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상가는 명상을 할수록 더욱 괴팍해져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들과 멀어져서도 안 된다.
내적인 면에 관해서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외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똑같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수행자이니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전혀 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하겠다."고 서원을 했는데
한 두 사람조차 구할 수 없다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감히 성불을 성취할 수가 있겠는가?
명상가의 수행 목적은 더욱 사랑이 넘치고
인내심이 있고 고상해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거나 명상을 수행하는
것만이 수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도 당연히 수행인 것이다.
그러나 외적인 면에서 행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사랑'은 하나의 수행방법인 것이며, '용서'와
'관용' 역시 하나의 아주 좋은 수행방법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다른 방법으로서의 수행방법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다면 자신을 삼계 이내에 묶어
두고 자유로울 수 없게 할 것이니, 왜냐하면,
내가 우주의 자연스런 존재의 체계에 개입을
했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바퀴벌레를 코끼리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지렁이를 나비가 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니,
이것은 우주 법칙에도 어긋나고 우스운 일이며,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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