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따져 보려면
아무래도 내가 죽는 순간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세상에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현실의
모든 것들을 다 떼어내고 진실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바라 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성인들은 여러 나라 다른 지방에서 다른 나라 말로
한결 같이 같은 내용의 집착을 버리라고 조언했을까?
내가 과연 이 몸뚱아리이고 이 화내고 즐거워 하고
이것, 저것 잘 따지는 이성적이고, 감정으로만
반응하는 감정의 동물인 존재일 뿐이란 말인가?
내가 임종을 맞이 한 순간을 세밀하게 상상해보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훨씬 더 가치있고 깊이 있으며,
상위의 생각 이전의 생각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경전들에는 그것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어떤 때에는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알아 볼 수 없도록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지금 당장 내가 죽는 순간이라서, 단 5분 후에 죽어야
하는 심각한 순간이라면, 나는 1분, 1초라도 우주를
맨처음 창조하여 만들었던 그 유일한 신만을 생각하고
그에게 다시 되돌아 갈 것을 간절하게 기도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왜 그것을 돌아갔다고 표현 하겠는가?
본인이 태어나기 전에 원래 위치했던 그 곳, 바로
천국이라고 말하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깨달음이나 거듭남을 체험한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은 죽음을 결코 두렵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이미 그곳에 가 보았고 하루에도 몇번씩이라도
그곳을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불교에서는 '여래'라고 표현한 것 같다.
명상이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유일한 신을 생각하고, 그 상태를 알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무엇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명상이 아니라,
그저 세상에 대한 집착, 일에 집중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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