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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청담 스님, 견성과 파계의 사이

by 법천선생 2024. 7. 2.

오대산 속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한 장의 편지가 전달되어 왔다.

 

그 편지는 진주의 불교신도회에서 정혜사로

보낸 것을 정혜사에서 다시 오대산으로 부친

것이었다.

 

내용인즉 진주로 내려와서 훌륭한 부처님의

법을 들여달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미혹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거느린 채로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과감히 뿌리치고 정진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망설임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다시 정혜사의 만공스님으로부터 편지가 날아왔다.

 

부처님의 법을 설하여 주라는 명령이었다.

할 수 없이 행장을 차리고 길을 떠났다.

 

불심이 대단한 진주 시민들은 <내 고장의 자랑 운운>

한 벽보를 사방에 붙이고 나를 맞이해주었다.

법회가 있던 날의 연회사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에 나의 설법이

거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그 모임은 소기의 성과를 충분히 거두었다.

왜냐하면 그 무렵의 모임이란 무엇을 듣고 깨우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 이야기하였다는

데에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나로서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법회가 끝난 뒤에

나를 찾아와 내 장삼자락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님의 모습이었다.

그때 그분의 눈물엔 많은 감회가 어려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아들이 이 만큼 되었구나 하는 데서 오는

감격과 이미 당신의 곁을 떠난 아들을 보는 모정이

얽혀있었을 것이다.

 

우는 어머니를 보는 아들의 심사란 켤코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속가를 떠났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의 아들임에는

분명한 사실이고, 그것을 강조하면서 어머니로서의

자기를 나타내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그런 복잡한 심정의 움직임에는 아마도 나는 떨어져

갔었던 듯하다.

 

비록 인연을 끊었다고 할지라도 그 옛집에 하루쯤 쉬어

가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냐고 하는 어머님의 말에 설복

당했었고, 그리하여 어머님의 뒤를 따라 그 옛집을 찾아가

거기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님의 간곡한 부탁, '네가 중이 된 것도 좋지만

집안의 혈통만은 이어야 되지 않느냐'는 청천벽락과 같은

부탁을 받아들여야 했었다.

 

이혼한 뒤에도 집에 남아 어머니를 봉양하는 아내와 그들이

처하고 있는 험한 생활이 나로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도록

강압되었던 것이다.

 

나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내의 방문을 열었을 때의 흙내와

땀에 절은 여인의 냄새, 그것은 유혹하는 요기스러운 것이기

보다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짙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기억한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그의 죄스러운 눈....

왜 그녀가 죄스러워야 했을까?

 

죄스런 것은 오히려 내 편이 었을 것이고, 그녀는 당연한 한

여인으로서 나를 요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나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계시킨다는 죄책감에

떨고 있었다.

나는 슬프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슬프게 접하였다.

그리고 날이 밝아오기 전에 집을 나와 동구길을 걸었다.

사위가 너무나 어둡기만 했다. 그런 시간에 그 회오와 슬픔으로

부터 보는 자연의 흑색은 너무도 아름답고 가슴 깊이 짙은

슬픔으로 젖어 오는 것이었다.

 

마치 수려한 한편의 산수화가 우리들의 가슴에 끼쳐주는 감동과

같았다.

 

그리고 다시 1년의 세월이 흘러산 뒤에 나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아내로부터 보내 온 여식을 낳았다는 편지를 받아 읽었다.

 

나는 그 죄업을 말없이 받아들여야 했었고, 그것을 씻기 위하여

다시 적멸보궁으로 들어가 백일참회를 했었다.

 

그때 태어난 그 파계의 씨는 20의 젊은 나이로 삭발을 하고

나의 길을 좇아와 수도정진한 결과, 지금은 전국 비구니 강원에서

법설을 가르치고 있는 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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