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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개념/명상법칙정리

나부산 공섬선사의 현관 타좌식

by 법천선생 2024. 11. 29.

좌명(座銘)

우리의 道는 넓고도 간략하니 정성과 공경과 믿음,

삼자(三字)라. 잡념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달음이

늦음을 걱정할 것이다. 그 사람이 아니매 전한다면 반드시 재앙을 받을 것이요,

사람을 만나 전하지 아니함도 또한 재앙을 받는 것은 옛부터의 계율이다.

후세에 인연이 있어 이 책을 얻는 자는 삼가 애써 지키고 그릇된 사람이

보지 않게 할지니라. 정(精)이 온전하면 욕망이 없어지고, 기(氣)가 온전하

면 음식에 대한 생각이 사라질 것이며, 신(神)이 온전하면 잠 또한 사라질 것이다.

도를 배움에 먼저 타좌(打坐)를 배우는 것은 고성(古聖)의 명훈(明訓)이다.

일왈(一曰) 족결가부(足結跏趺)요,

양 발을 십자(十字)로 얽어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합하여 십자 가운데에 편안히 놓는다.

이왈(二曰) 두정요직(頭正腰直)이요,

머리는 원신본거지궁(元神本居之宮)이요, 만신조회지향(萬神朝會之鄕)이니

, 바르게 함이 마땅하고 허리는 일신(一身)의 지주(砥柱)인 고로 허리를 뽑아올려

능히 정신을 깨끗이 하니 곧게 세움이 마땅하다.

삼왈(三曰) 수시반청(收視返聽)이요,

눈은 신(神)의 거울인고로 눈이 이르는 곳에 마음 또한 이르른다.

먼저 눈과 귀로 속으로 기혈(氣穴)을 비춤으로써 바깥의 경계에 관여하지 않게 하나니

이른바 눈으로 색을 봄이 없으면 애증(愛憎)을 벗어남이요, 귀로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시비(是非)를 끊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왈(四曰) 망어조식(忘語調息)이요,

망어(忘語)와 조식(調息)을 하지 아니한즉 안으로 삼보(三寶)가 온전하지 못하다.

고로 코와 입을 가볍게 닫고 깊이 속을 지켜 언어를 잊고 호흡을 조절하여야 한다.

폐식(閉息)하여 참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하면 마실 때에 약방일진(略放一陳)하고 곧 다시 폐(閉)한다.

오왈(五曰) 공정정정(空定正靜)이요,

공(空)이란 안으로 생각이 없으며 밖으로 걸림이 없어 마음과 더불어

뜻이 모인즉 자연히 정(定)해짐이요, 정(正)이란 마음 속으로 삿됨이 없으며

외신(外身) 또한 기울어짐이 없어 신(神)과 더불어 기(氣)가 응결한즉 자연히 정(靜)해진다.

육왈(六曰) 주의현관(注意玄關)이요,

이때에 천일생수법(天一生水法)을 써서 현관1)에 주의를 집중한다. 뜻이란

마음이 발하는 것이니 뜻(意)이 머무르면 신(神)이 머무르고 신이 머무르면 기(氣)가 머물게 된다.

즉 응신(凝神)하여 기혈을 반조(返照)하여 잠시도 떠나지 아니함을 말한다.

칠왈(七曰) 신물착의(愼勿着意)요,

집착도 아니하고 떠나지도 아니하며,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이하여

문화(文火)의 진의(眞意)2)로 상용(常用)하니 이와 같이 지켜야 가(可)하다. 만약 지나치게

의식을 사용한즉 후천에 떨어져 이익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손해가 있게 된다.

고로 계물착(戒勿着,경계하여 집착하지 않음)이라 하였다.

팔왈(八曰) 체기잡념(切忌雜念)이요,

앉는다는 것은 '공(空)' 자로 주(主)를 삼으니 만약 진공(眞空)을 알지 못하고 텅 빈 것으로만

主를 삼는다면 문득 완공(頑空)에 떨어지게 된다. 반드시 속으로 수련에 따른

경색지견(景色之見)이 있으되 없는 것과 같아야 이것을 진공(眞空)이라 한다. 잡념으로

인하여 마음이 들뜨게 되는 것을 제일로 꺼린다.

구왈(九曰) 사회혈심(死灰血心)이요,

단련하여 마음이 죽은즉 신(神)이 살아나는 것이니,

대개 혈심(血心)은 음(陰)에 속하고 원신(元神)은 양(陽)에 속한다. 양이 성한즉

음이 쇠하는 고로 좌시(坐時)에 반드시 허정(虛靜)을 요(要)한다. 몸이 무위에 들어 동(動)과 정(靜) 양쪽을

다 잊어 내외(內外)가 합일하여야 얻는 바가 있게 된다.

십왈(十曰) 영내대기(寧耐待時)라.

꾸준하게 하여 성인의 기틀을 만드는 것이니, 빨리 이루고자 하면 도달하지 못한다.

극강한 인내력으로 의연히 지키어 직도수락 연후(直到水落 然後, 물이 수직으로

떨어진 연후)에 석출야(石出也, 돌이 드러난다)이니, 텅 빈 가운데 양생(陽生) 활자시(活子時)를 기다려야 한다

. 후일의 성공이 모두 영내(寧耐, 편안하게 참음) 두 글자에 달려 있다.

총론(總論)

무릇 도라는 것은 눈으로 수련하는 것(眼煉)이다. 신(神)이 눈에서 발하여 정(精), 기(氣), 신(神)을 이끌어 가니

이른바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바로 이것이다. 마음은 주재자이니 대개 마음이 곧 일신의 주인이요,

의(意)는 정, 기, 신의 장군(帥)이다. 이를 깨달아 수련의 종지(宗旨)를 얻어야 한다.

이상의 타좌법은 매일 두세 번 편리한 대로 행할 것이니, 매번 앉을 때마다 오래 앉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삼아 능히 공을 이루게 된다. 앉아서 고요함에 도달하여 혀로는 가볍게 입천장에 붙여

맑은 것은 위로 올리고 탁한 것은 내려서 감로가 입안에 가득해지거든 단전으로 삼켜야 한다.

삼킬 때에는 입 속의 탁기를 살짝 배출하여 후천의 탁기가 몸 속에 머물러 환란을 짓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좌선을 마칠 때에 양 손을 비벼 열을 발생시켜서 눈을 일곱 번 쓰다듬고 주먹을 펴고 다리를 흔들어

운동하여 근육과 경락을 편안하게 하여 나쁜 기운을 내보내어서 골수에 잠기지 않도록 한다.

좌선하는 처소는 반드시 밀실에 휘장을 드리워 남이 볼 수 없게 하여서 삼보가 노출되어 마(魔)가

탐내(貪來)하지 못하도록 한다. 하수(下手)에 들어 통관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에 배부르거나 배가 고플 경우에는

타좌를 행하지 말아야 하고 마음을 어질게 하여 살생치 말 것이며, 사람들의 더러운 탁기를 피하며

죽은 것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총요(總要)

항상 뜻을 수련에 머물러 위의 사항들을 잊지 않도록 한다. 그런 후에 관이 열리게 될 것이니

진력(眞力)이 쌓여 기가 통하고 신이 돌아올 때면 자연히 관(關)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관을 여는 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만약 집착함이 오래되면 관을 열 수 없게 된다. 관이 개통된즉 상하의

기가 자유로이 왕래하여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후에 한결같이 현관을 지킨즉 수화기제를

이루어 자연히 기가 운행되며 모든 병이 다 사라진다.

이것이 통관 공부의 초보이니 그 법이 경안관조지이무착(輕安觀照知而勿着, 가볍고 편안하게 관하여

비추는 것을 알고 집착을 금한다) 팔자(八字)에 있으니, 이것이 지극히 긴요한 진결(眞訣)이 된다.

내가 부지런히 행한 지 육칠 개월에 관이 열리었다.

고선사(古先師) 왈(曰) 하루하루 장생법을 행하여 입을 닫고 단정히 앉아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하여

신과 뜻을 정하게 한다(存神定意).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아니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여

일심으로 지키며, 숨을 면면히 하여 끊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게 한다.

영기(榮氣)와 위기(衛氣)가 자연히 유통하며 수화(水火)가 오르고 내리어 참된 영(靈)이 살아나

장생(長生)을 얻음이 어렵지만은 않다.

또 말하기를 도를 닦음에 먼저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니, 반드시 그 마음을 항복 받고

사대(四大,지수화풍)가 모두 공(空)하여야 바야흐로 도를 얻었다 할 것이다. 대개 주(酒), 색(色), 재(材)

세 가지를 파할 것이요, 성냄을 가장 경계하여 한다. 참는 것이 삼보를 해함을 막는 것이 된다.

대개 천지만물이 일신(一身)에 갖추어져 있으니, 기쁨은 봄과 같고 헤아림이 넓어야 마음은 평안하고

기(氣)는 화(化)하여 정혈이 끊어지지 아니한다.

그러니 어찌 연년익수(延年益壽, 오래사는 것)의 도가 아니겠는가? 정히 등잔에 기름을 부음과 같아서

비록 늙었다 할지라도 더욱 힘을 보태어 생명의 불을 크게 피우게 된다. 통관 이후에도

모든 공법이 또한 타좌에 있다 할 것이니 타좌는 곧 道의 시종(始終)을 이루는 정로(正路)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이로 인하여 입문하고 정진한 연후에야 도에 부합되게 된다.

절요편(節要篇)에 말하기를 황파(黃婆)3)는 중매를 잘 하여서 무중생유(無中生有)를 잘 이끌어 간다

. 고로 차녀(次女)4)를 인도하여 때를 기다리게 하고 낭군을 바깥으로부터 이끌어 온다.

양쪽 규(竅)가 융통하여 막힘이 없게 되며 중궁에 모이게 되어 하나가 된다.

마치 푸르름이 봄에 소생함과 같아서 영아(嬰兒, 도태, 어린 양신(陽神)을 말한다)가

잉태되니 이를 성태(聖胎)라 부른다. 사람의 몸으로 얻기 어려운 것이요, 불법(佛法)으로

듣기 어려운 것이며 도장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진사(眞師)는 만나기 어렵고,

중토(中士)에서 태어나기도 어려우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