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영혼만이 신과 결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신은 지금 육체라는 이 에너지 통로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신을 발견하라
지금 신을 찾지 못한다면
그대 갈 곳은 죽음의 도시뿐이다
그러므로 까비르에 있어 신에 대한
사랑이란 현재적이며 구체적이다.
영적인 것의 구체적 체험으로서
감각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밥 먹고 일하는 하나 하나의 일상의
삶을 통하여 체험되고 구체화되어야
하는 그런 사랑을 의미한다.
신에 대한 까비르의 사랑은 정신적인
것도 육체적인 것도 아니다.
차라리 이 양자를 모두 포함하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이성적인 사랑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마침내 찾는 자도 사라지고
찾는 신마저도 사라져 버림으로써
신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 〈내면화〉를 통하여 신을 철저히
보편화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까비르의 위대함이다.
내적인 깨달음에의 체험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회교도와 유태교 그리고
기독교도들은 신을 추상화해 버렸다.
그리고 불교도들은 신의 외연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절대성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잃어 버렸다.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언어를 잃어 버렸다.
그러나 까비르는 이 양자를 모두 극복하고 있다.
그는 사랑을 통해서, 영혼과 육체의 절대적인
헌신을 통해서 깨달음의 체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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