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에서 톨스토이는 동양의 우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길을 가던 나그네가 맹수의 습격을 받자
우물 속으로 피해 들어가는데, 우물 아래에서는
용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그를 삼켜 버릴 듯이
노려보고 있다.
진퇴양난에 빠진 나그네는 틈새에 자라고 있는
나무 넝쿨을 잡고 버티지만, 이번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쥐 두 마리가 나타나서 그 풀을 갉아먹는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그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관목 잎사귀에서 흘러내리는
꿀을 핥아먹는다.
불교의『열반경』에서 인용한 이 이야기는 인간
생활의 어리석음을 말해 주는 비유로서,
"나그네는 인간이고 우물은 가정이며 맹수는
죽음의 신"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죽음의 맹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생이라는 가지에 매달려 있다.
죽음은 인간을 위협하고 두려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실의 안락함에 안주한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죽음의 공포를 회피하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죽음 자체로부터의 벗어남이 될 수는 없다.
벌꿀로 상징되는 오욕향락의 세계에 탐닉함으로써
인간은 인생 무상을 잊고 죽음을 잊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다.
톨스토이가 이 이야기를 인용한 것은 동양의 우화를
통해 자신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톨스토이 역시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유일한 진리로서의
죽음에 맞닥뜨렸고, 가정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의 꿀이
더 이상 그를 위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음의 공포를
적극적으로 극복해야만 했다.
우물 안에 매달인 채 벌꿀을 핥고 있는 나그네의 어리석음을
더 이상 반복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이다.
모든 인간은 가능한 모든 위기에 사로잡혀 있으며 시시각각
죽어 가고 있지만, 지나치게 구원에 집착하기 때문에 오히려
구원을 받지 못한다.
구원은 결국 인간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이 불교의 우화를 통해 톨스토이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내면적 구원을 찾는 데 도움을 얻는다.
(박혜경, ['구도자' 톨스토이와 동양 사상](『서양문학에 비친 동양의 사상』, 예문서원, 200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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