친 파장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게 독소로 변한 파장이 죽은 짐승의 세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 고기를 섭취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 영향이 육체에 어떤 병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인격형성과 성품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민족이 도전적이고 정복적이고
물질적인 반면에, 채식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은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내면적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종교적이며, 정신적인 성향을 띠고 있음을
우린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수행은 계를 지킴으로써 시작된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큰 지혜를 얻을 때까지
계를 지켜 간다는 것은 수행자로서의 본분이며
결코 스스로 받아들인 계마저도 지킬 수 없다면
그 수행자는 이미 지혜의 삶과는 거리가 먼
자기합리화의 아상(我相)의 사슬에 매여있는
저급한 영혼임에 분명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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